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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원하지 않는 일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애빌린 패러독스(Abilene Paradox)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1. 4. 20. 16:30

   가정 혹은 직장이나 사회생활에서 서로 의견을 존중해 준다는 이유로 전혀 엉뚱한 결과에 도달하는 경험이 있다.

 그럴 때 아무도 만족하지 못하는 상황임에도 누군가 용기내어 말하지 않으면  결국 나도 그 엉뚱한 결과에 의해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수직적인 상하관계가 있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그러니 의견을 내는 사람도, 또 그 자리에서 의견을 듣는 사람도 그 의견이 시행되는 모습을 상상해 보고 말할 필요가 있다.

이런 상황을 이론으로 정립한 사람이 있다.

 

  애벌린 역설 혹은 패러독스(Abilene Paradox)는 조지 워싱턴대학교 제리 하비(Jerry B. Harvey)가 내놓은 이론으로 집단행동 중에 일어나는 아이러니를 일컫는 용어이다. 내용은 이렇다.

 

  섭씨 40도가 넘는 무더운 여름 주말 저녁에 미국의 텍사스 주의 한 가정에 사위가 방문을 하였다.

누군가 “우리 애빌린에 가서 저녁이나 먹을까?” 라고 말했다. 처음 제안한 사람은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무심코 뱉은 말이었다. 가족들은 속으로는 ‘이렇게 더운 날 어디를 가요? 80km나 떨어진 애빌린까지는 2시간이나 걸린다고요. ’라고 생각했지만 누군가 “좋아요. 거기 스테이크 맛있는 집이 있어요.”라고 맞장구를 쳤다. 이 사람도 사실 가기는 싫었지만 제안한 사람의 말에 굳이 반대하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가족들은 식사를 하기 위해 애빌린으로 갔다. 2시간 동안 운전하여 애빌린에 갔으나 운이 나쁘게도 레스토랑의 음식은 맛이 없었다. 다시 돌아오는 길도 2시간이 걸려서 집으로 돌아왔다.

  식사가 어땠는지 묻자 모든 가족들은 외식보다는 시원한 집에서 편하게 식사를 하고 싶었지만 다른 가족들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어서 외식에 갔다고 불평을 늘어놓는다. 어느 누구도 원하지 않았지만 그 누구도 적극적으로 거부하지 않아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동참하게 되는 상황을 ‘애빌린 역설(Abilene Paradox)’이라고 한다.

 

  가정이나 직장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어떤 조직이나 사회에서 가능하면 묻어가는 것이 편하다고 생각하고 의견을 말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러다 보면 결국 아무도 원하지 않는 결과를 행동으로 실행해야 하는 일이 실제로도 일어난다.

 

   회의를 하거나 직장에서 자신의 의견을 매번 분명하게 내세우면 ‘고집이 세다.’, ‘괴짜다.’, ‘융통성이 없다.’ 등으로 외면을 당하기도 하고, 매번 같은 사람과 부딪혀야 하는 상황이 생겨서 곤혹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상황을 회피하기 위해 아무도 원하지 않는 결과를 불평하면서 실행하는 것은 어떤가? 아마 그것은 더욱 나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우리는 요즘 집단지성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여럿이 의견을 모으면 협업으로 인해 보다 나은 지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집단지성을 말할 때 주의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바로 이 부분이다.

  조직 혹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진심과는 다르게 얼떨결에 분위기의 힘에 눌려서 합의를 하지만 결국 아무도 동의하지 않는 합의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애빌린 역설(Abilene Paradox)’는 어떻게 막을 수 있을 것인가? 누군가 먼저 그 흐름의 방향이 잘못되었음을 말할 용기있는 행동을 해야 한다. 예를 들면 “애빌린에 가서 저녁이나 먹고 올까?”라는 말을 들었을 때 “오늘은 날씨가 40도가 넘어요. 이런 날은 집에서 시원하게 지내면 어때요?”라고 다른 의견을 제시해 보는 것이다.

 

또 하나는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제안하는 사람이 애빌린에 다녀오는 자신들의 모습을 한 번 생각해 보고 말하는 것이다. “애빌린에 가서 저녁이나 먹고 올까? 그런데 말야. 생각해 보니 이 날씨에 애빌린까지 저녁 먹으러 가는 건 무리겠지?”라고 말하고, “누구 좋은 생각 있어?”라고 말했다면 아마 다른 의견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만족하는 저녁식사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