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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오십에 읽는 주역 본문
나를 믿고 친구(朋)를 도반으로 한국인의 정(精)을 실현하는 나이, 오십!
공자는 나이 오십에 지천명(知天命, 하늘의 뜻을 안다)이라고 했다. 저자 강기진은 공자가 가죽끈이 세 번 끊어질 때까지 읽었다는 역경(주역)을 새롭게 해석하였다. 운명의 고삐를 틀어쥐고 자신의 천명의 경계를 둘러치고, 경계 밖의 일은 하늘에 맡기는 나이라고 한다. 경계를 둘러치고 중심을 잡으면 강해진다고 말한다.
주역(周易)은 주나라의 역이라는 뜻으로 역(易)은 변화를 의미한다. 세상 만물의 이치가 바뀜을 알고 세상을 살아가면 덜 지치고, 덜 힘들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하늘과 땅이 자리를 갖추매 역은 그 중간에서 행하는 도다. 성(性)을 이루고 있어야 할 것을 있게 하는 것이 도의(道儀)에 드는 문이다-계사상전 5장-' 따라서 '세상 만물에는 각자 독특한 결이 새겨져 있으니 이는 만물이 각자의 소임을 다할 수 있도록 하늘이 부여한 것이다. 사람이 자신에게 새겨진 결(기질)을 받아들이고 걸어 나가면 가장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다(78p)는 해석이다.
이 책에서 새로운 발견은 서울대 졸업식 축사를 한 수학계의 천재로 불리는 허준이 박사의 말이다. '우연과 의지와 기질이 기막히게 정렬돼서 크게 성공한 사람의 교묘한 자기 자랑을 부러워 말고, 여러 변덕스러운 우연이, 지켜버린 타인이, 누구보다 자신이 자신에게 모질게 굴 수 있으니 마음 단단히 먹으라. 나의 대학생활은 길잃음의 연속이었다. (중략) 무례와 혐오와 경쟁과 분열과 비교와 나태와 허무의 달콤함에 길들지 말길, 의미와 무의미의 온갖 폭력을 이겨내고 하루하루를 온전히 경험하길, 그 끝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는 낯선 나를 아무 아쉬움 없이 맞이하길 바랍니다" 라고 말한 그는 인생을 깊이 통찰하는 눈이 있다. 대학 졸업하는 스물셋의 나이에는 알 수 없지만 오십이 되면 알 수 있는 진리다. 인생을 80까지 산다면 3만 일 정도를 사는데 나는 이미 2만 일을 넘게 살았으니 3분의 2를 산 셈이다. 타인의 인생을 바라보고 부러워하기에는 내게 남은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그러니 자신에게 모질게 굴지 않고 온갖 관념에 길들지 않고, 하루하루를 온전히 경험하고 후회 없이 인생의 끝에서 나를 기다리는 나를 만날 날을 생각해 본다. 시인을 꿈꾸던 수학자의 말이라 그런지 온통 자신의 철학이 넘쳐난다.
러시아 경제학자 콘드라티예프가 "자본주의 사회가 가을, 겨울의 시기를 거침으로써 봄, 여름 고속 성장기에 나타난 여러 사회 모순을 해결한다. 전반생은 외면이 자라고 후반생은 내면이 자란다.'는 이론을 발표했다고 하는데 정확한 표현이다. 우리 나라는 지금 자본주의 전반생을 넘어 후반생으로 꺾이는 단계에 서 있어서 고통이 극심하고 분열이 난무한 시기다. 성숙의 단계에 접어들어 가을, 겨울의 내면이 무르익는 단계를 거치면 다시 봄의 계절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본다. 사람도 다를 바 없다. 오십이면 전환기이고 내면이 성장할 시기이니 나와 같은 뜻을 가진 도반을 만나 뜻을 같이 하고 서로 격려하고 서로 자극을 받아 힘을 내면서 이전에 없던 나의 길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주역이 주는 지혜다.
이 책은 헝클어진 오십대의 제2의 사춘기를 맞이하여 몸과 마음이 혼란스러운 어른, 사춘기를 맞은 아들과 갱년기를 맞은 엄마가 싸우면 누가 이기나 끝까지 가보자고 덤비는 사람, 드라마 <연인>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부장님, 마처(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식에게 부양받지 못하고 자신의 최후를 고독사라고 예견하는) 세대라고 자처하는 낀 세대인 1960년대 생들이 읽을 것을 권하면서 쓴 책이다. 성공 일변도의 자기 계발서가 횡행하다가 요즘 들어 '자기 배려'를 말하는 책들이 늘고 있는데 이 책도 그 축에 든다. 그동안 타인의 시선인 GPS로 자신을 봐 왔던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내비게이션의 도움 없이 스스로 남은 생을 자신감을 갖고 살아가고 싶은 사람이라면 쉽게 읽을 수 있다. 주역을 너무나도 가볍게 읽을 수 있도록 수필처럼 가뿐하게 저며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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