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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1984 본문
지금 내가 하는 생각은 나의 생각인가? 시대가 만들어낸 생각인가?
조지오웰은 영국의 작가다. 에릭 아서 블레어(1903~1950)의 필명이다. 영국 신민지 인도 벵갈의 하급 관리인 아버지를 둔 그는 영국의 명문학교 이튼스쿨에서 공부했다. 이튼에서 공부할 때 <멋진 신세계>를 쓴 올더 헉슬리가 그를 가르친 교사 중의 한 명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버마에서 경찰 부지휘관으로 일했다. 하지만 자신의 일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렸고 그로 인해 방랑생활을 하였다. 1930년대 후반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기도 하였으나 프랑코 장군에 의해 계급 사회를 형성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서로 진영이 다른 파시즘(독일)과 막시즘(러시아)이 연합하여 1939년 독소 불가침 조약(1939.8.23.)을 맺고 중부 유럽의 분할 점령, 독일의 폴란드 침공이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자 러시아 혁명과 소련 정부의 부패한 사회주의를 풍자하는 내용의 소설 동물농장(1945)을 발표한다.
동물농장은 "모든 동물은 평등하지만 어떤 동물은 더 평등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오웰이 원하는 사회주의는 평등의 기회, 따뜻함, 인간애를 기반으로 한 사회주의인 반면 오웰이 본 지식인들의 사회주의는 교조적 사회주의로 똑똑한 그들이 대중들에게 요구하는 질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같은 사회주의를 택했으나 스탈린의 대숙청, 스페인 내전 등의 불합리한 내용들을 눈감아주는 진영 논리에 실망한 오웰은 집단이 개인에게 행하는 권력과 폭력에 끊임없이 저항했던 인물이었다. 또한 작품을 통해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1984>는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함께 디스토피아를 그린 소설로 손꼽힌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포드의 컨베이어벨트의 자동화를 원년으로 인간의 기계화를 다룬 소설이라면 <1984>는 전체주의 하에서 감시받고 통제되는 개인이 얼마나 나약하고, 생각마저도 지배당하게 되는 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39세)는 하급당원이다. 빅브라더 사회는 빅브라더-핵심당원(2%)-하급 당원(13%)-노동자(프롤레타리아 85%)로 구성되었다. 핵심당원과 하급 당원은 텔레스크린을 통해 24시간 감시당하고, 모든 행동에 제약을 받지만 프롤레타리아(프롤)는 감시와 통제로부터 자유롭다. 그 이유는 간단한 루머와 선동만으로도 통제가 가능한 집단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노동, 가족, 섹스, 유흥, 도박, 복권 정도에만 관심을 가진 단순한 존재들이라 통제가 쉽다고 보는 것이다.
윈스턴은 "개인의 정신까지 지배당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그 생각을 잊지 않기 위해 일기 쓰기라는 반역을 시작한다. 그리고 이혼을 하지 않은 처지임에도 당에서 허락하지 않는 일인 줄리아와의 연애를 하였는데 이 또한 반역이었다. 거기에 오브라이언의 꾀임에 속아 형제단의 일원이 되었으며 결국 그는 그의 생각까지도 바꿔야 하는 개인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전형적인 인물이 되고 만다.
<1984>에서 엠마누엘 골드스타인이라는 저항조직 형제단의 리더가 작성했다고 하는 <소수 집단주의의 이론과 실체>(284쪽)는 <1984>를 통해 조지 오웰이 말하고자 하는 이론이 그대로 나온다. "전쟁은 평화, 자유는 구속, 무지는 능력"을 슬로건으로 한다. 신조어를 만들어 국민들이 국가에서 만든 언어만을 쓰게 한다. 예를 들면 '어둡다(dark)=안밝다(unlight), 밝다(light)=안 어둡다(undark)'식으로 표현한다. 신조어는 단어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다. 단어 파괴다. 신조어의 최종 목표는 사고의 범위를 좁히는 데 있다. 사상 범죄를 저지를 수 없게 하는 것이다. 신조어 '혼삶'은 '개인주의, 유별나다'라는 뜻이다.
-계급 투쟁시 중간 계급이 상층 계급을 끌어내리기 위해 하층 계급에게 자유와 평등을 이야기하고 이용해서 결국 목적을 달성한 후에는 하층 계급은 중 간 계 급에게 버림을 받는다.
-소수들이 자신들의 정치세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선택하는 것이 집단주의다.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통제하는 방식에는 교육의 질을 낮추는 것도 있다.
-만일 사람들이 당의 거짓말을 믿는다면 그리고 모든 기록들이 그렇게 되어 있다면 그 거짓말은 역사가 되고 진실이 되는 것이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
이 소설에는 당의 권력을 철저하게 따르는 핵심당원인 오브라이언이 나온다. 그는 윈스턴의 생각을 개조하기 위해 무려 7년동안 윈스턴을 감시하고 범죄현장에서 체포한 후에 윈스턴이 "2+2=5"라고 자백하게 한다. 오브라이언이 윈스턴에게 말하는 집단주의의 권력에 대한 해석이다. 권력 앞에서 개인의 존재는 어디에도 없음을 말한다.
"누구든 권력을 장악하려면 포기하지 않으려고 하지 권력은 수단이 아니야, 목적 그 자체지. 혁명을 보존하기 위해 독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독재를 하기 위해 혁명을 일으킨 걸세. 박해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박해일뿐이고, 고문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고문일 분이지. 마찬가지로 권력의 목적은 권력 그 자체야. "
하지만 오웰은 자신이 추구하는 사회주의는 소련이 행하는 전체주의가 아님을 분명히 하고자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그는 '1936년부터 내가 쓴 진지한 작품들은 그 어느 한 줄이건 전체주의에 맞서기 위해 내가 아는 민주적인 사회주의를 위해 쓴 글이다.', '사회주의의 진정한 목표는 행복이 아니다. 행복은 여태껏 사회주의의 부산물이었고 우리가 아는 한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사회주의의 진정한 목표는 인간적인 형제애다.'라고 <사회주의는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글에서 그의 생각을 밝히고 있다. 그는 진정한 지식인이라면 진영 논리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상식과 양심을 따르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준 인물이기도 하다.
오웰은 지배 계급에 의해 운영되는 집단 국가가 국민의 이익을 망각하고 지배자를 위한 권력에 집중하는 모습을 그려낸다. 이 생생하고 역겹고 소름끼치는 절대 부패에 대한 탐구가 <1984>를 끔찍하게 매혹적으로 보이게 한다.-뉴욕 타임즈-
소설<1984>를 읽다 보면 현재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의 빅브라더가 누구인가를 살피게 된다. 정부는 코로나19를 겪은 이후 개인의 정보를 개인의 동의없이 네이버, 카카오에게 넘겼다. 정부가 개인정보가 중요한가? 건강이 중요한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한다면 건강이 아니겠는가라는 전제하에서 행한 일이다. 백신 접종을 위한 절차였다고는 하나 이미 개인의 정보는 합법적으로 플랫폼회사에서 관리하게 되었다.
사회주의인 중국은 CCTV가 많기로 유명하다. 약 4억대의 CCTV가 있으며, 인구 1000명당 117대가 있는 도시(타이위안)도 있다. 또 스카이넷이라는 감시 네트워크를 이용하여 신장 위구르, 홍콩 집회등에서 활용하고 있다. <1984>에서 오웰이 우려하던 텔레스크린의 위협이 현실화 되고 있는 것이다.
이미 개인의 생각은 개인의 자유에 의해 결정된다기 보다는 사회적 기반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 맞다. 민주주의에서는 자본에 의해 결정되고, 사회주의에서는 당의 결정에 의해 따른다 .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생각은 나의 것인가? 사회가 형성한 것인가? '에 대한 물음에 답을 찾는 것은 윈스턴이 시작한 일기쓰기처럼 반역일 수도 있을까?
코로나19는 끝나지 않았고, 그 너머의 세상이 어떻게 변화할 지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읽기에 거북한 면이 많다. 개인이 통제당하는 현실을 읽어내는 일은 자신이 윈스턴이 겪은 내용들을 간접적으로나마 동일시해야 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역사가 어떻게 흘러가는지에 대한 목격자로서의 통찰을 원하는 분에게는 일독을 권한다. 참고로 이 책은 읽지 않았음에도 읽었다고 영국사람들이 말하는 책 중 1위를 차지하는 책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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