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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루쉰, 길 없는 대지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3. 5. 8. 18:30

루쉰의 삶의 여정, 루쉰의 은산철벽(銀山鐵壁) 넘어서

 

  루쉰(魯迅, 1881~1936)는 중국이 어떻게 근대화했는가를 여실하게 지켜보고, 독설로 자기 해부를 한 인물이다.  일본의 나쓰메 소세키가 자기본위(自己本位, 자기의 감정이나 이해관계를 기준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일)를 선택했다면, 루쉰은 예리하고 집요하게 파고들어 자기 해부를 통해 통렬하게 근본까지 헤집어 뒤흔든 작가다. 한국에서는 이광수를 근대화를 관통한 작가로 꼽는다. 

  이  책은 지식인공동체 감이당, 규문, 남산강학원, 문탁네트워크가 각자 루쉰을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루쉰의 여정을 밟아가는 새로운 평전을 쓰기로 한 데서 시작하였다. 작가의 작품을 중심으로 평전을 쓰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작가의 행로를 밟으면서 사건과 작품을 이해하는 방식은 새롭다.  독자로서 작가를 이해하는 방법이 작품을 통하는 방법밖에 없는데 이렇듯 행로를 따라가면서 도시의 역사와 저변의 문화까지 곁들여 설명을 듣고 보니 루쉰의 작품과 작품성이 어떻게 쓰이고, 형성되었는가를 실감 나게 느낄 수 있다.  

 

   루쉰은 샤오싱에서 태어났다. 조부가 과거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되면서 가세가 기울기 시작해 아버지가 병으로 사망하자 집을 떠나 난징으로 가 서양의 공부를 시작한다. 그 후 도쿄, 센다이 의학전문학교를 다니다가 다시 도쿄로 가서 번역활동을 한 후 29세에 양저우에서 교원, 샤오싱에서 교장을 지내다 베이징으로 가서 교육부, 베이징대학 강의를 하면서 작품활동을 하였다.  <아Q정전(1921)>, <중국소설사략(1924)>, 첫 번째 잡문집 <열풍(1925)>등이다.  이후 논객들과 멀어지기 위해 샤먼, 광저우, 상하이로 옮겼다. 상하이에서 <아침꽃 저녁에 줍다(1928)>, <<새로 쓴 옛날이야기(1936)>, 잡문집 <꽃테문학(1936)> 등을 썼다.  루쉰은 140여 개의 필명으로 무려 700여 만 자를 썼다. 그에게 있어서 글쓰기는 '살아 있음'의 유일무이한 증거였다.(33p) 루쉰의 본명은 저우수런(周樹人), 루쉰은 가볍게 환호작약(歡呼雀躍, 크게 소리를 지르고 뛰며 기뻐함)하거나 낙담하는 법이라곤 없이 사물이나 사건의 이면을 철저히 투시하고 해부한 작가(56P)다.  특히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를 설립한 마오쩌뚱이 "5.4 문화 신군의 가장 위대하고 영용(英勇, 영특하고 용감)한 기수로 모든 공산당원들이 따라 배워야 할 모범"이라고 칭송한 작가다.  가는 곳마다 루쉰의 동상이 있다. 

 

  고미숙은 "루쉰의 글은 은산철벽이다. 암흑과 무지, 어둠과 적막의 메아리다. 더구나 아Q건 쿵이지(公乙己)건 천스청(陳士成)이건 그의 작품에 나오는 캐릭터는 하나같이 비호감, 아니 요즘 유행하는 말로 '극혐'이다. "라고 썼다. (40p) 은산철벽(銀山鐵壁, 은으로 만든 산, 철로 만든 벽)이라니. 안으로도 보이지 않고 밖으로도 보이지 않는 상태로 꽉 막혀 답답한 형국을 이르는 말이다.  루쉰은 1906년 센다이의학전문학교 재학 시절 중국인 처형 장면을 담은 환등기를 보고 중국인의 육체적 건강보다 정신적 개조가 먼저라고 판단하고 서양의학에서 문학으로 진로를 바꿨다.  "한 번은, 화면상에서 오래전 헤어진 중국인 군상을 모처럼 상면하게 되었다. 한 사람이 가운데 묶여 있고 무수한 사람들이 주변에 서 있었다. 묶여 있는 사람은 아라사(러시아)를 위해 군사기밀을 정탐한 자로, 일본군이 본보기 삼아 목을 칠 참이라고 했다. 구름같이 에워싸고 있는 자들은 이를 구경하기 우해 모인 구경꾼이었다. <루쉰, 서문<외침>>(19p) 

 

 "지나가고 지나가며, 일체 것이 다 세월과 더불어 벌써 지나갔고, 지나가고 있고, 지나가려 하고 있다.-이러할 뿐이지만, 그것이야말로 내가 아주 기꺼이 바라는 바이다.(루쉰, <무덤 뒤에 쓰다>) 진화의 연쇄고리 속에서 일체의 것은 다 중간물이라 여기며 자신의 삶과 글이 그런 교량으로 존재하기를, 뒤에 오는 것들을 위해 흔쾌히 소멸해 가는 것이기를 원했다. 루쉰이 영향을 받은 니체 역시 인간들이 부디 자신을 밟고 지나가기를, 자신의 넘치는 사랑을 대사 없이 받고, 그런 다음 자신을 떠나고, 마침내 완전히 잊어 주기를 바랐다. (73p)

  루쉰은 '암흑과 허무'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암흑과 허무'만이 전부라고 여기지 않는다. 암흑과 허무를 살되, 암흑과 허무조차도 실체화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야만 희망에도 절망에도 사로잡히지 않고, 끝까지, 거기가 어디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가는 자에게만 길이 있기 때문이다. 몰락과 이행, 그리고 길. 루쉰의 앎을 요약하는 키워드다.(59P) 루쉰에게 영향을 준 요소로 량치차오(梁啓超), 옌푸(嚴復), 린수(林紓), 장타이옌(章太炎), 유럽 약소 민족의 문학, 니체를 꼽는다.(다케우치 요시미)

   루쉰은 "세계란 직진하지 않고 항상 나선형으로 굴곡을 그리며 대파(大波)와 소파(小波)가 천태만상으로 기복을 이루면서 오랫동안 진퇴를 거듭하여 하류에 도달한다(루쉰, <과학사교편>, <무덤>"라고 말한다. 진화를 '야만에서 문명으로'진행되는 필연적 과정이라고 보지 않았다. 모든 것이 치우친 채로 운동하면서 비평형 상태를 유지한다는 자연의 본성을 깨달았던 것이다. 

 

   루쉰이 살았던 시대는 청나라에서 중국인민공화국으로 바뀌는 시기였고,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시기로 혼란기였다.  '그는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을 사랑했으나 아이들이 오물과 함께 태어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오물로 가득한 폐허를 만나지 못한 자들, 자신이 있는 곳을 폐허로 경험하지 못한 자들은 어떤 것도 창조할 수 없다. 그러하니 창조하려거든 몰락하라. 태어나려거든 흔쾌히 죽어라!(73p)'고 말한다.   그리고 환등기 사건에서 충격을 받고 정신개조의 필요성을 느낀 루쉰은 중년에 이르러 답을 찾았다. 중국이 구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잘 나가는 사람들 주변을 물 샐 틈 없이 에워싸고 부역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 결과 잘 나가던 사람이 점차 우매해져서 꼭두각시에 가까워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317p) 그러나 아Q들은 여전히 도처에 존재하며, 센다이 시절의 환등기 사건은 현재진행형이었다.(327P)

 

   그렇다면 루쉰은 왜 글을 썼는가? '한낱 모기에 문 것에 지나지 않는 사소하고 하찮은 것들이라도 자신의 몸에 일어난 일은 역시 너무나 절실하기 때문에 쓸 수밖에 없는것이다. <루쉰, <어떻게 쓸 것인가>(331P) 존 버거는 '저항의 본령은 어떤 대안, 좀 더 공정한 미래를 위한 희생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의 아주 사소한 구원이다. 문제의 이 사소한 이라는 형용사를 안고 어떻게 시간을, 다시 살아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라고 말한다.  루쉰은 매번 사소한 순간에 집중하여 하찮은 것들을 침묵에서 꺼내서 출력시켰고 그 출력물은 노예가 아니라 매 순간 주인으로 살았던 고귀한 정신의 분투였다.(332P) 

  루쉰의 작품을 인생의 여정을 따라 발견하는 평전의 형식을 빌어 여섯 명의 지식인공동체가 현장에 참여하여 발로 쓴 책이다.  이 책은  독자의 이해도를 높이고,  현장감을 충분히 전달해 주는 동시에 지식인공동체가 가진 방대한 지식을 공유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 데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루쉰을 이해하고 싶다면 이 책은 꼭 거쳐가야 하는 이정표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