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불. 흙.바람 +나

[서평]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본문

서평쓰기

[서평]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4. 10. 6. 21:45

삶을 살아내는 사람의 또 다른 삶 이야기

저자 패트릭 브링리가 겪은 내용을 책으로 엮어 출간하였다.  원제목은 <ALL THE BEAUTY IN THE WORLD>다.  영어 제목이 더 낫다.  왜 한국어 번역으로 '경비원'을 넣어야 했을까? 아쉽다.  뉴욕시의 플랫 아이언 빌딩에서 잘 나가는 <뉴요커> 직원으로 4년간 근무했으나 형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한 슬픔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미술관 경비원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경비원으로 10년간 일한 후 미술관에 있는 미술 작품과 미술관 경비원으로서 일하는 동안 겪은 이야기를 글로 썼다. 

이 책을 읽기 전이라면 먼저 아래의 링크를 꼭 기억해 주기 바란다.  그의 글을 읽는 동안 언급되는 모든 회화, 작품, 건축 등이 모두 링크되어 있다. 그렇지 않다면 나처럼 구글이나 네이버를 통해 한 작품씩 찾다가 동반되는 광고를 함께 보느라 고역을 치러야 하며, 때로 엉뚱한 그림이 나오기도 하여 오류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도 있어서다.

https://www.patrickbringley.com/art

 

Art — Patrick Bringley

 

www.patrickbringley.com

 

형 톰의 죽음으로 인해 저자는 '비탄은 다른 무엇보다도 그 리듬을 상실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잃고 나면 삶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고, 한동안 그 구멍 안에 몸을 움츠리고 들어가 있게 된다.(p.191)'는 상태에 이르렀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미술관이다.  그 이유는 어린 시절 미술사를 전공한 엄마가 미술관에 자주 데리고 다녔고, 미술관은 그에게 역사가 숨 쉬는 세계였고, 숨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었다.

 저자는 파리의 루브르박물관 만큼이나 많은 예술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작품을 만든 예술가와 그들의 재능에 대해 '예술가는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고, 재능은 재능 자체가 아니라 즐거움에서 비롯한 부지런함'(p.26)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예술 작품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서는 '뚜렷한 특징들을 찾는데 정신을 팔면 작품의 나머지 대부분을 무시하기 십상이다. 그저 지켜봐야 한다. 예술이 우리에게 힘을 발휘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p.116)고 말한다. 

 

미술관에서 겪은 에피소드 여러 개 중 눈에 띄는 장면이 있어서 적어본다. 아메리카 분수대 앞에서 동전을 아이에게 건네는 어머니가 동전을 두 개를 주면서 "하나는 네 소원을 위하여, 다른 하나는 네 소원만큼 간절한 다른 누군가의 소원을 위하여"던지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p.143)늘 자신과 가족을 위해 동전을 던지곤 했는데 그런 어머니가 있다니 자녀교육에 남다르다 싶다.  

미술관의 경비원의 역할은 주로 서서 작품의 도난을 막는 역할이지만 때로는 고객들의 질문에 답을 하는 역할도 필요하다.  '대부분은 말하는 사람이고, 어떤 이는 듣는 사람이었고, 간혹 말을 하면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p.146)또 어떤 이들은 경비원을 무시하기도 한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신발 바닥에 붙은 껌 같은 취급을 받아본 경험이 있다. 한번씩 당신은 경비원 따위일 뿐 이라는 아주 확실하게 상기시켜주는 녀석들을 겪지 않고는경비원으로 일할 수 없다. 기분이 괜찮을 땐 이런 건 모욕으로 간주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기분이 바닥일 때는 때때로 불량배드리 의도하는 것처럼 작고 힘이 없다고 느끼고 만다. (p.230)

 

저자가 10년을 미술관에서 지내고 뽑은 단 한 작품은 15세기 이탈리아 수사 프라 안젤리코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다.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히고,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성모 마리아는 혼절했으나 주변의 사람들은 무심결이거나 심드렁한 표정이기도 하고, 제각각이다.  우리가 삶을 살아내고, 또 살아가야 하는 운명이지만 삶은 결코 녹록지 않음을 말하고 있다. 

프라 안젤리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저자가 가장 많이 언급한 화가는 브뤼헬이다.  브뤼헬의 작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단 한 사람도 같은 동작이나 표정이 없고 제각각 바쁘다.  삶도 그렇다.  같은 모습으로 사는 것처럼 보여도 들여다 보면 제각각의 사연을 안고 산다. 

브뤼헬, <곡물수확> https://www.metmuseum.org/ko/art/collection/search/435809

이 책은 미술관이라 하면 생각하는 전시회 기획자, 관장, 큐레이터가 아니라 경비원이 소개하는 미술관이라서 특별하다. 아마도 큐레이터 보다 많은 시간을 한 작품 앞에서 볼 수 있는 사람이 경비원이 아닌가 싶다.  그러니 경비원이 전하는 미술관 이야기는 더욱 진솔하고,  사람들에게 인상 깊게 다가온다.  또한 가족을 잃은 슬픔, 결혼, 자녀를 키우는 가장의 역할 등을 담고 있어서 서민으로서의 삶을 공유하는 데서 친숙함을 느낀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많은 작품들은 앞서 언급한 브링리의 홈페이지에 자세히 소개하고 있으니 컴퓨터나 휴대폰을 켜놓고 글을 읽으면 저자가 언급하는 작품을 십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예술작품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미켈란젤로는 로마 시스티나 대성당의 천장화를 570일동안 그렸고, 하루의 일(조르타나)을 나누어 완성하여 대작품을 탄생시킨 것이다. 89세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붓을 손에서 놓지 않았기에 우리가 아는 작품들이 지금 우리의 화면 앞에 있다는 걸 저자는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필체가 어렵지 않고, 삽화로 그린 동료의 그림을 싣고 있어서 읽는데 또 다른 재미도 준다.  휴가 갈 일이 있다면 이 책 한 권을 들고 가면 진정한 휴가로 에너지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