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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금각사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4. 12. 20. 16:59

완벽한 아름다움은 때로 위협이다

 
작가 미시마 유키오(1925~1970) 일본의 소설가, 극작가, 정치활동가로 본명은 기미 타게.  일본의 소설 중 탐미주의 소설의 최고봉이라 일컫는 이 소설 <금각사>는 교토에 실제 있는 절의 이름이다.  1950년 7월 2일 하야시 쇼켄이라는 금각사 도제승이 금각사에 불을 지른 사건에서 범인이 말더듬이였다는 점과 범행 동기를 "미에 대한 질투"라고 말한 부분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하야시의 이야기를 토대로 새로이 창작하여 1956년 31세에 소설 <금각사>를 썼다. 방화범 하야시와 달리  주인공 미조구치는 말더듬이에 허약한 체질로 묘사하면서 소설가 본인을 대입하여 그려냈다는 평을 듣는다. 실제 사건 하야시와 소설 속 인물 미조구치의 결말도 다르다. 하야시는 방화 후에 자살을 시도하다 실패했고, 소설 속 미조구치는 준비한 수면제와 칼을 계곡으로 던지고 담배에 불을 붙이며 '살아야지'라고 생각한 점이다. 

 

  미조구치는 아름다움과는 대립되는 인물이다.  말더듬이에 허약한 체질의 절집 아들 미조구치. 반면 금각사는  "오직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 금각사뿐이다"그의 아버지의 말처럼 완벽함의 극치이고 이는 곧 아름다움의 극치이자 그 대척점에 있는 미조구치에게는 위협이 된다.  추앙의 대상이었다가 자신을 밀어내는 세상에 대한 원망을 실어 '죽여버려야 하는 질투의 대상'이 된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임제록>의 구절들은 '아름다움에 대한 질투'를 옹호하는 말처럼 보이기도 한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상을 만나면 조상을 죽이고,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 친족을 만나면 친족을 죽여서 비로소 해탈을 얻노라. 아무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투탈자재(透脫自在, 사물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자재로워진다)해지리라.(370p)"

 불완전한 존재감과 흔들리는 자아의식의 소유자인 미조구치는 음(陰, 그늘)을 상징한다.  자살로 삶을 마감한 그의 친구 쓰루가와는 양(陽, 햇빛)을 상징한다. 긍정적이고, 친절하며, 말더듬이인 미조구치를 따뜻하게 감싸며 늘 한결같이 곁을 지키는 친구 쓰루가 와였다.  미조구치와 또 다른 대립각을 세우는 인물은 친구 가시와키로 안짱다리라는 약점을 가졌다. 인식의 세계를 상징하는 가시와키는 외모와 인식의 언변이 뛰어나고 상대방을 꿰뚫어 보는 안목을 가진 인물이나 행동에 이르지 못한다. 미조구치는 가시와키와 달리 말더듬이에 소심하고 허약한 체질이며 누군가의 눈에도 띄지 않는 존재였으나 행동력을 지닌 인물이다.

 

<금각사>를 쓴 후 작가는 우익 단체활동에 가담하여 정치활동을 벌였고 1970년에 할복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중학교 시절 미조구치가 다니는 학교에 선배가 멋진 군복을 입고 찾아와 후배들과 씨름을 하는 장면이 있다. 주인공은 씨름하는 선배의 멋진 칼에 낙서를 새기는 것으로 자신을 드러냈다. 계속되는 전쟁의 두려움과 우울 속에서 외도를 저지른 어머니, 낮에는 금각사의 고매한 주지로 밤에는 기생과 거리를 활보하는 삶에 대한 목격에 대한 회의를 남기며 삶의 의욕을 꺾는다. 구질구질한 삶에 대비되어 언제나 빛나는 아름다움으로 내려다보는 금각사는 질투의 대상으로 변모한다. 치밀한 준비 끝에 화재를 내고 산으로 올라가 죽을 생각을 했으나 이제 불타서 아름다움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를 얻은 생각에 삶을 선택한다. <호밀밭의 파수꾼>, <데미안>등의 사춘기 소년이 겪는 혼란과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들이 생각나는 소설이다. 금각사 외모에 대한 묘사. 사람의 심리가 어떻게 달라지나에 대한 묘사는 대단히 치밀하여 놀랍다.

  금각사는 복원하는 데 50년이 걸렸다고 한다.  순금 20킬로그램,  금박 50만 장을 붙이고, 지붕 위의 봉황까지 여러 차례의 복원 과정을 거쳐서 2008년 완공되었다.  본래의 모습에 비해 덕지덕지 마른 금박의 두께가 너무 두껍다는 평을 받고 있다.  연못 한가운데 서 있는 금각사는 물에 비치는 그림자가 온전히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 하늘을 향해 있는 금각사가 하나 더 물속에 존재하는 듯한 완벽한 허구의 이미지로 돋보인다.  작가의 천황 숭배와 우익으로 치우친 성향은 <금각사>를  쓰던 시절부터 기인했다고 본다. 

 

 2024년 12월 한국의 극우세력도 균형을 잃고 한쪽으로 치닫고 있다.  미조구치가 금각사를 불태울 대상을 보았듯이 균형을 잃은 사람과 사회는 극복하지 못할 비극을 초래할 수 있다.  소설 <금각사>는 사람이 어떻게 균형 감각을 잃고 극도의 몰입에 빠져 범죄에 이를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치명적 아름다움은 언제나 독이 된다.  나는 이 소설을 올해의 책으로 선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