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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바닷가의 루시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4. 11. 10. 21:28

  저자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1965~ , 미국)는  <내 이름은 루시 바턴>, <오! 윌리엄>, <올리브 키티리지> 등의 작품에 이어 <바닷가의 루시>를 썼다.  제목에서 보듯이 저자는 같은 주인공을 소설의 주인공으로 하여 소설을 쓰고 있다.  주인공 루시는 일리노이주 앰개시에서 성장하고 대학생이 되면서 가난하고 폭력적인 가정을 탈출하여 뉴욕에서 거주하는 "가난한 환경에서 자란 것에 대한 글을 쓰는 늙은 여자"작가다. 

 <바닷가의 루시>에서 주인공 루시는 팬데믹 상황에 빠지면서 전남편 윌리엄과 함께 메인주 크로스비로 이동하게 된다. 크로스비는 스트라우트의 또 다른 작중 인물인 올리브 키터리지의 삶의 배경이 되는 곳이자, 메인주 셜리폴스에서 뉴욕으로, 다시 셜리폴스로 이주한 밥 버지스가 이 시점에 이주해 사는 곳이기도 하다. 크로스비는 누군가에게는 오래 거주해 온 정착지이나 루시와 윌리엄에게는 피신처이자 격리의 장소다.  그들은 바닷가 절벽 위에 자리 잡은 포치가 있는 전망 좋은 빈집에  거처를 마련한다.  

 

  루시와 윌리엄은 결혼 생활을 20년 가까이 했지만 서로 바람을 피워 이혼했고,  이후 루시는 자신을 사랑해 주는 완벽한 남자 데이비드와 결혼했으나 사별했고,  윌리엄은 두 번의 결혼을 했으나 다시 이혼을 앞두고 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두 딸이 있었고,  윌리엄에게는 젊은 아내와의 사이에서 낳은 또 다른 딸이 있다.  다소 복잡한 가족관계에 더해 어머니가 살아생전에는 알지 못했던 이복누이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윌리엄은 그 이복누이와의 만남을 통해 혈연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만든다. 

'알 수 없는 무거운 짐을 가능한 한 자애롭게 견디는 것이 우리의 의무다.  나는 그저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있다는 것만 확신해요.' (p.198) 이 삶에서 앞으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은 선물이다. (p.290)삶에 대한 루시의 태도에 대한 설명으로 읽는다.  작가로 사는 루시는 자신의 감정과 상대방의 태도와 상황을 읽는 관찰력이 뛰어나다. 때로 환시를 보기도 한다.  그런 태도가 두 딸과의 거리를 멀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진심은 통하는 법이다.  결국 두 딸이 사는 방식을 들어주고 같이 힘들어해 주는 좋은 엄마의 역할도 한다. 

  루시는 자신의 어머니 대신 만들어낸 좋은 어머니와 자주 대화를 한다.  그건 혼잣말일 것이다.  외로운 사람이 하는 전형적인 습관. 그러나 진짜 어머니가 한 말을 진심으로 기억하고 자주 읊조린다. "누구나 자기가 중요하다고 느낄 필요가 있어." 겉으로는 부정하고 있어도 어린 시절의 가난 속에서의 어머니를 잊지 않고 있다.  

 

  루시는 작가 스트라우트의 분신이다.  '나는 그를 아주 유심히 쳐다보았다. 나는 궁금했다. 경찰이 된다는 건, 특히 지금. 요즘은 어떤 느낌일까? 당신이 된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이것이 나를 작가가 되게 만든 질문이었다. 늘.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은 어떤 느낌인지 알고 싶은 그 깊숙한 욕망이......몹시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내 분자들이 그의 안으로 들어가고 그의 분자들이 내 안으로 들어오는 거의 그런 느낌이었다. (p.265)  양자역학을 요약하면 눈에 보이는 모든 물질과 법칙들이 객관적인 것은 있을 수 없고, 모든 것은 주관적이며 물리학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루시, 아니 작가 스트라우트는 우리 삶의 관계도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집, 사람, 도시로 연결되는 사람들의 이야기.   이 책은 느리게 읽힌다.  책을 읽다가 덮고 일어나 산책을 다녀온 후에 다시 펴고 읽기를 반복해도 또 그 자리인 것 같아도 점점 앞으로 나아간다. 루시의 삶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