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불. 흙.바람 +나

[서평]서민적 글쓰기 본문

서평쓰기

[서평]서민적 글쓰기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2. 9. 1. 17:28

  이름을 타고났다. 서민이라니? 얼마나 부르기 편하고 기억하기 편한 이름인가? 책 제목도 이름을 그대로 붙여서 <서민적(的) 글쓰기>로 명명하였다.  저자는 열등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죽어라 공부했고, 글도 죽어라 써서 지금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그러나 저자가 그의 말처럼 열등감을 가질만한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든다.  '당대의 가장 잘 나가는 직업인 의사도 컴플렉스에 시달리는구나. 컴플렉스는 비교에서 시작한다는데, 서민교수도 비교에서 자유롭지 못했구나. 결국 자신의 컴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의사 말고 글쓰기의 최고 실력자임을 인정받고 싶은 심리가 서민교수에게도 있었구나. ' 저자는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기생충학과 교수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재학 시절 소심함과 외모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글쓰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어떻게 경향신문의 칼럼을 쓰는 수준의 경지에 이르렀는가를 말해 준다.   

 

   컬럼비아대 정신 의학 교수인 켈리 하딩에 의하면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글로 쓰는 것만으로 주관적 고통이 줄어들고 면역기능의 혈청 지표가 개선되었다고 한다. 3일 동안 하루에 15분씩 글을 쓰는 것처럼 간단한 방법이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를 재구성한다는 것이다.  '글쓰기는 우리의 이야기에서 의미를 찾도록 도와준다. 이것을 외상 후 성장(post traumatic growth)라고 한다. 그 경험 후 자신이 어떻게 강해졌는지를 깨닫는다. 이런 과정을 통해 감사를 느끼고 타인과 가까워지고, 삶의 우선순위가 바뀐다고 한다.'

 켈리 하딩 교수의 이론이 서민 교수에도 그대로 적용된 셈이다. 

 

 나는 글쓰기에 관심이 많아서 이제까지 은유, 강원국, 정희진 작가의 책을 읽었는데 서민 교수의 글은 앞의 세 분에 비해 너무 가볍고 다듬어지지 않은 글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런데 다른 작가들이 말하지 않은 부분까지도 가감없이 드러내는 용기와 내숭 없는 글이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어느 정도 책 읽기를 즐긴다고 하는 내가 가장 릭기 지루했던 책으로 꼽자면 <양철북>과 <고도를 기다리며>가 떠오른다. 특히나 <양철북>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함에 그 책의 두꺼움은 인내심의 한계를 극복하고 그저 다 읽었다는 자신의 만족감만 겨우 가졌을 뿐이었는데 서민 교수도 <양철북>을 거론하여 반가웠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한 분이 있었구나. 하고.

 

  서민 교수가 제시한 글쓰기의 원칙 중 '기-승-전-결'은 기본 중의 기본인데도 놓치기 쉬운 부분이다.  먼저 글을 쓰게 만든 에피소드가 나오고, 그다음으로 에피소드에서 의미를 이끌어내 문제를 제기한다. 그다음에는 반전이 있어야 하며, 이것들을 종합해서 결론으로 이끄는 것이다. (193p) 예시로 든 내용이 사슴고기다. 

 

 기: 사슴고기를 먹었는데 맛있더라.

 승: 이렇게 맛있는 고기를 우리나라는 왜 안 먹고 있을까?

 전: 사슴고기가 맛은 있지만 노린내가 나는 단점이 있다. 

 결: 그깟 노린내 때문에 천혜의 건강식품을 외면해선 안된다. 

 

 작가는 기-승-전-결 중에서 '기'를 강조한다. 드라마의 첫 부분을 보고 끝까지 볼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처럼 글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서민적 글쓰기>는 너무 솔직해서 읽기 불편한 내용도 글쓰기로 녹여내는 서민 교수의 재능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떻게 성장하고 있는 지를 말해 준다.  글쓰기는 자기 치유의 힘도 있고, 말을 대신하는 위력도 있으며 작가에게는 삶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어떤 글이 좋은가? 보다는 어떻게 삶을 살아내는가? 어떻게 치열하게 글쓰기를 하고 있는가?를 이 책을 통해 보게 된다. 

  여성학자로서 삶의 전사처럼 살아가는 정희진 작가의 글쓰기와 기생충학자로 유머와 풍자, 반전의 매력을 지닌 서민 교수의 글쓰기는 각각 개성이 넘친다. 글쓰기를 하면 할수록 세상에는 글을 잘 쓰는 분들이 이렇게 많은가? 하는 의문이 든다. 

'서평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평] 질서 너머  (0) 2022.09.21
[서평]직원 우선주의  (0) 2022.09.16
[서평]손도끼  (0) 2022.08.27
[서평] 초역 니체의 말  (0) 2022.08.08
[서평]1984  (0) 2022.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