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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3. 5. 5. 22:32

좋은 삶을 넘어서 좋은 죽음을 꿈꾼다

 

  저자 박중철은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가정의학과 의사로 호스피스 병동에서 완화의료팀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자신을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환자가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돕는 호스피스 의사"라고 소개한다. 완화의료팀에는 의사, 간호사, 간병 도우미, 자원 봉사자, 작업 치료사 등이 함께 한다. 

   2020년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인의 75.6%는 병원 응급실, 중환자실, 또는 병원을 옮기는 도중에 사망한다고 한다. 1997년 국민 3명 중 2명이 집에서 숨을 거두고, 집에서 초상을 치른 반면, 25년이 지난 지금 3/4의 사람들이 병원에서 숨을 거두고 장례식장에서 초상을 치른다. (116p, 34p) 의사는 과학 기술로 병을 치료하는 곳이니 병에 걸린 주체인 인간은 소외되고, 병이라는 객체에만 집중한다. 그러다 보니 인간은 개별 장기를 교체하면 영원히 사는 기계와 같은 존재로 전락한다. 의료 집착, 비극적인 연명의료로 이어진다. 연명의료는 생명존중이 아니다.(83p)

 

   한국에서 연명의료와 연관된 사건으로 보라매병원 사건과 세브란스 김할머니 사건을 꼽는다.  보라매병원 사건은 1997년 치료 중단을 요구하여 퇴원하게 한 부인과 치료를 중단한 의료 관계자들에게 유죄를 확정한 법원의 판결로 이후 생명 연장을 위한 각종 처치가 늘어나게 되었다.  무책임한 연명 치료를 계속하려는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가족의 요구를 받아들여 대법원이 의료인의 판단보다 환자의 자기 결정권을 인정한 세브란스 김할머니 사건(2008년)은 2018년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는 단초가 되었다. 생명 연장을 위한 기계 호흡, 영양공급, 심폐소생술 등을 중단할 수 있도록 자기 결정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말기 암이나 임종 과정에만 적용할 수 있지만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 사람에게 유의미한 제도다. 

  "우리가 경험하는 삶의 질을 무시하고 매달려야 할 만큼 그렇게 생명이 귀중한 것인가?" 미국의 윤리학자 조지 에이지치는 삶의 마무리를 수용하지 않고 무조건적 연명치료에 집착하는 현대 사회에 묻는다. (163p) 한국은 일본에 의해 강제로 근대 문명을 받아들이고, 전쟁과 과학 기술의 발달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느라 생명을 경시하는 풍토가 조성되었다.  대신 자본주의의 물결이 밀려와 개별화로 인한 정체성의 혼란과 함께 자기 착취에 이르는 동안 역설적으로 생명에 대해서 강력한 집착을 갖게 되었고,  의학은 개인의 불안을 이용하여 끊임없이 약과 병원에 의존하게 한다. 그 결과 전문가의 도움 없이는 죽음도 허용되지 않는다. 

 

 "운명하셨습니다."라는 말은 병원에서 하지 않는 말이다.  중환자실에서 죽음을 맞이한 아버지의 상태를 말할 때 병원의 간호사는 "지금 심정지상태입니다."라고 말했다.  수술 전에 심폐소생술은  고령인 아버지가 견딜 수 없는 갈비뼈 손상이 우려되니 실시하지 않겠다고 담당의사가 말했지만  내가 아버지의 상태를 물었을 때 중환자실에서는 이미 심폐소생술을 실시하고 있다고 했다.  사람이 죽은 것은 심장 정지, 폐정지, 뇌정지 세 가지로 판단한다.  어떻게든 생명이 끊어지도록 방치했다는 의혹을 받지 않기 위해 병원은 사전의향이 있을지라도 생명을 살리기 위해 애쓰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병원이 신은 아니기에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는데 병원은 죽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마침내 심폐소생술을 30여분 시행하고 나서야 의사의 사망진단이 내려지고 환자가 아닌 시신이 된 아버지는 지하의 냉장고로 옮겨졌다.  고향의 장례식장으로 옮길 때는 사설 구급차를 이용해야 했다.  죽음이 삶에서 멀지 않음에도 병원에서 나온 이후 나는 아버지의 얼굴을 입관할 때 처음 볼 수 있었고, 그게 마지막이었다. 

  

  저자는 '어떻게 죽을 지를 고민한다면 어떻게 살 지를 알 수 있다'라고 말한다.  질병에게 인공영양 공급하는 동안 생명은 연장될지라도 지속되는 고통 속에서 죽을 것인가? 성숙한 자세로 죽음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개인의 선택이다.  많은 이의 죽음을 지켜본 저자가 호스피스 병동에서 개인의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이 책은 누구나 한 번은 죽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기에 더욱더 심오하게 읽힌다.  죽음의 최전선에 선 호스피스 병동의 의사가 진심으로 전하는 삶의 안내서다.  철저하게 혼자가 되어야 하는 과정이 죽음이다.  그 과정에서 사람은 성숙하고 타인을 이해할 수 있으며 타인과 함께 사는 지혜를 발견할 수 있다.  죽음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  그걸 멀리하니 근거없는 두려움과 불안함 속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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