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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어른의 재미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4. 5. 19. 22:54

  절제와 균형이 어른의 재미

  몇 년 전에 법륜스님의 설법을 들으면서 의문이 나는 일이 있었다. 이런 이야기였다.  두 행자스님에게 주지스님이 똥지게를 지라고 일을 시켰다.  한 사람이 통을 무겁게 담아 힘겹게 오가는데 보니 다른 한 사람은 가볍게 지고 한량처럼 오고 가고 있는 게 아닌가? 화가 난 사람이 스님께 가서 물었다.  "스님, 너는 무겁게 통을 지고 다니는데 저 사람은 가볍게 지고 다닙니다.  말이 됩니까?" 그러자 스님이 말하기를 "나는 너에게 무겁게 지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저 똥지게를 지라고 말했을 뿐이다." 그 설법을 들을 때는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지 않을까? 똥지게도 마찬가지로 무겁게 지고 날라야 밥이라도 먹을 수 있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러나 요즘 가만히 생각해 보면 딱 그런 것만도 아니다.  100을 지고 힘들어서 3번 만에 힘들어 못하겠다고 드러눕는 것보다 30을 지고 10번을 하고 나서도 힘이 남으면 몇 번 더 할 수 있다면 그게 더 나은 선택일 수 있다는 말이다. 

 

 "인생의 재미가 균형에 있다는 걸 알 때 우리는 비로소 어른이 된다."는 저자의 말은 50대를 넘은 분들만이 알만한 내용이 아닌가 한다.  "못 가진 것에 대한 욕망으로 가진 것을 망치지 마라. 지금 당신이 가진 것 역시 한때는 바라기만 했던 것 중 하나였을 것이다."라고 말한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쾌락주의로 불리는데 욕망의 절제를 통해 고통을 없애고, 쾌락(아타락시아=평정심)에 도달하는 것을 최고선(最高善)으로 규정했다. 쇼핑, 승진, 돈, 명예로 인한 도파민, 세로토닌 등 우리가 쾌락을 느끼는 호르몬은 쓸수록 더 많은 호르몬을 요구하기 때문에 한계체감효용의 법칙에 의해 몇 번의 경험으로 만족도는 낮아진다. 오히려 운동이나 공복유지, 찬물 샤워 등의 전혀 다른 자극을 주었을 때 더 많이 생성된다고 한다. 

  저자는 책의 순서를 네 개의 장으로 구성했다. '나이들수록 재미있게, 균형 잡기의 기술, 인간관계의 법칙, 운명의 여신을 내 편으로 만드는 법'이다. 각 장마다에 어울리는 어록을 곁들였다. 이 어록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핵심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주제와의 적합성이 뛰어나다.  '당신이 익힌 일이 아무리 보잘것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 일에 전념하라. 그리고 그 속에서 즐거움을 찾아라. 진심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신들에게 맡긴 사람처럼 당신의 나을 생을 보내라. 그리하여 이제부터는 누구의 주인도 누구의 노예도 되지 마라.(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1장. 나이 들수록 재미있게

'일하는 시간과 노는 시간을 뚜렷이 구분하라. 시간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매 순간을 즐겁게 보내고 유용하게 활용하라. 그러면 젊은 날은 유쾌함으로 가득 찰 것이고 늙어서도 후회할 일이 적을 것이며 비록 가난할 때라도 인생을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루이자 메이 올컷)-2장. 균형 잡기의 기술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란다. 각각의 얼굴만큼 다양한 각양각색의 마음을 짧은 순간에도 수만 가지의 생각이 떠오르는데, 그 바람 같은 마음을 머물게 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것이란다. '(앙투안 드 섹텍쥐베리)-3장. 인간관계의 법칙

'습관이 성격을 만들고 성격이 운명을 만든다. 그러니 오늘 하루 좋은 행동의 씨앗을 뿌려 좋은 습관이라는 열매를 거둘 수 있어야 한다. 좋은 성격으로 나 자신을 다스리면 운명은 그때부터 새로운 물을 열 것이다.'(토머스 데커)-4장. 운명의 여신을 내 편으로 만드는 법

 

 이 책은 저자가 은퇴 후의 삶을 재미있게 운용하면서 다른 이들에게도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은 마음으로 글을 썼다고 한다. 그의 글의 요점은 다음과 같다.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사라지며 얕은 요행은 언젠가 들통난다. 무리하지 말고 나에게 맞게 균형을 잘 잡는 법만 익혀도 하루하루는 충분히 재미있고 인생도 저절로 잘 풀린다. 당장의 욕심과 조급함에 균형을 잃지 말고 놓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버리고 "그냥 나 자신의 인생을 살자, Keep Calm and Carry On. 평정심을 유지하고 그냥 하던 일을 계속하자 남들이 너무 빨리 달려가는 것 같다고 내 페이스를 잃을 필요는 없다. "

 

 저자가 인용한 <채근담>의 한 구절을 인용한다. "작은 길 좁은 곳에서는 한 걸음만 멈추어 다른 사람을 먼저 지나가게 하고, 맛있는 좋은 음식은 10분의 3만 덜어서 다른 사람에게 맛보게 하라. 이것이야말로 세상을 안락하게 살아가는 최상의 방법이다. " 삶을 애쓰며 살지 말고,  자신의 호흡과 걸음에 맞추어 사는 게 현명한 방법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청년들이나 은퇴자나 누구나 읽어도 좋은 내용을 담고 있으며 요즘 유행하는 자기 계발서가 아니라 삶을 사는 방법을 공유하는 이야기라서 읽기도 수월하다. 그러나 단연코 이 책의 내용이 가볍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저자가 살아온 세월을 온전히 담고 있다. 잠자기 전에 침대 머리맡에 두고 천천히 읽어도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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