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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옥춘당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3. 4. 19. 22:04

  2023 평택 한 책으로 선정된 <옥춘당>은 저자 고정순이 글을 쓰고 그린 그림책이다.  옥춘당(玉春糖) 또는 옥춘(玉春)은 쌀가루와 엿을 섞어 만든 바탕에 색소로 알록달록한 색동을 들여 만드는 동글납작한 사탕이다.  제사에 흔히 쓰이는데 조선 시대인 1719년의 기록에 나와 있다고 한다.  

 "고자동씨와 김순임씨는 전쟁고아였다."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마치 저자의 가족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려낸 것처럼 진솔하게 느껴진다.  '오줌은 두 칸 똥은 세 칸-머무를 수 없는-금산 요양원 13번 침대'를 순서로 썼다.  세 개로 이야기를 나눈 것도 소박해 보이면서도 기존의 틀을 벗어난 형식이라 답답함이 없다.  뭔가 잘 보이려고 하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려는 작가의 마음이든지 고의적으로 독자를 편안함으로 이끌어 저자가 마련한 의자에 앉히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야기에서 한 분의 주인공인 할아버지의 인품이 예전에 우리가 알던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푸근하다.  "오줌은 두 칸 똥은 세 칸 몰라요?" "그럼 닦을 때 뚫린다고, 이거 보라고." (16p) 할머니의 잔소리를 유머로 승화시키는 능력자이기도 하고, 텔레비전에서 나오던 것과 전혀 비슷하지 않은 만화영화 주제곡을 불러주던 나의 할아버지(19p)는 철없는 남자 어른이었다가,  봉숭아꽃을 손톱 위에 올려주던 할아버지의 세심한 손길(51p)은  다정하기 그지없는 할아버지의 모습이다. 전쟁고아인 할아버지는 사람에게 돌아갈 집이 없는 걸 가장 두려워하셨다(43p)는 술집에 나가는 여성에게 집값 떨어진다고 월세를 내놓지 않는 사람들과 달리 자신의 경험을 잊지 않고 이웃에게 도움을 주는 어른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여성들의 밤길이 안전하기를 바라면서 가로등 설치를 구청에 요구하여 지원해 주는 어른이다. 거기다 할머니에게 늘 다정하고, 할머니에게 할아버지는 남편이자 유일한 친구였다(27p)는 대목에서는 자상한 남편이자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 할아버지가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도 어른답다. 병원에서 치료하다 죽기보다 가족과 함께 지내기를 선택한다. 그러나 너무나 큰 산처럼 든든한 할아버지의 죽음에 할머니는 말을 잃었고 20년을 그리움에 갇혀서 지냈다. 그중 10년은 요양원에서 보냈다. 할머니는 가끔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보였다는 사람들 말에 나는 오직 한 사람을 떠올렸다(107P)는 대목에서 작년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나의 어머니를 생각한다.  아직 1년도 채 되지 않아 어딜 가나 아버지와의 추억으로 가득한 세월을 보내고 있는 나의 어머니의 하루하루를 생각한다. 

 고자동씨가 김순임 씨에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장면 중 으뜸은 옥춘당을 입에 넣어주는 장면이다. "김순임 씨가 천천히 녹여 먹던 사탕, 제사상에서 가장 예뻤던 사탕, 입안 가득 향기가 퍼지던 사탕, 옥춘당."나는 이제껏 옥춘당을 먹어본 적이 없다. 강렬한 색이 불량식품을 연상시키고,  단 맛이 여간 강력하지 않을 듯한 생김새에 지레 겁을 먹고 있어서다. 그런데 김순임 씨가 먹던 그 맛을 생각해 보자니 한 번 먹어 보고 싶어 진다.  다음 아버지 기일에는 제사상에 옥춘당을 올리고 나서 나도, 어머니도 옥춘당을 함께 먹어볼까 한다.  쌀과 엿을 섞어 만들었다니 그 맛이 예상은 되지만 먹어봐야 맛을 알지 않겠는가.

  100년 전에 서양 문물이 기습하듯이 우리 삶에 들어오면서  죽음은 감춰지고 요란한 삶만 앞으로 펼쳐졌다.  사람이 나고 자라서 늙고 죽는 생로병사가 자연스러운 현상임에도 아기를 낳는 일부터 병원에 맡기고, 죽음도 병원에서 치루고  죽음을 애도하는 일도 장례식장에서 이루어지니 우리 삶과 너무나 멀어졌다.  <옥춘당>은 그런 삶이 내 옆에 있음을 말해 준다.  부모님과 나와의 거리를 좁혀준다. 촌스럽기만 하다고 여기던 옥춘당이 사람을 잇는 징검다리가 되어준다.  세 번 읽고 나서 이 글을 쓴다.  잘 살아내는 삶은 언제나 먹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