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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작별하지 않는다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4. 7. 18. 22:18

몸으로 기억하는 역사는 잊히지 않는다

  작가 한강은 6.25. 전쟁 이후 가장 뼈아픈 기억인 5.18을 소재로 한 <소년이 온다>를 책으로 펴낸 데 이어 6.25를 기점으로 정리된 사건 제주 4.3 사건을 배경으로 한 <작별하지 않는다>를 펴냈다.   이 책의 주인공 경하는 역사의 기억을 찾아 확인하면서 꿈에서까지 시달리는 신체화하는 과정을 거쳤고,  주변의 많은 이들을 떠나 보낸 후 사력을 다해 버티는 중이었다.  그런 경하가 친구 인선의 부탁을 받고 눈으로 인해 고립된 제주 산간 마을 인선의 집에 죽음을 목전에 둔 앵무새를 살리기 위해 도착하지만 새는 이미 죽어있었고,  거기서 인선과 그 가족이 겪은 4.3 사건을 어머니와 인선이 모아둔 자료를 통해 확인하는 내용이다. 

제주 4.3 사건은  학교 수업에서 배울 수 없는 내용이다.  아직 사건의 전말에 대해 모르는 한국인들도 많다. 대통령이 4.3사건 기념 행사에 참여하고,  유명 연예인이 참석하면서 눈길을 끌기는 해도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개된 일인지 제주도 사람을 제외하고는 많지 않을 것이다.  4.3. 사건의 전말에 대해 위키백과,  유투브에서 ebs 다큐프라임 <바람의 집 1부>를 통해 알아보았다.  다음은 제주 4.3. 사건의 내용이다. 

 

제주 4.3 사건은  1945. 8. 15. 일본으로부터의 해방 이후 남한과 북한으로 나누어 소련과 미국이 통치하기로 한 시점부터 예고된 일인지도 모른다.  1947. 3. 1. 삼일절 행사에 3만명 가량 모인 관덕정에서 어린 아이를 치고 사과하지 않은 경찰을 향해 군중이 시위를 하면서 민간이 6명이 사망하고 6명이 부상당한 것이 사건의 시작이었다. 경찰의 과잉 진압을 반대하여 도청, 버스, 학교를 위시한 총파업이 1947. 3. 10. 결행되었다.  이들을 진압하기 위해 서북청년단이 제주에 입성했다. 미군정보고서는 이렇게 쓰고 있다.  '서북청년회는 이북에서 온 피난민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들은 과격한 반공주의로 주목받고 있으며 오랫동안 경찰과 경비대의 작전에 가담해 왔다' 서북청년회는 이른바 좌익사냥(red-hunt)를 자행하여 많은 사람ㄷ르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괴롭혔다. 이에 1948. 4. 3. 02:00 봉홧불을 본 사람들이 봉기하여 화북파출소등 6개 지서를 습격하여 민간이 12명 사망, 25명이 부상당하고 2명이 행방불명되었다.  여기에 더해 남한 단독 선거를 반대하는 무장대가 가담하여 "이승만 독재 정권 타도"를 외치며 선거위원, 이장 지역 인사를 살해하고 선거방해로 1948. 5. 10. 국회의원선거는 무효가 되었다.  이를 제압하기 위해 부산, 대구, 여수 등 3개 대대 병력이 증파되었다.  1948. 10. 18. 제주 해안을 봉쇄하고 육지와의 연결이 차단되었으며 1948. 11. 17. 제주 전역에 계엄력이 선포되고 중산간에 소개령을 내린 후 토벌대가 모든 마을과 집에 방화를 자행하였다. 이후 1950. 6. 25.  전쟁이 일어났고 입산자 가족, 요시찰자, 보도연맹 가입자 등은 '예비검속'으로 붙잡혀 집단 희생되었고, 4.3. 사건 관련자는 전국의 형무소에서 즉결처분으로 사형되었다.  1954.09.021. 한라산 금족(禁足)지역이 해제되면서 7년 7개월만에 4. 3. 사건은 종료되었다. 

 

4.3. 사건이 종료되었다고는 해도 사람들은 "맥을 못 추고 말을 못했다. 말만 하면 죽여 버리니까." 고 무법천지의 제주를 증언했다.  심지어는 이때 참상을 피해 일본으로 도망한 사람들도 있다.  주인공 인선의 아버지는 15년 형을 살고 나왔고,  인선의 어머니는 혹시 오빠의 사연을 알까하고 인선의 아버지를 만나 여러 번 만난 끝에 결혼하여 인선을 낳았다.  그러나 오빠인 혈육을 찾으려는 노력은 대구형무소를 거쳐 진주로 옮겨지지 않고 경산 코발트 광산에서 총살된 3,500 여명 중의 한 사람일 것으로 추측할 뿐이었다.  

 

작가가 찾은 제주 4.3. 사건의 요약은 317p에서 찾을 수 있다. ' 그 겨울 삼만 명의 사람들이 이 섬에서 살해되고, 이듬해 여름 육지에서 이심만 명이 살해된 건 우연의 연속이 아니야. 이 섬에 사는 삼십만 명을 다 죽여서라도 공산화를 막으라는 미군정의 명령이 있었고, 그걸 실현할 의지와 원한이 장전된 이북 출신 극우 청년 단원들이 이 주간의 훈련을 마친 뒤 경찰복과 군복을 입고 섬으로 들어왔고. 해안이 봉쇄되었고. 언론이 통제되었고. 갓난 아기의 머리에 총을 겨누는 광기가 허락되었고 오히려 포상되었고. 그렇게 죽은 열 살 미만 아이들이 천오백 명이었고. 그 전례에 피가 마르기 전에 전쟁이 터졌고 이 섬에서 했던 그대로 모든 도시와 마을에서 추려낸 이심만 명이 트럭으로 운반되었고, 수용되고 총살돼 암매장 되었고. 누구도 유해를 수습하는 게 허락되지 않았어. 전쟁은 끝난 게 아니라 휴전된 것이었으니까. 휴전선 너머에 여전히 적이 있으니까. 낙인 찍힌 유족들도 입을 떼는 순간 적의 편으로 낙인 찍힐 다른 모든 사람들도 침묵했으니까. ' 이 엄청난 역사 앞에서 경하와 인선은 하나의 프로젝트를 구상한다.  통나무를 심어 먹을 입히고, 눈이 내리길 기다여 그걸 영상으로 담는 일, 작품명 '작별하지 않는다' 인선은 경하가 "그만둘까?" 할 때도 "어쨌든 난 계속하고 있을 거야."라고 답한다. 이는 삶을 멈출 수 없는 이유와 같다.  작별은 한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다.  '이상하지. 엄마가 사라지면 마침내 내 삶으로 돌아오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돌아갈 다리가 끊어지고 없었어.(314p)' 역사를 기억하고 그들과 함께 한다는 믿음을 그들에게 전해주고자 하는 의미가 '작별하지 않는다'라는 말에 함축되어 있다.  분명 서울에 입원 중인 인선과 함께 있는 것 같은 경하의 행동,  죽어서 나무 아래 묻었지만 살아서 날아다니는 새,  가출한 딸이 밥상 앞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걸 본 엄마의 행동은 이런 끊을 수 없는 관계와 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연관성에 대해 쓰고 있다. 

 

'무엇을 생각하면 견딜 수 있나. 가슴에 활활 일어나는 불이 없다면. 기어이 돌아가 껴안을 네가 없다면'

'모른다. 새들이 어떻게 잠들고 죽는지. 남은 빛이 사라질 떄 목숨도 함께 끊어지는 지. 전류같은 생명이 새벽까지 남아 흐르기도 하는지. '(134~135p)  정치는 사람을 위해 싸우지 않고, 사상을 위해 싸운다는 말이 있다.  제주 4.3. 사건도 사람을 살리는 일이 아니라 공산주의냐 아니냐를 두고 사상 대립을 하는 동안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된 사건이다. 한 소설가가 끌어안고 소설로 써 내기에는 너무나 큰 주제이고 아픈 주제이다. 

 

작가가 사력을 다해 써 내려간 제주 4.3. 사건의 내용은 성공적으로 내게도 전달되었다. 그래서 내가 위키백과를 뒤지고 유투브를 보면서 그 실태를 파악했다.  아픈 역사의 한 모퉁이를 발견했다.  읽는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소년이 온다>처럼.  그럼에도 역사는 지울 수 없는 것이기에 알아야 하고 아파해야 한다. 그래야 되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읽어야 하는 책이다.  먼저 심호흡을 크게 하고.  그럼에도 작가가 검은 나무를 흰 눈으로 덮고 싶어하는 프로젝트명 <작별하지 않는다>의 의도에는 역사에 대한 위로와  잊지 않겠다는 마음을 전하는 의식으로 보여진다.  그런 작가의 마음을 발견하는 일은 이 책을 읽는 사람에게 무언가 계속 해 나가는 누군가가 있음을 기억하게 한다.  인선의 말처럼.  계속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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