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Tags
- 김훈
- 하버드 보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
- 아내의 일기
- 나만 느낄 수 있는 응원
- 쉼보르스카
- 사진집
- 용기
- 자유
- 헤어질 결심
- 희망
- 폭주노년
- 행복
- 교육
- 오블완
- 놀 줄 아는 노인
- 묨을 살리는 요리
- 가족
- 노년 대기만성
- 나쓰메소세키
- 최진석
- 서평
- 스트레스를 줄이는 방법
- 교육의 방향
- 커털린 커리코
- 리더
- 돌파의 시간
- 티스토리챌린지
- 프렌치수프
- 코로나19 백신이 만들어진 과정
- 교육감 직선제 대안
Archives
- Today
- Total
물.불. 흙.바람 +나
[서평]호모 루덴스, 놀이하는 인간을 꿈꾸다 본문
"쳇바퀴에 갇힌 일개미들이 쳇바퀴를 발견하게 한다"
이 책의 저자는 사회학자 노명우다. 그는 이 책에서 하위징아의 <호모 루덴스>를 다시 한번 펼쳐 보인다. 어려운 책을 쉽게 한국식으로, 현대식으로 풀어썼다고 볼 수 있다. 하위징아(1872~1945)는 네덜란드 역사학자로 문화사와 정신사를 주로 연구했다. 그가 쓴 책 <호모루덴스>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노는 인간'이었음을 밝히고, 놀이는 게으른 베짱이의 행동이 아니라 문명을 ㄴ낳은 동력이라고 대담한 주장을 폈다. 나치를 반대하였고 이를 이유로 수용소에 2년간 감금되기도 하였으며 유폐 후에 사망하였다.
인간과 동물과의 차이를 무엇으로 볼 것인가에 따라 '호모'라는 수식어 뒤에 여러 단어가 붙는다. 호모 에렉투스(걷는 사람), 호모 사피엔스(생각하는 사람), 호모 파베르(도구의 인간), 호모 데우스(신이 된 인간) 호모루덴스(놀이하는 인간)......
동화 중에 <개미와 베짱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쉬지 않고 일한 개미는 겨울에 먹을 게 많아서 따뜻하게 쉬지만 여름날 편히 쉰 베짱이는 겨울에 먹을 게 없어서 고생한다는 줄거리다. 하위징아는 여기서 문제를 제기한다. 개미는 근면, 성실을 상징하는 호모 파베르(도구의 인간)의 전형적인 모습이고 이 유형이 추구하는 인간상은 감정이 없는 로봇 인간 수준이며 이들이 추구하는 나라는 '나치 제국주의'로 재현되었다고.
하위징아는 호모루덴스(놀이하는 인간)의 모습을 과거 역사 속에서 찾는다. 동굴벽화, 고대 그리스 원형극장부터 중세의 가발 문화, 권총결투로 배우자를 쟁취하는 문화 등등. 현대에는 직장생활로 주중에 지쳐 주말만 기다린 호모파베르들을 위해 현실감을 최소화한 디즈니랜드와 원작의 디테일에 충실한 피규어에 열광하는 현재의 놀이문화까지 다양해지고 있다. 일하는 인간(호모파베르)과 병행하여 놀이하는 인간(호모 루덴스)의 모습이 함께 하고 있으나 놀이하는 인간에 대한 시선이 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놀이는 생산하지 않고 돈도 되지 않으나 혼자서 할 수 없으니 여럿이 하면서도 평등관계 속에서 유지되는 특징이 있다.
일하는 인간 파베르로 살아온 사람으로서 놀이 시간이 불편해하기도 하고, '그럴 시간에 뭐라도 해'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을 받기도 한다. 월급을 받는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백수'라고 부르며 그 사실을 부끄럽게 여기도록 요구하는 시선들이 아직 우리 사회에 가득하다. 그러나 점점 로봇이 대신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어 일자리는 줄고 있다. 심지어 노년의 할아버지와 20대의 손자와 손녀가 일자리를 두고 경쟁해야 하는 세상이기도 하다.
일은 로봇이 하고 사람은 놀이와 사유하는 시간을 누릴 때가 미래에서 다가오고 있다. 미래에서 부는 바람은 놀이에서 시작되고 있는데 하위징아는 이미 1938년에 알고 있었다. 저자 노명우는 하위징아를 비유와 발췌의 방법으로 새롭게 재조명한다. 다만 <호모루덴스>라고 규정하는 놀이하는 인간은 우리 삶에서 뚝 떼어낼 수 없는 부분이고, 노동하는 인간에서 놀이하는 인간으로 바뀌는 게 아니라 삶 속에 혼재되어 있다는 점을 하위징아가 인정해야 한다. '놀이가 문화를 만든다.'는 하위징아의 문화인류학적인 관점은 지극히 타당한 결론이지만 그 말을 너무 어렵게 학문적으로, 파베르적 해석으로 풀어냈다는 점도 하위징아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다. 과거의 모든 영역을 놀이에 갖다 붙여 '놀이하는 인간'이었음을 증명하려는 의도도 하위징아의 책을 다소 부담스럽게 한다. 우리는 분명 일할 때 보다 놀 때 행복하고, 스트레스도 덜 받는다. 다만 파베르로서 20세기 이후의 100여 년이 1만 년 인류 역사가 이루지 못한 획기적인 변화를 이루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하위징아가 1945년에 나치에 의해 병으로 사망했는데 만약 지금까지 살아서 <호모루덴스>를 썼다면 책의 내용은 많은 부분 달라졌을 것이다. 다만 예측불가능한 미래에 불안감을 호소하는 호모파베르들에게 호모루덴스라는 여유 있는 제안은 반가운 이야기이고 동굴 속에서 일개미처럼 일하는 사람들에게 동굴 입구 쪽에서 들어오는 빛처럼 희망적인 이론임에는 분명하다.
<play for life>를 쓴 작가 Thomas S. Henricks는 "놀이의 반대는 일이 아니다. 놀이의 반대는 우울증이다."라고 말한다. 어떤 연구에서는 교도소 수감자의 활동시간보다 아이들의 활동시간이 더 적다고 말한다. 학교에 머무는 시간은 점점 늘어나고, 아이들이 걸어서 이동하거나 자연을 접할 기회는 점점 줄어드는 상황은 아이들에게 좋은 성장 요건이 될 수 없다. 하위징아는 '놀이는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 놀이하는 인간은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를 하게 된다.'고 말한다. '부러진 뼈가 망가진 정신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점점 '안전'을 강조하면서 아이들의 활동을 제한하기 시작했고 우울증 환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놀이를 통해 자신 속에 숨은 자아를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은 연구하지 않아도 노는 아이의 얼굴로 알 수 있다. 놀이 문화가 일하는 문화와 공존하는 시대를 꿈꾼다.
'서평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평]성냥팔이 소년 (0) | 2023.06.14 |
---|---|
[서평]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 (2) | 2023.06.12 |
[서평]인생의 이야기(나쓰메 소세키) (0) | 2023.06.02 |
[서평] 정약용의 고해 (0) | 2023.06.01 |
[서평] 바다가 들리는 편의점 (0) | 2023.05.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