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불. 흙.바람 +나

[서평]관리자들 본문

서평쓰기

[서평]관리자들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4. 2. 28. 18:02

 연약한 희망도 희망이다

       작가 이혁진은 2016년 장편소설 <누운 배>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데뷔했다. 전작 <사랑의 이해>가 있다. <관리자들>은 민음사에서 펴낸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 32권에 수록되었다.

 

  이 책 <관리자들>은 거의 매일이다시피 뉴스에 오르내리는 산업재해 사망 사건을을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다. 제목이 <관리자들>인 이유는 작가가 가진 문제의식을 반영한다. 갑과 을의 관계로 모든 노동 현장의 문제가 시작되는 점을 기본으로 한다. 얼마 전 공원에서 두 사람이 전기작업하는 장면을 보았다. 그중 한 사람은 휴대전화기를 보며 벤치에 앉아 있고 한 사람은 무릎을 꿇고 전선을 잇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갑과 을은 정해진 게 아니라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 속 이야기는 작업반 소속이지만 프리랜서인 중장비 담당 서 기사가 주인공이며 그에 눈에 비친 사건이다. 클라이맥스 장면을 작품 첫 도입부에 넣어 위기감을 고조시키면서 영화처럼 이야기를 시작한다. 선길이라는 40대 가장이 현장에 왔다. 아이가 아파서 우선 돌보다 보니 회사에서 퇴직까지 당했다. 한 푼이 아쉬운 처지라서 노동 현장에 뛰어들었다. 선길은 막노동 현장에서도 적응하지 못하고 겉돈다. 소장은 함바식당의 밥이 맛이 없다고 타박하는 인부들의 시선을 돌리려고 없는 멧돼지를 만들어 사건을 꾸미고, 선길은 밤 보초를 선다. 아들의 수술이 끝나자 선길은 보초를 설 개를 끌고 돌아와 현장으로 복귀한다. 열심히 일하자 인부들과의 관계도 좋아지고 능률을 올리니 소장은 선길에게 반장으로 일하라는 제안을 한다. 그러나 혹독한 날씨에 일에 쫓기던 인부들은 술을 마시기 시작하고 술판은 점점 커진다. 요령 부리는 인부와 달리 열심이던 선길이 작업 도중에 미끄러져 사망하고 만다. 처세에 능한 소장은 입에 발린 동정으로 여론을 잠재우고, 현장에 있던 인부들에게 큰돈을 주고 입을 막는다. 죽은 선길은 작업장에서 술을 마시고 발을 헛디뎌 죽은 걸로 사건이 종결된다. 서 기사는 마지못해 받은 소장의 돈을 선길의 아내에게 보내고 돼지열병으로 살처분한 도장도 없는 고기로 파티를 벌이던 식당을 향해 중장비를 몰고 돌진한다. 사건의 중심인 식당을 부수고 소장에게 음식 쓰레기를 쏟아붓는다. 서기사가 궁지에 몰린 개를 구해 중장비에 태우고 현장을 떠나는 것으로 이야기는 종료된다.

 

   노동 현장에 내몰리는 사람들은 ‘세상은 여기저기 함수가 틀린 엑셀 표 같은 것. 어떤 칸에서는 아무리 올바른 숫자를 넣어도 에러라고 뜰 수밖에 없는(28p)’ 경우다. 그런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를 잘 아는 사람이 이 소설에서는 소장이다. ‘소장은 노예주의자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노예를 부려 본 적이 없어 잘 모르는 모양이지만 시키기만 해서는 능률이 안 오른다. 인간이란 뭐든 스스로 움직여야. 그렇다고 착각이라도 해야 효율을 낸다. 부려보면 안다.(45p)’이 소설 속에서 소장은 갑을 대표하는 위인으로 그려진다. 선길의 죽음 이후 ‘산 사람한테 착할지 죽은 사람한테 착할지 관리라는 걸 하다 보면 그런 선택을 안 할 수 없거든(152p)’이라고 말하면서 선길에게 잘못을 뒤집어씌운다. 그리고는 같은 선택을 하도록 주변의 을들을 종용한다.

  그러나 동료인 을들 중에서 나름으로 뚝심 있다는 사람도 ‘이걸 이렇게 해도 되나? 나중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하지만 시키니 그저 시키는 대로만 할 수밖에 없었다. (85p)’라는 자기 회피로 모든 사건을 목격했음에도 ‘나만 그런 거 아니잖아.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며 입을 다물었다. 2차 세계대전 중에 유태인을 수용소에 가두고 죽음에 이르게 하면서도 ’나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다.‘라고 말했던 사람들을 향해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함’이라고 말한다. ‘책임은 지는 게 아니야. 지우는 거지. 세상에 책임질 수 있는 일은 없거든. 어디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멍청한 것들이나 어설프게 책임을 지네 마네 그런 소릴 하는 거야. 그러면 너나 할 것 없이 다들 자기 집까지 떠넘기고 책임지라고 대가리부터 치켜들기나 하거든. 책임은 지는 게 아니라 지우는 거. 자기 책임이라는 걸 아예 안 만드는 거. 걔들도 관리자거든. 뭘 좀 아는. (46p)’ 소장의 장황한 설명을 보면서 정치, 경제, 사회를 책임지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책임을 지지 않고 다른 이슈로 덮어버렸던 사건들을 떠올리게 된다.

 

  소설 <관리자들>은 읽는 내내 혹독한 겨울 날씨 탓에 마스크에서 새어 나온 입김이 얼어붙는 일터에서 바람막이조차 없이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서 유쾌하지 않다. 이 고장 평택에서 한창 공사 중인 여러 현장의 이야기일 것 같기도 하다. 소장이 오물을 뒤집어쓰고 식당이 부서진 걸로 소설이 막을 내리면서 다소 후반부의 시원한 결말을 원하는 독자에게는 아쉬움을 남긴다. 그런데도 서 기사가 중장비를 몰고 가면서 옆에 태운 개의 연약하고 부드러운 생명의 숨을 어루만지는 장면에서 생명이 살아있음의 작은 희망을 말하고 싶다. 희망은 언제나 희박했다. 경제개발과 성장의 그늘에 가려서 밀려났던 ’인간 존엄‘, ’공정한 분배’, ‘존중받는 삶’을 되찾아야 함을 작가가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갑이라 착각하는 소장도 사실은 알고 보면 대기업에서 하도급, 재아래도급을 받은 업체의 소장이 아닐까 한다.  진정한 갑은 착하고 아름답고 우아한 모습으로 돈이 돈을 벌게 하면서 을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고 드라마에나 존재한다. 현실 속에 사는 을들의 싸움을 부추기며 을들이 닿지 못할 딴 세상에서 살고 있다면 너무 심한 비약인가? 하도급을 용인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희망도 있고, 답도 있을 것이다. 다만 옳지 못한 것을 바로잡아야 하는 역할을 맡은 사람이 할 일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2024 평택 한 책 후보인 『이름이 법이 될 때』(정혜진)와 ,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김승섭)를 더불어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노동현장에서 떨어짐, 끼임, 깔림, 부딪힘, 물체에 맞음 등의 사고로 사망한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호법은 고 김용균씨를 비롯한 많은 이들의 죽음으로 생긴 법이다.『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김승섭)에서 ‘죽은 자본이 살아있는 노동자를 빨아들이며 성장한다’(251p)라는 구절이 나온다. 인간의 돈을 향한 욕망이 노동자의 죽음을 방관하고 있음을 말한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질 것인가? 같은 책에서 답을 찾는다. ‘미안해하지 말고, 너는 너의 일을 하면 된다.’(254p) ‘이래도 될까?’라는 의구심이 드는 순간, 멈춰야 한다. 원칙을 지키며 자신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연대하고 옳은 방향을 향해 나가자고 말하는 목소리를 내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있다고 우리 사회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단순하게 말하면 각자가 맡은 역할을 해내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한국의 노동 현장과 사회에 만연한 갑과 을의 불편한 진실을 말하는 이 책은 소설의 형식을 빌려 작가의 말을 전한다. 이제 을들의 싸움에서 벗어나서 내가, 우리가 희망을 만드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지 않느냐고 되묻고 있다. 우리는 어디로,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서평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평]슬픔의 방문  (1) 2024.03.19
[서평]성채 1, 2  (1) 2024.03.05
[서평]장애 시민 불복종  (0) 2024.01.31
[서평]슬픔은 원샷, 매일이 맑음  (1) 2024.01.31
[서평]이름이 법이 될 때  (1) 2024.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