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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질서 너머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2. 9. 21. 21:45

질서 너머에는 양심이 있다

 

   정신과 의사는 직업 중에서 가장 인내심을 요하는 직업일 것이다. 정작 정신과 의사 본인도 불안증세로 약을 처방받아서 복용하는 입장이다. 저자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환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함께 해결책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의사도 환자가 되는 것이다.  심리학자로서 저자는 묻는다. "우리는 안전과 통제가 지나쳐서 발생하는 위험을 어떻게 피해야 유익할 수 있을까?" 전작에서 지나친 혼돈의 대안으로 규칙을 제시했다면 이번에는 지나친 규제를 완화하기 위해서 대안을 묻는다. 나는 저자에게서 '양심'이라는 단어를 찾았다. 

 

  저자 조던 피터슨은 캐나다에서 태어나 냉전 시대 이데올로기의 위험을 경험한 뒤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을 연구하기 위해 심리학을 공부했다. 종교심리학과 성격심리학이 주요 연구 분야이다. 임상심리학자로서 사람들을 치료했고, '정치적 올바름'과 정체성 정치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으로 언론과 대중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2018년에 출간한 「12가지 인생의 법칙」에 지나친 혼돈을 바로잡는 데 규칙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여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그 후 2020년 코로나를 맞이하여 딸의 인공 발목 관절 교체 수술, 아내의 신장암 수술, 저자는 불안 증세로 인한 약물 복용 부작용을 겪었다. 그런 과정에서 나온 책이 「질서 너머」다.  

 

  왜 답을 찾은 것이 「질서 너머」인가? 질서는 탐구된 영역이다. 우리가 적절하다고 여기는 행동으로 목표하는 결과를 얻을 때 우리는 질서의 영역 안에 존재한다.  그러나 저자는 말한다. '규칙을 충실히 따라서 빛나는 본보기가 될 수 있을 때는 규칙을 따라라. 하지만 그 규칙이 큰 걸림돌이 되어 그 핵심 가치를 구현하지 못하게 될 때는 규칙을 깨뜨려라.'(69p)

 

 12가지 법칙 중에서 유명 유투버인 김미경강사는 <법칙 4. 남들이 책임을 방치한 곳에 기회가 숨어있음을 인식하라.>에서 의미를 발견했다고 말한다.  '당신이 기꺼이 짊어진 책임에 비례해서 삶은 의미 있어진다. 삶의 고통과 증오를 가라앉히는 해독제는 무엇일까? 각자에게 가능한 최고의 목표가 그것이다. 최고의 목표를 추구하는데 필요한 조건은 무엇인가? 남들이 무시하거나 소홀히 하는 것들까지 책임지고자 하는 마음가짐이다.'(165p) "나는 결점 투성이지만 적어도 이 일은 하고 있어. 적어도 남에게 기대지 않고 잘 지내고 있어. 내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어.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가고 있어." 이런 마음가짐들이 진정한 자존감을 형성한다. 

 

 

 나는 현재 지구의 사람들이 직면한 문제를 푸는 해답으로 <법칙 6. 이데올로기를 버려라>에서 의미를 발견했다.  개인과 사회의 복잡한 문제를 성, 계급, 권력 같은 단일한 변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위험하다. 니체는 유명한 말 "신은 죽었다"라고 말했다. 니체가 신을 부정한 말이 아니었다. 서양 세계의 기독교 중심 일신교 사상의 목표지향적인 구조와 그것이 제시하는 의미 있는 세계 바깥으로 인생의 목적이 밀려나 불확실해짐에 따라 허무주의가 부상하여 우리의 실존을 황폐하게 만들 것이다. 즉, 만물을 창조한 아버지 대신 전체주의적 이데올로기(사회주의)가 사람들을 지배할 것임을 예견한 말이었다. 실제로 프로이트는 인간의 동기를 리비도(성)로 환원하였고, 마르크스는 계급에 기초한 경제적 관점으로 인간을 설명하여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영원한 전쟁터라고 말했다. 자크 데리다는 마르크스주의에서 경제를 권력으로 대체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니체는 신이 죽은 이 세계에서 '초인(더 높은 인간)이라는 새로운 종류의 인간이 나타나야 사회가 '절망'과 '지나친 정치 이론화'라는 양쪽 암초를 향해 표류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196p) 이 문제에 대해 조던 피터슨은 더 작고 정확하게 정의한 문제에서 시작하자. 겸손하자. 방을 청소하자. 가족을 보살피라. 양심을 따르라. 바르게 살라. 생산적이고 흥미로운 일에 전념하라. 이것들을 해냈을 때 더 큰 문제를 찾아 도전하라. 여기에서도 성공한다면 더 야심 찬 계획으로 이동하라. 그러기 위해서 이데올로기를 버리라고 말한다.  공자가 언급한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가 떠오르지 않는가? 동양과 서양의 학문이 결코 다르지 않음을 발견한다. 

 

 저자 조던 피터슨은  전작 [12가지 인생의 법칙]과 , 이번에 출간한 「질서 너머」를 합쳤을 때 '도교의 음양처럼 한 세트를 이루도록 기획하였다. 본인과 가족들의 건강 악화 속에서도 혼돈 속에서 살아가는 상담자들과 세상을 향해 의미있는 삶을 영위하는 방법을 제시한 학자로서의 책임감과 의무감에 경외감을 느낀다. 

 

 저자의 12가지 법칙을 요약하자면 "현자들이 일러 주듯이, 우리는 '지금 여기' 있기 위해 싸워야 한다. 우리는 오로지 우리의 마음에 의지해 '미래에 무엇이 존재할 수 있는지'조사해야 한다. 이 질문에 답하려는 것, 그것이 인생이다. 현실과의 진정한 만남이다. '무엇이 존재하는가?'지금 존재하는 것은 이미 완성된 죽은 과거다. '무엇이 존재할 수 있는가?' 살아있는 의식이 광활한 가능성과 결합할 때 새로운 모험이 펼쳐지고 새로운 존재가 등장한다."

 

  이 책은 500쪽에 가까운 분량에 이른다. 거기에 기독교를 기반으로 한 서양의 문화를 기반으로 해서 쓰여진 책이라서 동양의 한국인의 정서로 읽기에는 다소의 거리감이 있다. 특히 기독교를 믿는 백인 남성의 입장에서 쓰인 책이라는 거부감도 있다.  또 <고통스러울지라도 감사하라>, <분개하거나 거짓되거나 교만하지 마라>, 등의 평범한 진리와 도덕적인 말들은 너무나 뻔한 말로 들리기도 한다. <여전히 나를 괴롭히는 기억이 있다면 아주 자세히 글을 써 보라>는 글쓰기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것으로 보이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은 하지 마라>는 제목을 잘못 뽑은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분명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양심의 명령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 소제목을 그렇게 뽑은 건 자칫 오해를 낳을 수 있다.

 

  조던 피터슨의 책은 별반 새로울 게 없는 이야기지만 혼돈과 혼란 속에서 무언가 구심점을 찾아야 하는 세계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을 제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혼돈은 자유롭고, 창조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안전하지 못하다. 반면 질서는 우리를 구속하고 편협하게 한다. 그러나 안전할 수 있다.  혼돈과 질서는 역사 속에서 계속 반복된다. 그러므로 그 접점을 찾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나의 455쪽에 이르는 그의 책에서 나만의 문장으로 요약한다.   "질서 너머에는 사람들의 양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