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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는 시

박노해 <다시 >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4. 10. 14. 18:39

 

 다시

                          박노해

 

 

희망찬 사람은 

그 자신이 희망이다

 

길 찾는 사람은

그 자신이 새길이다

 

참 좋은 사람은

그 자신이 이미 좋은 세상이다

 

사람 속에 들어 있다

사람에서 시작된다

 

다시 

사람만이 희망이다

 
-박노해 <사람만이 희망이다> 중에서 시 <다시> 전문-
 

  햇수로 26년 전인 1998년 12월에 지인이 선물한 책을 책꽂이에서 찾았다. 용케 버려지지 않고 남아 있어 펼쳐 드니 요즈음에 나온 책 <걷는 독서>의 문체가 이미 <사람만이 희망이다>에서 시작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걷는 독서>는 시집이 아니라 잠언집에 가깝고,  두툼하고 파란 책표지가 마치 고전에서 에센스만 모아서 기록한 것과 같은 잠언으로 채워져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잠언과 영어 번역도 이미 <사람만이 희망이다>를 쓰던 시절부터 계획되어 있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창자가 가난해야 뱃속이 환해지고 얼굴이 맑아지고 정신이 빛난다'(p.120)고 말하는 시인의 말을 노트 한 켠에 메모해 두었다.  부자는 먹을 것이 충분하니 허겁지겁, 아무 거나 먹지 않으나 가난한 사람들은 '우선 먹고 보자', '먹고 죽은 놈이 때깔도 곱다'느니 하면서 과식을 부추겨 배가 두둑해진다는 말을 1997년에 이미 시인이 그의 책에서 기술하고 있다.  의료시장은 이제 비만을 질병으로 규정하고 비만치료제를 누가 먼저 개발하느냐를 두고 경쟁 중이다.  얼굴이 맑아지고 정신이 빛나는 시간! 을 되찾으려면 가난한 사람들은 다시 비만치료제를 위해 일을 해야 한다는 논리라니.  

 

1957년 태어났고 본명은 기평, 노해는 '박해받는 노동자의 해방'에서 비롯되었다. 야간고등학교 졸업 후 섬유, 금속, 버스회사 등에서 일하고 노동운동하다 해고당했으며 1989년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의 결성을 주도했고, '국가보안법위반' 죄로 1991년 구속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7년 6개월간 경주남산교도소에서 복역한 후 출소하였다.  이 책은 그가 교도소에 수감되었던 때에 지인들의 도움으로 출판된 걸로 보인다.  판화가 이철수의 그림도 간간이 볼 수 있다.  겨울, 벽, 씨앗, 뿌리, 봄, 나무, 사람이 주로 등장하는 시인의 글들은 시집이라고 보기보다 그의 글들을 묶어낸 책이다.  노동 해방 운동 전사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삶의 안쪽에서 자기 자신과 치열하게 투쟁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를 묻고 살아내야 할 운명 같은 삶을 위해 글을 썼다.  '길 찾은 사람은 그 자신이 새길이다'라는 시구처럼 그는 새길을 열었다. 지금은 시인, 사진가, 세계의 평화를 위해 일하는 평화운동가다. 그는 이미 많은 책을 펴낸 유명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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