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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는 시

구상 <꽃자리>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2. 4. 25. 16:53

           꽃자리

                                              구상(1919-2004)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나는 내가 지은 감옥 속에 갇혀 있다. 

너는 네가 만든 쇠사슬에 매여 있다. 

그는 그가 엮은 동아줄에 엮여 있다.

 

우리가 저마다 스스로의

굴레에서 벗어났을 때

그제사 세상이 바로 보이고

삶의 보람과 기쁨을 맛본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나태주시인의 <행복론>을 듣다 보니 구상 시인의 시를 소개해 주었다.  구상 시인의 시의 첫 줄,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의 그 한 줄에서 바로 마음에 와 닿는 위로가 느껴졌다. 반면,  나태주시인의 이야기를 듣기 바로 전에 동생과 이야기 나눴던 '계곡살인사건'의 전말과 죽은 남편이 가스라이팅을 당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가스라이팅{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로, <가스등(Gas Light)>(1938)이란 연극에서 유래한 용어이다. 가스라이팅은 가정, 학교, 연인 등 주로 밀접하거나 친밀한 관계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은데, 보통 수평적이기보다 비대칭적 권력으로 누군가를 통제하고 억압하려 할 때 이뤄지게 된다.}-네이버지식백과발췌

  죽은 남편이 '앉은 자리가 꽃자리'라고 생각하고 주저앉아서 당한 건 아니었을까?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일부러 어리숙하고, 친구들에게 외면당하는 사람,  성실하지만 주변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을 골라서 사건을 저지른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진심으로 부인을 믿고 살았다면 그 남편의 일은 더 가슴 아픈 일이다.....

 

 반면 '앉은 자리가 꽃자리'라고 말하면서 시인은 이어서 말하는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그 자리'에서 만족을 찾으라고 조언한다. 가만히 읽어보면 듣는 사람 중에 자신도 포함되어 있다. "나는 내가 지은 감옥 속에 갇혀 있다. 너는 네가 만든 쇠사슬에 매여 있다. 그는 그가 엮은 동아줄에 엮여 있다." 시인이 말한 대로 사람은 모두 자신이 만든 제약으로부터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모범시민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은 특히 더 자신을 옭죄는 갖가지 제약들로부터 벗어나기 어렵다. 결국 병적으로 줄을 맞추고 각을 세우는 무언가에 집착하기도 한다.  또는 스스로가 만든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소통'이 어려워졌다고 하소연한다. 인간관계 스트레스가 가장 어려운 과제가 되어버렸다. 

 

 그런 사람들에게 시인이 제안한다.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의 굴레에서 벗어났을 때 그제사 세상이 바로 보이고 삶의 보람과 기쁨을 맛본다.' 굴레를 벗어나면 얼마나 자유로울 것인가? 그러나 어떻게 벗어날 지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었다. 어떻게 벗어날 지는 각 사람마다 다르다. 사실 자신만이 가장 잘 아는 일이다.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시인의 말을 듣고 주변을 둘러본다. 오늘 살아있는 것이 감사하고, 병에 걸려 죽을 날을 받지 않은 것에 감사하다. 글을 읽을 수 있어서 구상 시인의 시를 베껴쓸 수 있으니 감사하다. 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나태주시인의 <행복론>을 들으니 행복하다. 내가 웃음으로 누군가는 따뜻한 마음을 받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 반면, 너무나 안주하고 가스라이팅을 당하면서도 그 자리를 고집하고 있지는 않는지를 돌아본다. 한 주의 시작인 월요일에 읽는 시로 적합하다. 

 

남다른 내가 저들사이에서 함께 할 수 있으니 행복하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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