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불. 흙.바람 +나

[ 서평]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본문

서평쓰기

[ 서평]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3. 7. 31. 18:12

고양이가 본 인간 세상, 신랄한 풍자와 해학을 담다

 

  나쓰메 소세키(1867~1916, 49)는 일본의 소설가로 본명은 나쓰메 긴노스케이며 소세키는 호이다. 영어 교사로 일하다가 1900~1902년 영국 유학, 1904년 37세에 <호토토기스>에서 작품 집필 권유에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1편을 문학 모임에서 낭독하고 호평받으면서 11편까지 쓰게 되었고, 이후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신경쇠약, 위궤양에 시달렸다. <하룻밤>, <도련님>, <유리문 안에서> 등의 작품이 있다.

 

  617쪽에 달하는 결코 적지 않은 분량이며 큰 사건이 일어나는 내용이 아니다 보니 어디를 읽어도 별다르지 않다. 주인공 구샤미 선생네 집에 참마 도둑이 든 사건, 고양이가 떡을 먹고 곤경에 처한 모습, 마지막의 고양이가 맥주를 먹고 물독에 빠져 죽는 모습 등이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 구샤미는 중학교 영어 선생이며 자신을 교양인이라고 생각하며 친구 스즈키와 같은 유의 잇속 챙기는 ‘낙관주의인’들에 혐오를 표한다. 고양이의 눈에 비친 주인은 소세키 자신이기도 하다. 거기에 친구 메이데이, 대학원생 간게쓰군이 자주 등장한다. 고양이의 눈에 비친 이들은 ‘인간이라는 족속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애써 입을 놀리고, 우습지도 않은 이야기에 웃고, 재미있지도 않은 이야기에 기뻐하는 것 말고는 별 재주가 없는 자들이라고 생각했다(109p), 요컨대 주인도 간게쓰군도 메이테이 선생도 속세를 벗어나 태평한 시대를 멋대로 살아가는 척하고 있지만, 실은 그들 역시 명예나 이익에 집착하는 속된 마음도 있고 욕심도 있다. 그들이 일상적으로 나누는 담소에서도 경쟁심이나 승부욕은 언뜻언뜻 내비치는데, 한 발짝만 더 나아가면 그들이 평소에 욕을 해대던 속물들과 한통속이 되고 말 터이니 고양이인 내가 봐도 딱하기 짝이 없다. 다만 그 언동이 어설픈 지식을 과시하는 사람들처럼 판에 박은 듯한 불쾌감을 주지 않는 것은 그나마 장점이라 할 만하다. (109p)’

  반면 고양이는 ‘나는 고양이다. 이름은 아직 없다. 어디서 태어났는지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16p)’고 자신을 소개하면서도 콧대가 높고 교양 있는 척하는 건 고양이가 본 주인이나 진배없다. ‘고대의 신은 전지전능한 존재로 숭상받았다. 특히 그리스도교의 신은 20세기인 오늘날까지도 전지전능함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다. 그러나 속인들이 생각하는 전지전능함이란, 경우에 따라서는 무지무능함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하면 분명히 패러독스다. 그런데도 천지가 개벽한 이래 이 패러독스를 깨달은 자로는 내가 유일하다는 생각을 하면, 내가 생각해도 자신이 그런대로 괜찮은 고양이라는 허영심도 생긴다. 그러므로 여기서 꼭 그 이유를 밝혀 고양이도 얕볼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오만한 인간들의 뇌리에 각인시키고자 한다. (233p)’그 주인에 그 고양이인 셈이다.

 

  1905년은 한국으로서는 일본이 대한제국의 주권을 내주는 계기가 된 을사늑약(1905.11.7.)이 있었던 해이지만 반대로 일본은 ‘러일전쟁 승리 후 일본 사회는 전승국 국민이라는 자부심과 낙관주의가 팽배했고, 서양 문물 확산과 자본, 권력만 좇는 세태, 배금주의에 물든 영악한 개인주의 풍조가 만연해 있었다. 영국 유학(1900~1902)후 나쓰메 소세키는 서양인들의 철저한 개인주의를 학습하고, 서구에 대한 문화적 열등감과 동경, 비판의식을 갖는다. 서양화되는 과정에서 일본의 지식인들은 자기본위(本位)로서 행동하고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태도가 자유주의로 용인되어 버린 교양주의를 갖게 되는데 바로 이런 점을 신랄하게 고양이의 눈을 빌어 풍자한 것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이다.

 '무사태평해 보이는 이들도 마음속 갚은 곳을 두드려보면 어딘가 슬픈 소리가 난다.(612p)’고 말한 부분은 패배자의 내면에 대한 관조와 통찰, 또한 그런 사람에 대한 한심함과 반면 그들이 갖는 슬픔에 대한 공감을 표현하고 있다. 고양이가 죽는 장면을 보자. 울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주인이 남긴 맥주를 먹고 춤을 추다 물독에 빠졌으나 헤어 나올 길이 없자 ‘이제 그만 두자. 될 대로 되라지. 드드득 긁어대는 건 이제 싫다.’ 앞발도 뒷발도 머리도 꼬리도 자연의 힘에 맡기고 저항하지 않기로 했다. 죽지 않으면 태평함을 얻을 수 없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고맙고도 고마운지고.(617p)’체념과 달관 그리고 그 아래 깊이 자리한 허무주의를 담고 있다.

 

  고양이의 눈을 통해 인간 군상의 삶을 그렸다고 하는데 작가는 자신의 삶을 고양이를 통해 객관적으로 묘사하기도 하고 고양이에 자신을 투영하기도 한다. 실제로 소세키의 집에 어린 고양이가 들어오는 사건이 있어서 그걸 계기로 이 소설을 썼다고 하니 자작 소설인 셈이다. 100년 전의 소설이지만 서구 문명을 받아들인 한국인의 눈으로 보면 그리 다르지 않은 한국의 지식인 군상의 모습을 2023년에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작품 안에서 발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