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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노매드랜드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2. 8. 26. 22:52

 

길 위의 삶은 멈추지 않는 인생의 길을 연다

 

  노매드(Nomad)는 유목민을 뜻하는 라틴어다.  과거의 유목민은 원래 중앙아시아, 몽골, 사하라 등 건조·사막 지대에서 목축을 업으로 삼아 물과 풀을 따라 옮겨 다니며 사는 사람들을 말한다. 반면 현대의 유목민은 디지털 기기를 들고 다니며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사람들을 말한다.  여기서 노매드란 공간적인 이동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버려진 불모지를 새로운 생성의 땅으로 바꿔 가는 것, 곧 한자리에 앉아서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매달리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바꾸어 가는 창조적인 행위를 지향하는 사람을 뜻한다.  직업을 찾아 이동하는 잡 노매드(Job nomad), 집을 소유하여 머무르지 않고, 자신이 좋은 집을 찾아 이동하는 하우스 노매드(house nomad)등의 사례들이 생겨나고 있다. 

 

 노매드랜드(Nomad land)는 유목민으로 살아가는 사람, 펀의 이야기다.  미국 네바다주의 사파이어라는 광산촌에서 남편과 함께 살았다. 2011년 석고보드의 수요 감소로 회사가 문을 닫고, 남편과 펀은 일자리를 잃었다. 1년 동안 가게 점원, 임시 교사 등 해볼 수 있는 건 해 봤지만 남편은 병으로 죽고 이웃들은 도시를 떠났다. 그 도시에 머물렀던 펀은 밴에 짐을 싣고 사파이어를 떠났다.  남편이 병으로 죽어가면서 모르핀으로 견딜 때 펀은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었다.  펀은 깊은 상실감에 노매드를 선택한 것이다. 

 떠난 길 위에서 또 다른 이웃을 만났다. 폐암이 재발하여 시한부 인생인 스왱키는 알래스카에서의 좋은 추억을 다시 한 번 되새기려 알래스카를 향하고, 퇴직 전에 요트를 사놓고 타 보지도 못하고 죽은 동료를 보고 퇴직을 결심하고 여행을 떠난 사람도 만났다.  그 동료가 죽기 전에 한 말은 "인생은 짧다. 시간 낭비하지 마."였다. 밴의 이름을 '페인트'로 정하고 자신의 인생을 멋지게 채워가는 사람도 있다. 또 그중에는 밥 웰스처럼 길을 떠난 유목민들을 돕고, 그들을 훈련하게 하고,  그들이 왜 떠돌아야 하는 지를 깨닫게도 한다. 

 펀은 복지국 직원이 퇴직급여를 받으라고 조언하지만 거부한다. "나는 일하고 싶다."펀이 여러 상황에서 자신이 일하고 싶다고 말한다. 펀은 인생을 쉽게 살려고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름 열심히 살려고 했다. 그러나 수요가 줄자 회사가 문을 닫고, 도시가 사라지는 상황이 펀을 쓸모없는 인간으로 내몬 셈이었다. 아마존 물류 센터, 돌 파는 일, 햄버거 만들기 등등 펀은 이동하면서 일을 했다. 펀의 밴의 이름은 '선구자'다. 자신의 인생을 자신의 방식대로 살아내려는 절실한 삶의 애착을 볼 수 있다. 그렇지만 현실은 펀이 길 위의 삶을 평탄하게 놓아두지 않는다.  낡은 밴은 고장이 났고, 큰돈이 없는 펀은 평소 연락하지 않았던 형제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아마 펀은 그 상황에 너무 싫었을 것이다. 그러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살아가려면 손을 내밀고 도움을 청해야 하였다. 

 

 '집은 허상인가? 영혼의 안식처인가? ', '머물 곳이 없는 것과 집이 없는 건 다르다. ', 죽어라 일만 하다 벌판으로 내쫓기는 가축처럼 가축처럼 길 위로 내몰린 사람들이 평생 일하지 않기 위해 선택한 길 위릐 삶,  "내일 내일, 그리고 또 내일,  어제의 모든 날들은 어리석은 자들에게 죽어 먼지가 될 길을 밝힌다. 꺼져라, 꺼져라, 짧은 촛불아. " 영화 속에서 찾은 문장들이다. 이 문장보다 이 영화를 빛나게 하는 장면이 있다. 바로 데릭이라는 청년을 만나 자신이 결혼식에서 낭송했던 시를 들려주는 장면이다. 나는 이 장면에서 펀이 희망을 가진 사려 깊고 마음 따뜻한 사람임을 확인하였다. 그 시를 적어본다. 

 

그대를 여름날의 무엇에 비할까?

그댄 여름보다 사랑스럽고 부드러워라.

거친 바람이 5월의 꽃봉오릴 흔들고

우리가 빌려온 여름날은 짧기만 하네.

때로 하늘의 눈은 너무 뜨겁게 빛나고

그 황금빛 얼굴은 번번이 흐려진다네.

아름다운 것들은 아름다움 속에서 시들고

우연히 혹은 자연의 변화로 빛을 잃지만

그대의 여름날은 시들지 않으리.

그댄 그 아름다움을 잃지 않으리.

죽음도 그대가

제 그늘 속을 헤맨다고 자랑 못하리라.

그댄 영원한 운율 속에 시간의 일부가 되리니

사람이 숨을 쉬고 눈이 보이는 한

이 시는 살아남아 그대에게 생명을 주리.

 

 펀이 읊은 시는 흘러서 없어질 시간 속에서도 우리가 기억하는 한 아름다운 시절은 우리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아 우리의 존재를 있게 하고, 서로를 외롭지 않게 하는 보이지 않는 끈이 되어 줌을 말하고 있다.  펀이 남편을 기억하듯 말이다. 

 

  노매드랜드는 길 위에 나서면 머무는 사람들에게는 이상하게 보이지만 길 위의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고 서로의 만남에서 환대가 일어나고, 나눔과 배려와 협력이 일어남을 보여준다. <임꺽정>이 길 위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서로 연합하여 삶을 만들어 갔듯이 노매드 랜드도 길 위의 친구들이 얼마나 정직하고, 서로에게 진심인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펀이 밴의 이름을 '선구자'라고 했는데 미국이 자본주의의 천국으로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큰 빈부격차를 겪으면서 노매드족들이 생겨난 것처럼 우리나라에도 머지 않아 빈부격차로 인한 노매드족이 생겨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혹자는 한국을 미국의 51번째 주라고 여긴다고 하는데 2022년 현재 평택에 부는 반도체의 붐으로 전국에서 모인 사람들이 언젠가는 또 다른 곳에 생긴 붐을 따라 평택을 떠날 것임을 일러준다.  지금 평택에는 울산, 창원 등 한때 조선업과 중공업의 붐으로 몰려들었던 사람들이 그 도시를 버리고 모여들고 있다. 살기 좋은 도시를 메뚜기떼가 휩쓸고 가듯이 돈의 위력으로 한 번 휩쓸고 지나가면 이전의 모습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다. 평화로운 들판과 여유로운 시골길의 정취와 사람들의 인심도 사라질 것이다. 

 

  노매드랜드는 2021년 미국과 영국의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실제 유목민들을 섭외하여 배우는 주인공 펀 역할을 한 배우와 데이브 역할을 한 배우가 전부다. 나머지 등장인물은 모두 실제 노매드족들이었다고 한다. 노매드도 삶의 다양한 방식 중 하나다.  언제든 떠날 이유는 많다.  삶의 모퉁이마다 부딪히는 것들이 많을 때 이 영화를 보면 위로가 되고, 사람이 그리워질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사람들에 의해 길로 내몰린 사람들 또는 구속된 삶에서 자유를 찾아 떠난 사람들인데 그들에게서 위로와 힘과 용기를 발견하게 된다.  삶을 공부하게 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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