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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성채 1, 2 본문
의사 앤드루의 좌절과 희망
작가 아치볼드 조지프 크로닌(영구 스코틀랜드 1896~1981)는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해군 군의관으로 입대하였고, 전쟁 후 인도행 선박 촉탁의로 일했고, 탄광촌에서 의사로 일했다. 질병이 생긴 후 스코틀랜들에서 요양하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모자 장수의 성>, <천국의 열쇠>, <별들이 내려다보다> 등의 소설이 대표작이다.
제목이 <성채(The citadel)>인 이유는 '인생은 미지의 것에 대한 도전이며, 언덕 위에 있다는 것은 알지만 보이지는 않는 어떤 성을 차지하기 위해 힘겹게 언덕을 오르는 것과 같다.'(2부, 143p)는 주인공 앤드루의 말과 작품 결말 마지막 구절 '앤드루가 열차 시간에 늦지 않을까 걱정하며 발걸음을 돌렸을 때 눈앞에 펼쳐진 하늘에는 성채 모양을 한 뭉게구름이 밖에 피어오르고 있었다.(2부. 295P)에서 찾는다. <성채>는 무지개처럼 환상처럼 존재하는 무언가를 향해 가야 할 것 같지만 거대한 사회 부조리와 고정관념, 무지, 사회통념 등과 같은 거대한 성벽과 마주하는 현실을 동시에 보여주는 제목이 아닐까 한다.
주인공 앤드루 맨슨은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탄광촌의 보조의사로 취업한다. 의사는 뇌출혈로 반신불수 상태지만 보조의사에게 이름을 빌려주고 돈을 받아 약간만 떼어 주는 형식으로 일하게 한다. 탄광촌에는 여러 의사가 있으나 환자를 서로 차지 하기 위해 반목한다. 앤드루는 탄광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폐병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고 박사학위를 받아 런던의 보건부 산하 기관에서 일하지만 기존 세력에 의해 대접받지 못한다. 개업의로 전향하여 돈 버는 방법을 안 앤드루는 귀족들을 진료하여 큰돈을 벌고, 환자를 이 의사 저의사에게 소개하면서 자신이 가졌던 이상을 버리고 돈을 좇는다. '백신이 없어서 멸균수를 주입했는데 다른 때보다 훨씬 효과가 있어.'(216) 이런 말을 서슴없이 하는 의사들과 다를 바가 없어진 셈이다.
그러나 자신의 소개로 세탁소 주인이 무허가 엉터리 의사에게 수술 받다가 숨지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하자 책임을 느끼고 자신이 하던 일을 멈추려던 찰나에 아내까지 잃고 힘들어한다. "불필요한 주사를 놓는 놈들, 어떤 해도 끼치치 않는 편도선이나 맹장을 잘라내는 놈들, 자기 환자를 공 던지듯 이리저리 주고받으며 진료비를 나눠먹고 낙태를 하고 이상한 비과학적 치료법이나 신봉하고 끊임없이 돈만 긁어모으려고 쫓아다니는 놈들. 모두 이리들이야. "(217p) 수완 좋게 돈을 좇아 다니면서 환자를 이리저리 돌리는 의사 친구 햄프턴에게 앤드루가 한 말이다. 그리고는 런던이 아닌 시골에 전공이 다른 의사들이 모여 공동병원을 세우기로 계획을 세우면서 현 체제의 의료시스템을 개선할 방안을 제시한다. "우리의 비효율적인 개업의 시스템을 맹렬히 공격했던 것. 내 생각도 같지만 일반 개업의들이 어깨에 온갖 짐을 다 짊어지고 비틀거리며 가도록 만들어 놓은 현재의 제도로는 아무것도 안돼. 집단 의료제도가 그레 대한 해답이야. 정부주도의 의료제도와 개인적인 노력 사이에서 절충점을 찾는 거야. 지금까지 이 나라에서 이것이 불가능했던 이유는 모든 것을 자기가 쥐고 흔들려는 높은 분들 때문이었어. "
"자넨 무엇을 중요한 원칙으로 삼는가? 말하자면 직무를 행할 때 기본적인 신념 같은 거 말이야."
"네! 저는...... 무엇이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자신에게 말합니다. "(1부. 252p)
2024년 3월 현재 한국에서는 의과대학 정원을 늘리는 문제를 두고 정부와 의사협회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이미 전공의들은 병원을 떠나기도 했고, 삭발을 하는 의과대학 교수들도 있다. 언론에서는 "의과대학은 의술 이상을 실현하는 곳이다. 그러니 정부의 일방적인 의대 정원 2000명 확대는 의사들에게 가혹한 처사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의술 이상이 무엇인가?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의술을 행하는 사람들의 인원을 늘린다는데 환영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탄광촌에서 환자 나눠먹기를 하는 1932년 스코틀랜드의 풍경과 대한민국의 풍경이 다르지 않아서 생기는 파업이 아닐까 한다. 개업의로 큰 빚을 지고 개원을 하여 제약회사의 뒷돈을 받고 필요한 약보다 더 많은 약을 처방하고, 값비싼 장비를 들여놓고 꼭 필요하지 않은 환자에게까지 검사를 종용하는 일들을 일반인들도 공공연히 알고 있다. 시골에는 의사가 없어서 간단한 처치조차 받지 못하기도 한다. 반면 서울의 빅5병원(서울대병원, 연세의료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가톨릭의료원)은 지하철 입구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병원으로 향하는 줄이 언제나 장사진을 이룬다.
의사 앤드루 맨슨은 다름 아닌 저자 크로닌이다. 저자가 직접 겪은 일을 토대로 자전적 소설을 쓴 작품이다. 자신의 이상을 향해 저 멀리 성채를 따라가는 길에 돈의 유혹과 현실 타협한 많은 이들을 보면서 자기 자신도 유혹에 넘어가서 헤매기도 했으나 결국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길을 정한다는 내용이다. 타협하고 안주하는 삶이 달콤하고 편안하기는 하다. 그러나 우리의 가슴 안쪽에 있는 양심이라는 dna는 그것이 결코 옳지 않음을 늘 알고 있다. 건강상의 이유로 크로닌은 해내지 못하고 대신 작품을 쓰는 소설가가 되었지만 작품 속의 앤드루는 크로닌의 분신이 되어 그가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려고 성채를 향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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