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불. 흙.바람 +나

<읽히는 시> 어린 나무의 눈을 털어주다. 본문

읽히는 시

<읽히는 시> 어린 나무의 눈을 털어주다.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2. 6. 10. 17:20

어린 나무의 눈을 털어주다

 

눈이 내리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춤추며 내리는 눈에 창이라도 겨눌 것인가

어린 나무를 안고 함께 눈을 맞을 것인가

저녁 정원에 막대기를 들고 나간다

그저 도우려고 막대를 두드리거나

가지 끝을 당겨준다

사과나무가 휘어졌다 돌아올 때면

나도 온몸에 눈을 맞는다

얼마나 당당한가 어린 나무들은

바람 아닌 어느 것에도

굴한 적이 없다.

 

-올라브 헤우게  시 전문-

 

눈이 쌓인 가지를 당겼다가 놓았을 때 눈은 당긴 내 위로 고스란히 쌓인다.

그런 경험이 있는 사람만 아는 사실이다. 

시인은 눈이 너무 많이 내려서 나뭇가지가 힘들어 하지는 않을지를 염려하는 마음에 

눈오는 날 저녁에 막대기를 들고 밖으로 나간다. 

눈은 소리없이 계속 내려서 세상 모든 것을 덮어버릴 기세다. 

그런 눈 속에 움직이지 않고 그 눈을 당당하게 맞고 서 있는 어린 나무의 가지를 본다. 

여린 가지 위에도 눈은 쌓이고 가지는 점점 휘어서 땅에 가깝게 닿으려고 한다. 

그런 가지를 툭툭 막대기로 쳐 주면 눈은 아래로 떨어지고, 가지는 가뿐하게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리라. 

 

  역사의 장소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무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모습으로 서 있다. 지난 번 통도사에 갔을 때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의 주변에 심은 나무에 꽃이 피어서 향기도 물씬 풍기고 있었다.  네이버 렌즈로 알아보니 '피나무'로 나온다. 돌아나오는 길에 봉사하는 보살님께 물으니 '보리수'라고 전한다.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에서 득도를 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지 않은가. 바로 그 보리수였다. 한국의 보리수는 요즘 빨갛게 열매가 열린다. 인도의 보리수는 내가 알던 보리수가 아니었다. 

 

 

 

'읽히는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채봉 <오늘>  (0) 2022.06.28
내가 나에게 진 날  (0) 2022.06.14
봄의 정원으로 오라  (0) 2022.05.03
천상병 詩 <새>  (0) 2022.04.28
구상 <꽃자리>  (0) 2022.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