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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섬섬은 고양이다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2. 7. 6. 22:14

 

좋은 그림책을 만나면 나도 그림책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무덤덤하게, 또는 시크하게 자기식으로 그린 그림이 표지를 장식하고 있어서 끌리는 책이다. 망설임이 없어서 좋다.  나는 늘 망설임에 시간을 많이 허비하는 편이다. 그런다고 결과가 좋지는 않은데도 신중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섬섬옥수, 가냘프고 고운 여자의 손을 일컫는 말이다.  고양이의 이름을 섬섬옥수에서 따서 짓다니.  그러고 보면 고양이의 여린 발바닥을 만져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폭신한 쿠션 역할을 하는 고양이 발바닥의 동그만 부분의 감촉.  그 폭신함이 날카로운 발톱으로 둘러싸여서 안전지대이기도 하다. 

 

 이 책은 향숙씨에게 온 고양이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외출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 시간이 길어지는 동안 발바닥이 거칠고 단단해져 청년 섬섬이 되어 독립해가는 과정을 그렸다. 섬섬은 청년이 되어서 밖에 나갔다가 돌아올 때 쥐를 잡아오기도 하고, 진드기와 함께 오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향숙씨의 마음은 안절부절.  "내가 결정해도 되는 걸까?" 수술을 결심했지만 그건 향숙씨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었다. 결국 고양이 섬섬은 마당문을 뛰어넘을 줄 아는 고양이로 성장하고, 향숙씨를 떠났다.  

 

  아이가 교문 앞에서 엄마손을 놓기를 두려워하며 망설인다.  "엄마, 저건 뭐야? ", "응, 울타리네. " 왜 철로 만들었어?".... 계속 말을 이어가려고 한다. 엄마는 아이를 학교에 어서 들여보내고 회사에 가야 하는데 주저하는 아이의 등을 떠밀어 들여보낸다.  "학교 갔다 와서 이야기하자. "

간신히 엄마 손을 떠났다. 아이는 다른 아이처럼 가방을 어깨에 메고 있지 않다. 다른 아이들과 같은 메는 가방을 가지고 다니는 탓에 들기도 불편하지만 늘 가방을 두 손에 들고 온다.  

 아이는 마중 나온 엄마 손에서 떠남과 동시에 달려가서 발열 체크를 하고 있는 선생님의 손으로 바꿔 잡고자 뛰어 들어간다. 

 

   아이를 볼 때마다 고양이를 생각한다.  사람을 제외한 동물들은 대부분 태어나자마자 걷는다.  송아지가 태어나서 비척비척 서서 걷는 걸 보면 신기할 따름이다. 사람은 열 달은 지나야 다리에 힘이 붙고 서는데 말이다. 태어나자마자 걷는 동물은 네 발로 걸으니 안정감이 있다고는 해도 본능적으로 걷는 건 참으로 신비한 광경이다.   

 요즘 대학생 이상의 자녀를 둔 부모들을 만나보면 다들 하는 말이 비슷하다. "우리 애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내려놨어요. " 무슨 말인고하니 집에서 나가지도 않고 게임만 해서 걱정되기도 했지만 이제 그마저도 살아있으니 다행이라고 여긴다는 말이다.  워낙 취업률이 낮아지는 데다, 코로나 이후 불경기로 인해 채용 공고를 하지 않는 기업들이 많다 보니 원하는 일자리 찾기를 포기하거나 끝없는 배움으로 일자리 찾기를 잠정적 보류하고 있다. 그런 자녀를 바라보는 부모는 속이 타지만 불황까지 겹치니 자녀들을 밖으로 내몰 수도 없다.  

 

  고양이 섬섬이 당당하게 울타리를 넘어서 밖으로 나가면서 한 마리의 고양이로서 살아가도록 향숙씨는 외출 문을 달아주고, 밖으로 나간 고양이를 불러들이지 않고 올 때를 기다렸다. 아니,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했지만 그런다고 외출문을 닫아 걸진 않았다. 때로 진드기와 함께 오거나 쥐, 새를 물어올 때도 지켜봤다. 그래서 섬섬은 당당한 고양이, 아름다운 고양이가 되었다. 

 

  이제 1960~70년대생 부모들이 자녀교육의 실패를 인정하고 있다. "내가 다 정해주고, 사 주고, 부족함 없이 키웠더니 너무나 나약해. 실패해 본 적이 없어서 좌절이 너무 빨라.  내가 잘못 키운 거지. 내가 다 정해 줬거든. 옷도, 가방도, 학교도....... " 후회하는 부모에게는 방법이 있다.  이미 방법을 찾은 것이다. 잘못은 고쳐서 바르게 하면 된다. 문제는 후회의 단계에 이르지 않는 사람일 것이다. 자식은 부모를, 부모는 자식을 탓하는 방법을 택했다면 서로 남남처럼 살아갈 수도 있다.  부모도 그때는 몰랐다. 그 방법이 최고인 줄로만 알고 키웠다. 최고로 키우고 싶었다. 남다르게 키우고 싶었다.  그러나 남다른 것은 남들과 멀어지는 길이다. 관계를 멀게 하는 길이었다. 관계의 단절을 가져왔다. 성장을 멈추게 하였다. 

 

  역사는 늘 진화한다.

60-70년대생의 자녀 교육 방법의 문제점을 보고 80-90년대생은 그 오류를 범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섬섬이 고양이의 길을 찾아간 것처럼 우리 아이들도 자신의 선택으로 자신의 인생을 선택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게 부모의 일이다. 향숙씨가 섬섬에게 해 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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