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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인생의 이야기(나쓰메 소세키)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3. 6. 2. 23:37

 

  '자기본위(自己本位)'로 살아낸 이야기

  저자 나쓰메 소세키(1867~1916)는  일본의 소설가, 평론가, 영문학자로 일본 근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대학에서 영문과를 졸업하고 교직 생활을 하던 중 국비 유학생으로 영국에서 유학을 떠났다가 경제적 어려움과 학문에 대한 고민 등으로 신경쇠약을 앓고 귀국 후 대학에서 영문학을 강의하였다.  첫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로 등단하였다. 이후 대학을 사직하고 아사히 신문에 입사해 전업 작가로 활동하면서 작품을 아사히 신문을 통해 발표했다. <도련님>, <풀베개> 등의 작품이 있다. 

 

    '학문은 교사에게 물어야 하고, 사무는 관리에게 맡겨야 하며, 돈벌이는 상인에게 맡겨야 한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가 세상 한가운데에 서 있는 기반, 도덕적 의무라는 문제의 해결, 상호 간의 갈등에 대한 비평, 이러한 것들은 소설가의 의견을 듣고 참고로 삼아야 합니다. 소설가 스스로도 스런 각오가 없어서는 안 됩니다. '(144p) 소세키가 문학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문학담에서 말하고 있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소신이 뚜렷하여 국가에서 박사 학위를 수여하고자 했으나 여러 번 거절하기도 한 소세키의 소설가로서의 일갈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러한 소신도 어쩌지 못하는 지점이 생긴다. 세 아이의 아버지이자 가장으로서 소신대로 좋아하는 일만 할 수는 없었기에 '정말이지 나는 책을 써서 책을 파는 일은 되도록이면 하고 싶지 않다. 팔려고 하면 조금은 욕심이 생겨, 좋은 평판을 받고 싶기도 하고 인기를 얻고 싶은 생각도 나도 모르게 든다. 나의 품성과 작품의 품위가 얼마쯤 친해지기 쉽다. 이랑적으로 말하면, 자비로 출판해서 동호인들에게 무료로 나누어주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나는 가난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다.(159p)'고 말한다. 

 

   1914년 11월 도쿄에 있는 황족과 화족을 위한 교육기관인 가쿠슈인 동창회인 호진카이에서 강연한 <나의 개인주의>는  '자기본위'의 원칙에 어떻게 다다르게 되었는지의 과정을 잘 드러내고 있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으나 '작문을 하다가 관사가 빠졌다고 야단을 맞기도 하고, 시험에 워드워드가 몇 년에 태어나서 몇 년에 죽었나 같은 문제들이었고 문학이 무엇딘지도 그런 걸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었었다.(181p) 대학 졸업 후 외국 유학을 갔지만 '마치 자루 속에 갇혀 빠져나올 수 없는 사람'이었고 '시시하다는 생각과 아무리 책을 읽어도 마음을 채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던 중 '지금까지는 완전히 '타인 본위(他人本位)로 뿌리 없는 부평초처럼 여기저기 되는 대로 떠돌아다녔기 때문에 모든 게 허사였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184p) '나는 그때부터 문예에 대한 내 입지를 확실히 다지기 위해, 다진다기보다는 새롭게 세우기 위해, 문예와는 전혀 상관없는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말하면 '자기본위'라는 네 글자를 생각하고 그 자기본위를 입증하기 위해 과학적인 연구와 철학적인 사색에 열중하기 시작했다.'(186p) '나는 이 자기본위라는 말을 손에 쥐고 나서부터는 대단히 강해졌습니다. 그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 기개가 생겼습니다. 그때까지 망연자실했던 나에게 여기에 서서 이 길에서 이렇게 가야 한다고 알려준 것은 바로 이 '자기본위'라는 네 글자였습니다. (187p)'  자기본위(自己本位)는 말 그대로 자기의 감정이나 이해관계를 기준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일을 말한다.  소세키는 '자기'가 주인이고 남은 손님이라는 신념은 자신감과 안심감을 준다(189p)'고 말한다.  

 그러면 소세키가 말하는 자기본위, 즉 개인주의는 어떤 조건을 가져야 할까? 윤리적으로 어느 정도의 수양을 쌓은 사람으로서 첫째는 자기 개성의 발전을 이루려 한다면 동시에 타인의 개성도 존중해야 하며 둘째로는 자기가 소유한 권력을 사용하려고 한다면 그에 따르는 의무를 알아야 하며 셋째, 자기의 금력을 보여주고자 한다면 그에 따르는 책임을 중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199p) 그리고 영국의 넬슨 제독의 유명한 말을 인용한다. "England expects every man to do his duty."(영국은 만인이 자신의 의무를 다하기를 기대한다) 즉, 의무감 없는 자유는 진정한 자유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나 집단주의가 아닌 개인주의를 선택하면 감당해야 할 것도 있다. '개인주의는 사람을 목표로 하여 입장을 결정하기 전에 먼저 옳고 그름을 분명히 하고 태도를 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홀로 외톨이가 되어 외로운 기분이 듭니다. 그건 당연한 겁니다. 잡목이라도 다발로 묶이면 다음이 든든한 법이니까요.(205p)'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통해 막부시대를 청산하고 왕정체제로 복귀하면서 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집단주의를 선택했다. 외국의 문물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인 일본의 유신정책을 보면서 비판적인 생각을 가졌고 나름의 철학을 중심으로  소세키는 '자기본위와 개인주의'를 선택했다. 

 

  신경쇠약과 함께 위궤양을 앓았던 소세키는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런 그가 1906년 모리타 소헤이에게 보낸 편지에 나약해진 심경을 이겨내라는 당부를 하는데 자신에게 하는 말로 들린다. "타인은 결코 자기보다 훨씬 뛰어나지는 않아. 또한 결코 자기보다 훨씬 뒤떨어지지도 않지.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나는 이런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고 있네. 그걸로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네. 자네, 약한 소리를 하면 안 되네. 나도 약한 남자이지만 약한 대로 죽을 때까지 해볼 것이네. 하고 싶지 않더라도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 (257p) 소세키는 인생을 진지하게 응시하고 분석하면서 삶의 의미를 고민하였다.  이 책에는 소세키의 소설이 아닌 글 중에서 그의 문학 세계와 정신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것들을 선별하고 번역하여 엮은 내용이 실려있다.  기고, 수필, 담화, 강연, 편지 등 다양한 장르이다.  소세키는 "학문으로써 인간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처음부터 무학으로 있는 편이 낫다."라고 말하면서 학문을 한다는 건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깨우치는 게 중요함을 역설하였다. 소세키가 제자 모리타 소헤이에게 편지로 한 말을 보면 그가 자기본위를 얼마나 생각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백 년 후, 백 명의 박사는 흙으로 변하고, 천 명의 교수는 진흙으로 화할 것이네. 나는 나의 글이 백대 후에까지 전해지기를 바라는 야심가라네."(317p)

 

    이 책을 읽는 동안 독자는 나쓰메 소세키의 우울하고 진지한 시선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  그럼에도 자신만의 시선의 원칙을 찾고자 고민한 학자적 연구 자세로 결국 자신만의 '자기본위'라는 금맥을 찾아냈고,  자신의 생각을 오롯이 표현한 작품으로 남긴 열정을 발견한다.  남의 말을 맹목적으로 따르기만 할 뿐 자각을 통해 스스로의 길을 찾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주는 조언이기도 하다. 당신의 '자기본위'의 시선은 살아있는가?를 100년 전에 죽은 나쓰메소세키가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