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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같은 일을 한다는 건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2. 3. 11. 22:09

" 우리 집 같은 전통 화과자점은 십 년을 하루같이 똑같은 것을 만드는 게 일이야. 똑같다는 데 가치가 있어. 새로운 작품을 몇 년에 한 번 어쩌다 만들어도 손님들이 신기해하는 잠깐 동안만 팔리고 손님들은 결국 늘 먹던 것을 원하더라고. 장인기(匠人技)라고 하면 숙련이라든가 세련을 연상할지 모르지만, 정말 필요한 것은 인내력과 지구력이야. 그런 의미에서 아버지가 대단하다고 생각해. 그렇지만 사실 아버지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선생님이 부러울 거야."

 

 

   며칠 전 읽은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의 주인공인 마리코가 화과자점을 하는 아버지와 장남이지만 설계사무소를 하는 큰아버지(선생님)을 바라보는 시선을 말하는 장면이다.  우리나라에서도 100년을 넘어서 가게를 운영하는 곳을 노포(老鋪)라고 하는데, 일본에서도 같은 표현을 쓴다.  이렇게 창업한 지 100년이 넘어 3대째 운영하는 가게들은 손님들에게 신뢰를 주는 가게로 주변의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가게이기도 한다. 

 

   매일 같은 빵을 만드는 게 어떤 마음일까?  시지프스의 신화가 생각난다.  

시지프스는 코린토스의 왕이다. 그는 인간 중 가장 현명하고 신중한 자로 칭송을 받는다. 그러나 신들이 보기에는 엿듣기 좋아하고 입싸고 교활하고 신들을 우습게 아는 인간이다.  그런 그에게 제우스가 산 위로 바위를 굴려 올리되 그 바위는 정상에 머물 수 없다는 벌을 내린다. 시지프스는 바위를 굴려서 산 위로 올리되 그 바위는 정상에 닿는 즉시 바닥으로 굴러떨어져 버린다. 그러면 시지프스는 바닥을 향해 걸어내려와 다시 바위를 굴려 올려야 한다. 

 

 시지프스처럼 같은 일을 반복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시지프스의 신화>를 쓴 까뮈는 "굴러떨어진 바위를 향해 다시 내려오는 순간이야말로 시지프스가 자신과 운명을 이기는 승리의 순간이다. ", " 인간은 자기 삶과 역사의 주체로서 끊임없는 선택과 실천을 통해 스스로를 만들어가는 존재이다."라고 언급했다고 한다. 

 

 시지프스가 바위를 굴려올리는 일과 날마다 같은 모양의 빵을 반복해서 만드는 일은 어쩌면 같은 일이다.  그러나 그 일은 반복되는 일이지만 어제의 일과 오늘의 일은 다르다. 정확한 시간에 정확히 같은 재료를 가지고 만들어 낸다고 해도 그건 다른 일이다.  모든 것이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자신이 짊어진 운명을 책임있게 수행하는 일은 역사를 살아가는 이들 대부분이 해내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시지프스가 바닥으로 굴러떨어진 바위를 향해 걸어내려올 때, 빵을 만들어 누군가를 기쁘고 배부르게 하고 그 일을 마무리하는 저녁에 그들은 자신의 삶을 책임지고 묵묵히 살아내는 일에 승리한 사람들이다. 그러니 그들은 미래가 없는 답답하고 실패한 인생이 아니라 매일 매일 승리하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시지프스의 바위는 물리학의 법칙에 의하면 조금씩 닳아서 매일 매일 가벼워지지 않았을까? 굴러떨어지면서 바위조각이 떨어져 나가지는 않았을까? 그렇다면 어제보다 오늘이 더 가볍지는 않았을까? 

 

 3월1일을 기준으로 나는 32년째 같은 일을 하고 있다.  시지프스처럼, 같은 빵을 만드는 사람처럼, 나는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단 하루도 같은 날은 없다. 그래서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