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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운명의 해석, 사주명리(예언에서 개입으로) 본문
사주는 기본, 해석이 제각각인 삶을 배우다
감이당 고미숙선생의 사주명리 스승인 도담학당의 안도균 님이 쓴 책이다. 서약의학인 수의학을 전공했으나 30년간 독학한 한의학이 주된 공부이다. 책의 이해도를 높이고자 강의를 찾아 들어보니 나의 공부가 아직은 저자의 강의를 50% 이상은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고미숙의 책 <나의 운명사용 설명서>, 감이당의 책 <내 인생의 주역>을 읽은 덕분에 조금은 도움이 되었으나 십독(十讀)은 넘어야 절반이나 이해할까 싶다.
사주 명리는 존재에 대한 진단이다.(63p), 사주는 운명을 맞히는 신비의 이법이 아니라 운명에 개입하는 정치적 장치다(62p) 사주 해석으로 하여금 새로운 욕망을 지지하게 하는 것과 잠재된 주체를 깨우는 것으로 '나라는 존재가 우주 안에서 하나의 척도로 존재하는 단일자(單一者)가 아니라, 다양한 방향으로 솟아나는 다양체임을 환기하는 것이다. 즉, '올해 어떻게 운이 펼쳐지는가? 나는 누구인가?'이 두 가지의 방향으로 운명에 개입한다는 말이다.
몸은 마음 혹은 신경의 명령체계를 포함할 뿐만 아니라, 대우주 혹은 자연의 순환 인치와 에너지가 반영된 소우주다. (44p)구체적으로 결정된 운명은 없다. 운명의 판은 어떤 결정에 강렬한 분위기를 만들어 놓긴 하지만, 그 힘은 일종의 경향성일 뿐, 디테일한 선택은 그 사람의 몫이다. (41p) 그런데 우리는 습관적으로 작은 변수를 무시하고, 기존의 패턴을 반복한다. (41p) 결국 습관대로 살기 때문에 운명도 같은 패턴으로 바뀐다. 운명을 바꾸려면 작은 변수를 무시하지 않고 기존의 패턴을 바꾸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개인은 단지 국가와 사회에 소속된 구성원이 아니라, 국가나 우주의 거시적 운영 원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하나의 총체적인 시스템이다. (25p), 우리는 사주를 보러 간다. 주로 부모, 배우자, 자식, 재물, 학업, 명예운, 자기 자신 즉, 육친(六親)에 대한 궁금증을 갖고 있다. 사주를 보러 가는 행위를 보면 소비의 주체는 자신이지만, 내 운명의 해석을 타인에게 맡긴다. 내 운명 해석의 주체는 음적인 힘을 다루는 상담사가 된다. 그래서 사주명리를 공부할 필요가 있다. 병원도 마찬가지다. 현대의료는 치료 주체를 환자가 아니라 의사로 설정하고 환자는 그 의존적 관계에서 자기 몸을 소외해 버린다. 마찬가지로 마음을 치료하는 주체가 상담가에게 있다면 그것은 정신과 영혼을 소외시키는 것과 다름없다. (22p)
스승들의 풀이 위대한만큼 나의 풀도 위대하다. 그러나 (사막에서 발견한 풀 한 포기는) 잘 드러나지 않는 실체다. 그러니 허무할 것도 부담스러울 것도 없다. (6p) 이 부분은 서문에서 사막의 풀을 보고 쓴 저자의 느낌이다. 자칫 허무주의로 볼 수 있으나 그게 아니다. 우주 삼라만상의 기준으로 보면 인간의 존재가 얼마나 작고 미미한 존재인가를 알고 보면 그 말이 잘못된 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글쓰기를 최고의 과정으로 선정하고 실천하는 감이당의 프로그램은 옳다. 공부가 글을 써서 풀어내는 일이 없다면 끝마쳐지지 않은 것이다. <책만 보는 바보> 주인공 이덕무 등은 글을 써서 서로의 공부를 나누었고, 공부한 내용을 고민하고 토론했으며 그 공부의 쓰임은 나랏일이었다. 이 책은 십독을 위해 먼저 일독한 내용만 기록한다. 천권 읽기의 1/4 지점에 와서 만난 책이다. 일독을 한 것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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