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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플라톤의 대화편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4. 3. 19. 22:03

소크라테스 '끝없이 질문하는 사람'

 

    소크라테스(B.C. 470~399)는 서양 철학의 시작을 연 사람이다.  플라톤(B.C. 428~348)소크라테스의 철학을 이은 철학자다.  이 책에는 5편의 대화가 실려있다. 에우튀프론(경건에대하여), 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톤(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파이돈(영혼에 대하여), 향연(에로스(사랑)에[ 대하여)이다.  나는 에우튀프론을 제외하고 네 편을 읽었다.  읽은 순서에 따라 요약하여 적어본다. 

 

<향연(에로스(사랑)에 대하여)>은 헬라스어로 SYMPOSION인데 '함께 마신다'는 뜻이다. 

B.C. 416년에 연극 대회에서 우승한 아테나이의 비극작가(31세 쯤) 아가톤의 집에서 열린 축하연에 방문하게 된  소크라테스(당시 54세)와 연회에 참석한 7명의 작가, 철학자, 정치가 등이 '에로스(사랑)'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나누는 대화이다.  아폴로도오로스가 그 자리에 참석한 아리스토데모스에게서 들은 내용을 자신의 친구에게 전하는 형식이다. 

 

<소크라테스의 변론>은 B.C. 399년 그의 나이 70세에 정계의 실력자인 아뉘토스의 조장으로 멜레토스가 고소하여 법정에서 재판을 하는 도중 자기 변론을 하는 소크라테스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당시 28세였던 플라톤이 이 재판을 목격하고 쓴 것이다. 그의 죄목은 "청년들을 부패시키고 나라에서 신봉하는 신들을 믿지 않는다"이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패한 후 폭정을 일삼은 정치적 사정이 있었다. 법정은 500명의 재판관으로 구성되었고 다수결에 의해 결정되었다. 유죄 280표, 무죄 220표로 유죄가 결정되었다. 형량에 대한 표결에서는 사형 360표로 첫 번째보다 80표나 높아졌다.  전쟁의 패배로 혼란한 사회에서 젊은 멜라토스가 늙은 소크라테스를 표적으로 삼아  고발했다. 당대의 지혜로운 자라고 신탁이 말한 이후 소크라테스는 자신보다 지혜로운 자를 찾으려 했으나 찾지 못했으며  그 과정에서 사람들의 미움을 사서 사형에 이르게 된다.  소크라테스는 '저는 신이 이 나라에 달라붙게 한 자입니다. 마치 몸집이 크고 혈통은 좋지만 그 큰 몸집 때문에 좀 둔한 말(馬)을 깨어있게 하려면 등에가 필요한 것처럼 말입니다....... 만일 신이 여러분을 염려하여 누군가 딴 사람을 보내지 않았다면 내내 자면서 여생을 보냈을 것입니다. (68P)'라고 자신의 역할을 설명한다. 자신의 사명, 무엇보다 영혼을 소중히 여기며, 자신의 정신을 더욱 훌륭하게 하며, 지혜를 사랑하여 자신과 남을 검토하면서 사는 것이 사람다운 삶임을 역설(42P)했다. '우리 중 어느 쪽이 더 좋은 곳으로 가는지, 신만이 알 것입니다.(88P)'변론의 마지막 구절이다. 

 

 <크리톤(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는 재판이 끝나고 한 달 후 법정에서 가까운 감옥에 갇혀 사형을 기다리는 소크라테스를 찾아온 부자 농부인 친구 크리톤과의 대화다. 델로스섬의 아폴론 신에게 제사(제사를 지내는 사절단)을 태워 보낸 배가 돌아오려면 한 달 정도 소요되는데 마침 소크라테스가 재판을 받은 시점이 사절단의 여정과 겹쳐 사형이 지연되고 있었다. 배가 돌아오기로 한 날 새벽 크리톤은 감옥으로 들어와 모든 준비가 끝났으니 국외로 망명할 것을 요청한다. 소크라테스는 그저 사는 게 아니라 잘 사는 게 중요하다는 이유로 요청을 거절한다. ''대중이 뭐라고 하든, 우리가 지금보다 더 어려운 일을 당하거나, 좀 견디기 쉬운 일을 당하더라도 어쨌든 악을 행하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그런 행위를 하는 자에게 참으로 해롭고 추하다는 것. 이것은 옳은 말인가? 옳지 않은 말인가?'(102P)라고 되묻는다. '조국을 존경하고 따르며, 조국이 노여워할 때에는 아버지가 노여워할 때보다도 더 순종해야 해.(106P)' 크리톤은 '오오 소크라테스. 할 말이 없네.'라고 말하고, 소크라테스는 '그러면 내 생각대로 하세. 오오 크리톤, 신이 우리를 이렇게 인도하고 있으니까'(112P)라고 말하는 것으로 대화는 끝이 난다.  

 

<파이돈(영혼에 대하여)>는 사람이 죽으면 신체와 영혼이 분리되는데 그 영혼은 어디로 갔는가? 그러면 그 영혼은 어디서 왔는가? 그 영혼이 불멸한다면 영혼은 어디에 머무는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대답을 찾는 과정이다.  동양의 해석과도 접목된다.  불교와 힌두교에서 말하는 환생도 언급된다.  동물에 있던 혼이 인간에게로 옮겨올 수 있는 것인가? 하는 물음에 소크라테스가 답을 찾아간다.  

 

   소크라테스는 끊임없이 물었고, 스스로 답을 찾았다.  유명한 한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너 자신이 알고 있다는 사실이 전부가 아니며 그 너머의 네가 모르는 사실에 대해서도 모르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앎에 대해 겸손하라. "는 말로 해석된다.  끊임없이 묻고 대답하기를 반복하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숙명 같은 삶을 말하고 있다고 나는 해석한다. 2,500년 전의 소크라테스가 묻고 답한 내용에서 한 발짝이라도 더 나아갔는가?라고 묻고 싶다.  그때보다 사람의 수는 많이 늘었고, 돈의 양도 늘었지만 그때 하던 물음에 대한 답을 우리는 여전히 찾지 못하고 있다.  아마 지금도 소크라테스처럼 묻고 또 묻는 철학자가 나온다면 어떤 이유로든 재판에 설 것이고, 사형제도는 없으니 종신형은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힘들고 귀찮고 어려운 것은 멀리하고, 쉽고 단순하고 짜릿한 즐거움을 좇고 있다. 휴대전화가 있어서 우리는 편리하지만 생각할 여유조차 빼앗기고 있다. 그럴지라도 인류는 어떤 방향으로든 진화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이 옮겨 쓰고 이어갔고, 역사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으니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도 어떤 모습으로든 다음 세대에게 이어질 것이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소크라테스를 만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역설적으로 미래가 더 잘 그려진다.  플라톤이 그린 소크라테스는 '끝없이 질문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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