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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는 시

詩 <의자는 내주지 말라>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1. 10. 15. 15:30

자작나무 숲 의자

 

의자는 내 주지 말라

 

마음은 우주의 중심인

하나의 점과 같고,

마음의 다양한 상태는 이 점에 찾아와

잠시, 혹은 길게 머무는 방문객과 같다.

 

이 방문객들을 잘 알아야 한다.

그들은 그대가 자신들을 따르도록 유혹하기 위해

그들이 그린 생생한 그림을 보여 주고

매혹적인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그것들에 익숙해지되,

그대의 의자는 내주지 말라.

의자는 그것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대가 의자를 계속 지키고 앉아

각각의 방문객이 올 때마다 반갑게 맞이하고

알아차림 속에 흔들림이 없으면,

만약 그대의 마음을 깨어 있는 자, 아는 자로 만들면

방문객들은 결국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그대가 그 방문객들에게 진정으로 주의를 기울인다면

그들이 몇 번이나 그대를 유혹할 수 있겠는가.

 

그들과 대화를 해 보라, 그러면

그들 하나하나를 잘 알게 될 것이니

마침내 그대의 마음은 평화로워질 것이다.

 

- 아잔 차, <고요한 숲속 연못>중에서

 

이 시를 읽고나서 며칠 동안 그냥 두었다.  오늘 밤 산책을 하고 돌아와 생각을 덧붙인다.

'마음은 우주의 중심인/ 하나의 점과 같고, /마음의 다양한 상태는 이 점에 찾아와 /잠시, 혹은 길게 머무는 방문객과 같다.' 마음은 작은 점이고, 상념들은 이 점에 찾아와 머무는 방문객이라니.... 그 위치가 참 위태롭구나.  그래서 마음이 늘 오락가락하고, 손바닥 뒤집듯이 순식간에 바뀌곤 했더란 말인가?

 

 시인의 비유가 참으로 절묘하다.

어제는 아침에 영하의 기온으로 떨어진다고 하여 패딩점퍼를 챙겨입고, 오늘 낮에는 17도로 올라가니 티셔츠 하나로도 충분했다. 우리 마음도 늘 오락가락이다.  그래서 마음의 평화를 갖는 '평정심'이 득도(得道)의 경지라고 했던가?

 

 젊어서는 기분에 따라 잘 토라지기도 하고, 불쑥불쑥 화를 내기도 했는데 이제 나이 50이 지나니 그런 기분에 휩싸이지 않아서 좋다.  많이 여유로워진다. 그리고 그런 기분들이 들어올라치면 바로 알아차린다. 그래서 날씨가 나빠져서 비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눈이 와도, 해가 떠도.... 그렇게 날씨에 좌우되지도 않게 되었다.

그래서 여유롭다.

 

  안나카레리나의 첫 구절은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의 이유를 안고 있다.'로 시작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마음에 무엇이 들어있느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은 결정된다.  여유롭고, 평화로워서 좋은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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