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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세상

[영화]더 퀸(The Queen)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3. 3. 27. 21:25

원칙을 허물고 대세를 따르기까지 퀸의 인간적인 외로움을 다룬 영화

눈물을 보인 퀸

 

 

 

 

국민 앞에 선 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2022. 9. 8. 9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그 뒤를 찰스가 이어 가고 있다.  넷플릭스에서 <더 크라운> 시리즈를 본 기억이 있어 영화 <더 퀸>도 눈여겨보게 되었다.  1997. 8. 토니 블레어 총리가 취임한다. 그는 영국 역사상 가장 나이가 적은 총리였고, 엘리자베스 2세에게는 10번째 총리이기도 하다.  총리는 국민의 선거로 선출되어 여왕의 승인을 받아 정치, 경제, 사회를 책임지는 자리인 반면, 여왕은 총리의 국정에 대해 조언하고 브리핑을 받는 자리에 있다.  여왕은 투표권이 없다. 신이며 국가인 존재다. 

 8월 31일 다이애나 전 왕세자비가 프랑스에서 사망한다. 이 영화는 다이애나 사망 후 1주일간의 세간의 변화와 총리의 대응 그리고 여왕의 심경의 변화와 세간의 요청에 대응하는 여왕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왕실과 좋지 않은 사이였던 다이애나가 죽자 국민들은 국민을 위해 일한 점을 고려해 국장(國葬, 국가적인 장례 의식)을 주장하고 왕실은 이혼 후이니 왕족이 아닌 점을 고려해 가족장(家族葬)이 맞다고 말한다.  사망 발표 1시간 후, 총리실은 블레어총리의 연설문을 작성하고 "우리의 왕세자비"라고 언급하며 다이애나를 추도하는 입장을 발표한다. 9월 1일 국민 추모 열기가 점점 뜨거워진다.  빈 버킹엄궁전 앞에 꽃다발이 쌓이고 추모객이 늘어간다. 장례위원회가 개최되고 찰스왕세자는 국장을 환영하며 추모를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여왕은 기존의 입장을 고수한다. 9월 2일 왕실은 계속 밸모럴 별장에 머문다. 여론은 왕실 폐지를 거론하기 시작한다. 총리는 왕실 폐지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가지게 된다. 9월 3일 버킹엄궁에 조기 게양과 여왕의 런던 귀환을 제안하는 총리의 전화를 받아 여왕은 심기가 불편하다. 총리는 왕실을 두둔하는 기자회견을 연다. 여왕은 사냥터에서 14개의 뿔을 가진 제왕급 사슴을 발견하고 빨리 도망가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듯하며 눈물을 보인다. 9월 4일 신문과 여론은 다이애나의 사망이 왕실 탓이라는 여론 쪽으로 휩싸이고 총리는 전화를 다시 걸어 존폐위기에 몰린 왕실의 현실 위기감을 전한다. 9월 5일 런던으로 돌아가기 전 사슴이 죽은 것을 확인한다.  런던 버킹엄 궁 앞에 모인 추모객 앞에 선 여왕은 자신과 왕실이 다이애나를 죽인 것처럼 쓴 카드들을 보며 마음 아파한다. 한 꼬마가 든 꽃을 보고 "그 꽃을 대신 놓아줄까?"라고 말했을 때 꼬마는 "아니요, 이 꽃은 여왕님께 드릴 꽃이에요."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그 분위기는 절정에 다다른다. TV 앞에서 추모사를 읽고 완전히 기운 여론에 따라 연설문도 대중이 원하는 내용으로 바꾸어 전한다.  9.6. 다이애나의 장례식을 국장으로 치른다.  블레어 총리와 여왕의 공조(公助)는 사실 뒤바뀌어야 하는 입장이었으나 최연소 총리인 블레어의 조언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여왕은 크게 흔들린다. 그런 여왕이 자신에 대해 말한다. 

"사람들은 눈물과 감동을 원하죠. 하지만 나는 감정을 표현하지 않아요. 그저 간직할 뿐이죠. 그렇게 배워왔고, 국민들도 그런 여왕을 원하는 줄 알았어요." 이 말은 영국 여왕이 한 말인데 우리 국민의 정서와도 닮아있다. 우리도 감정을 표현하면 안 된다고 배워왔고, 특히 "남자는 세 번 운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극도로 감정을 절제하도록 강요하는 문화다. 그러다 보니 자못 크게 웃거나 울거나 해도 감정이 헤픈 사람으로 규정짓기도 하였었다.  그런 우리의 문화를 기반으로 현재를 사는 나는 영국 여왕의 말을 듣고 이해가 잘 되었다.  일주일간의 시간의 흐름과 대중의 마음의 변화, 거기에 재빠르게 대응하고 어루만질 줄 아는 젊은 총리와 원칙과 법을 중시하고 400년 역사를 강조하는 분위기의 왕실의 대표인 여왕의 선택은 하나하나가 신중하고 이유가 있어야 하고, 보이는 것에 치중하면서도 대중의 마음을 알아주는 여왕이어야 한다는 어려운 자리다. 그런 자리에 있는 한 인간의 외로움, 쓸쓸함 등을 느낄 수 있는 영화다. 감독의 의도는 여왕의 그런 인간적인 고민을 담고자 했을 것이다. 

   자신이 원하지 않았어도 아버지가 죽음으로써 장녀라는 이유로 왕위에 올라 영국을 대표하는 인물로 산 세월을 인정하며 왕실의 폐지를 반대하는 총리는 여왕의 마음을 가장 잘 헤아릴 수 있는 인물이었기에 그를 옹호하고 조언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총리의 충정 어린 조언이었기에 여왕의 마음을 움직였을 것이고 결국 여왕은 영국 국민 앞에서 존엄을 지키고, 총리는 국민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동시에 여왕을 움직인 인물로 여론의 지지를 받게 된 셈이다. 

  한국은 왕실이 없는 나라다.  요즘 정치를 보고 있으면 한국에도 왕실이 있고, 엘리자베스 2세같은 여왕이 있어서 중심을 지킨다면 나라가 좀 더 평화롭고 안정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