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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작은 빛을 따라서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5. 1. 6. 17:29

  '간당간당' 그러나 망한 적 없는 슈퍼 가족

 

  언제부터인가 점점 편의점이 늘어나면서 00 슈퍼로 이름 지어진 가족형 가게는 찾아볼 수가 없어졌다.  네거리에 자리 잡은 화랑슈퍼,  그 옆에 쌀파는 경주상회,  뭐든 고쳐주는 수원전파사,  맞춤복으로 엄마들을 설레게 한 미라보양장점 등이 추억이 된 지 오래다.  그런 요즘에 옛사랑의 그림자라도 찾을 요량인가? 하는 약간 실망 섞인 반응들도 있지만 이 책 <작은 빛을 따라서>는 반갑고 따뜻한 기운을 가진 책이다. 

 

  저자 권여름은 군산에서 국어교사로 일하고 있다.  저자가 태어난 곳이 부안의 작은 섬 식도, 자란 곳이 정읍이라고 밝히고 있다.  소설의 무대는 정읍이고 수퍼에 손님이 없을 때 찾아 나선 곳이 식도이고 보면 저자는 자신이 아는 곳을 배경으로 소설을 썼다.  자신의 경험을 배경으로 쓰면서도 경험을 이기려고 애썼다고 한다. 

 

  작은 섬 식도에서  온 가족이 수퍼를 하기 위해 육지로 나왔다.  필성(必成) 슈퍼는 고모가 돈을 벌어서 서울로 떠나면서 물려준 터다.  반드시 성공하여 고향에 보란 듯이 노인정을 지어서 금의환향하는 것이 목표인 황서운 할머니의 손녀 오은동이 주인공이다.  은동은 글 모르는 걸 빼고 자존심은 높은 황서은(진짜 이름) 할머니의 숨은 한글 선생님이다.  오은동의 성장소설이기도 하고,  황서은 할머니와 가족들의 슈퍼 지키기 프로젝트 이기도 한 이 소설은 다소 성장기 소설로서 청소년이 읽어야 하는 소설로 보일 수도 있다.  자신의 진로를 찾아 고민하고,  가족의 일을 돕고,  언니와 티격태격하는 동생 캐릭터가 옥신각신하는 중에도 성장하면서 가족들과 함께 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어서다.  

  그러나 "우리는 망한적 없다"는 할머니의 말처럼 온 가족이 변화하는 세태를 어떻게든 막아서면서 슈퍼를 지켜가는 내용은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대형마트(엉터리마트)가 들어서서 손님이 끊기자 '두부 한 모라도 배달'하고,  그 와중에 눈이 많이 내려 엉터리마트에 못 가고 오는 필성슈퍼로 오는 손님을 위해 '덤' 주고,  위도에 식품을 배달하는 일로 '손님을 찾아 나서기', 위도의 갑오징어, 가게맥주 팔기, 대형마트(쌤마트)가 들어서자 할머니가 1인 시위하기,  이로 인해 방송을 타고 필성슈퍼 홍보, 할머니의 글쓰기대회 1등으로 홍보 등등 소설 처음부터 엄마의 입을 빌어 말하는 "희한해. 간당간당......"은 계속 이어진다. 

 

  작가는 '실패의 순간에 도사리는 성공의 순간들'이 있음을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소설 속 주인공과 가족들, 이웃, 사회의 모습이 우리의 일상이기도 한지라 이 책은 가볍고 재미있게만 읽힐 수도 있으나 거대한 자본가 세력에 맞서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어떻게든 버티면서 지내는 서민들의 하루 하루를 담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골리앗과 같은 무지막지한 세력 앞에서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이유는 "시상에 우리 집 애기가 들어오는디 나는 하나님이 오시는 것만 같았다...."는 할머니의 말과 "시위할 때는 쪽수가 중요해."라고 말하는 오은동의 합세(合勢)하는 힘이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한 편의 소설로 세상에 희망을 말하기는 어려우나 '작은 빛을 따라서' 가다 보면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게 될 거라는 저자의 따뜻한 마음을 만나게 된다. 

 

  날씨가 추워지는 1월의 첫 주에 감당하지 못할 뉴스로 멀미를 앓는다면 이 책 <작은 빛을 따라서>를 읽고 따뜻한 온기를 전해 받으시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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