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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모순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4. 5. 13. 17:49

 

인생과 화해하고 관용과 마주하다

 

소설가  양귀자(1955~)는 1990년대 이후 여성의 삶에 주목하고 다양한 삶을 써 내려간 사람이다.  이 책은 직장 동료들이 독서토론을 위해 읽는다고 해서 관심을 가졌고, 딸아이가 중고서점에서 사다 읽고 책꽂이에 꽂아두면서 읽기를 추천한 책인데 전에 일독한 책이라 미뤄두었다가 쉬는 날 볕 드는 창에 기대어 읽었다. 

 제목이 '모순(矛盾, 창과 방패)'이다.  290쪽에 창과 방패를 파는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어떤 방패도 뚫는 창과 어떤 창도 막는 방패를 파는 사람의 이야기다.  나는 굳이 제목을 설명할 필요가 있겠나 싶다.  사족(蛇足)이다.  책 속에서 '인생이란 때때로 우리로 하여금 기꺼이 악을 선택하게 만들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모순과 손잡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는데 여기서 기인하는 '모순'이 더 적합하다고 본다. 

 

  주인공 안진진(安眞眞)은 스물다섯 나이의 여성이다.  어머니와 이모는 일란성 쌍둥이지만 삶이 전혀 다르다.  정해진 길을 가는 안정적인 이모부, 고귀하게 인형처럼 사는 이모와 달리 감정에 치우쳐 술꾼이었다가 가출인이었다가 병을 얻어 돌아온 아버지와 그 아버지를 모성애로 돌보는 어머니다 그렇다.  주인공 안진진은 아버지를 닮아 형과는 뗄 수 없는 존재인 김장우와 이모부와 비슷한 캐릭터인 나영규 사이에서 저울질을 하면서 누구와 결혼해야 할지를 고민한다.  안진진은 속말은 나영규에게 하고 사랑은 김자우에게서 느끼지만 정작 선택한 것은 나영규다.  인형처럼 사는 삶에 지쳐 자살을 택한 이모와 각별한 사이였던 안진진. 아무리 재고 또 재고, 고민해 봐도 결국은 두 사람을 모두 선택할 수 없으니 아버지를 닮지 않은 나영규를 선택하는 쪽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지는 알 수 없다.  

 작가 양귀자는 작가노트 '모순-생의 비밀을 찾아서'에서 행복과 불행, 삶과 죽음, 정신과 육체, 풍요와 빈곤 등 극명하게 대비되는 다소 추상적이지만 우리 삶에 밀접한 내용들을 메모했다고 한다.  그는 소설 창작의 화두를 '이야기'와 감동'에 두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 <모순>은 충분히 이야기의 서사가 있고,  20-30대 여성들이 읽기에 재미있으며,  여성의 삶을 고민해 본 40대 이후의 여성들에게도 스며들만한 이야기다. 그리고 작가가 말하는 주제는 '세상의 일들이란 모순으로 짜여져 있으며, 그 모순을 이해할 때 조금 더 삶의 본질 가까이로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은 소설가가 삶을 살아보지 않고 쓴 작품이라서 현실의 삶에서 약간 위로 떠 있는 듯하다.  술주정을 하고 번번이 자식들을 피신시키고 억청스레 살아내는 언니와 꽃처럼 곱게 사는 이모의 대비는 마치 일부러 짜놓은 각본 같은 느낌이라서 어색하고 이모가 자살로 삶을 마감하는 대목에서도 느닷없다.  병들어 돌아온 아버지를 받아주며 삶의 활력을 찾는 어머니의 모습은 단편적인 모습만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한다.  병자를 내쳐야 한다는 게 아니라 고이 맞아들이기까지 어머니의 힘든 감정들이 다소 약하다는 말이다.  교도소에 갇힌 아들,  병자로 돌아온 남편을 둔 어머니가 모성애로만 버티기에는 다소 부족하지 않은가?

 

 이 땅의 여성들이 살아낸 삶이 고스란히 어머니의 삶에 녹아있어서 이 소설을 읽는 젊은 여성들은 '나는 엄마처럼 안 살 거야!' 하면서 결혼을 하지 않는 쪽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 또한 선택이다.  그러나 안진진과 같이 이모가 살았던 삶을 선택하는 것도 선택이다.  양귀자 작가의 소설 <모순>은 잠시 삶을 분리하여 자신을 객관화하고 삶을 이야기하는 데 좋은 소재가 된다.  벌써 25년 전에 쓴 책이지만 지금 2024년에 읽어도 별반 시대의 흐름을 느끼지 못할 만큼 한국 사회는 어떤 면에서는 더디 바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