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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손원평 장편소설 <아몬드>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1. 2. 2. 14:49

  서로의 아픈 마음을 보듬은 두 소년이 어른들에게 보내는 미소같은 이야기

 

  이 작품은 제10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이다.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기도 하다. 그의 소설을 선택한 심사위원은 이렇게 말한다.

    두 소년이 타인과 관계 맺고 성장하는 과정을 끝까지 섬세하게 짚어 나가는 작가의 문장은, 겉보기에 괴물로 보인다 할지라도 그 내면에는 언제나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한 눈물겨운 분투가 숨어 있다는 진실을 설득력있게 보여 준다. 캐릭터의 매력, 그리고 깊은 성찰로 빚어낸 두 인물의 관계에 깃든 아름다움에서 이 작품이 문학적으로 의미 있는 성취를 이루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반면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나에겐 아몬드가 있다. 당신에게도 있다. 당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거나 가장 저주하는 누군가도 그것을 가졌다. 아무도 그것을 느낄 수는 없다. 그저 그것이 있음을 알고 있을 뿐이다." 작가는 소설가겸 영화감독이다. 소설, 오디오북, 영화 등을 섭렵한다. 영화로는 <가루지기>, <너의 의미>, <다세표 소녀>등이 있고, 소설은 <4월의 눈>< <몬스터>,<타인의 집>등이 있다.  

 

  책 제목이 ‘아몬드’이다. 견과류를 대표하는 아몬드를 제목으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이 인다. 혹시 아이가 혼혈이라서 피부색이 그을린 아몬드 색인가? 라는 선입견을 깨는 첫 문장이 과격하다. ‘그날 한 명이 다치고 여섯 명이 죽었다.’ 죽은 사람은 엄마와 외할머니다. 죽은 이유는 범인의 일기장에서 발견된다. “오늘 누구든지 웃고 있는 사람은 나와 함께 갈 것입니다. ”

 

  작가가 선택한 아몬드는 감정표현 불능증이라는 희귀한 병명을 붙이는 의사들의 진단에 머무르지 않고 아이가 안전하기를 바라는 엄마와 외할머니(할멈이라고 묘사하고 있다.)의 치열한 노력으로 출발하지만 이미 세상에는 구할 수 없는 인간으로 치부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음으로 인해 할멈을 잃고, 엄마는 혼수상태에 빠지게 된다. 작가가 찾은 아몬드는 두 가지이다.

 

첫 번째 아몬드는 견과류이다.

아몬드 먹는 방법을 그림 그리듯이 내 입 안에 아몬드를 넣고 이리 저리 굴리면서 아그작 하고 씹어 먹는 것처럼 그 묘사가 섬세하다.

  먼저 아몬드 봉지를 집어 들고 그 안에 든 아몬드의 촉감을 느껴본다. 포장지 아래로 만져지는 단단한 알맹이들이 고집스럽다. 봉지 윗부분을 가만히 뜯고 이중 처리된 지퍼를 연다. 눈을 감은 상태여야 한다. 그런 다음, 천천히 숨을 들이쉬며 봉투 안으로 코를 들이민다. 얕게, 숨을 끊어서 들이쉰다. 향이 몸속까지 도달하는 시간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그리고 마침내 아몬드 향이 깊이 들어찼을 때 반 줌 정도를 입 안에 털어 넣는다. 혀로 아몬드의 결을 느끼며 한동안 입 안에서 굴린다. 뾰족한 곳을 찔러도 보고 아몬드 표면의 홈을 혀로 훑어도 본다. 너무 오래 해서는 안 된다. 아몬드가 침에 불면 맛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건 그저 클라이맥스를 위한 준비과정일 뿐이다. 짧으면 시시하고, 길면 임팩트가 사라진다. 적당한 타이밍은 당신이 직접 찾아야 한다. 손톱만 한 아몬드가 포도알만큼, 키위만큼, 오렌지만큼, 수박만큼 점점 커진다. 이제 아몬드가 럭비공만큼 부풀었다. 바로 이때다. 와드득, 깨문다. 그러면 아그작 소리와 함께 멀고 먼 캘리포니아에서부터 날아든 햇빛이 입안으로 퍼져나간다. p.28

 

  두 번째 아몬드는 편도체라고 하는 익숙지 않은 단어, 뇌 속에 있는 신체 기관이다. 네이버 동물학백과 는 이렇게 소개한다. 편도체는 측두엽 전방의 피질 내측에 위치한다. 모양이 아몬드처럼 생겨서 그리스어 'almond(편도)'에서 유래하였다. 편도체는 감정, 특별히 공포와 공격성을 처리하는 핵심적인 뇌구조로 알려져 있다.

누구나 머릿속에 아몬드를 두 개 가지고 있다. 그것은 귀 뒤쪽에서 머리로 올라가는 깊숙한 어디께, 단단하게 막혀 있다. 크기도, 생긴 것도 딱 아몬드 같다. 복숭아씨를 닮았다고 해서 ‘아미그달라’라든지 ‘편도체’라고 부르기도 한다.

외부에서 자극이 오면 아몬드에 빨간 불이 들어온다. 자극의 성질에 따라 당신은 공포를 자각하거나 기분 나쁨을 느끼고, 좋고 싫은 감정을 느끼는 거다. 편도체가 작으면 나타나는 증상 중 하나가 공포심을 잘 모르는 거다. 두려움이란 생명 유지의 본능적인 방어기제다. -p.29

  그런데 내 머릿속의 아몬드는 어딘가가 고장 난 모양이다. 자극이 주어져도 빨간 불이 잘 안 들어온다. 그래서 나는 남들이 왜 웃는지 우는지 잘 모른다. 내겐 기쁨도 슬픔도 사랑도 두려움도 희미하다. 감정이라는 단어도, 공감이라는 말도 내게는 그저 막연한 활자에 불과하다. 의사들이 내게 내린 진단은 감정표현 불능증, 다른 말로 알렉시티미아였다. 알렉시티미아, 즉 감정 표현 불능증은 1970년대 처음 보고된 정서적 장애이다. 아동기에 발달 단계를 잘 거치지 못하거나 트라우마를 겪은 경우, 혹은 선천적으로 편도체의 크기가 작은 경우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다. 공포, 불안감 등과 관련된 편도체의 일부는 후천적인 훈련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 -(일러두기에서 발췌)

 

  엄마와 할멈이 통하는 유일한 공통점인 자두맛 캔디에 대한 묘사도 너무나 선명하다. 단맛과 피맛을 동시에 느낀다는 건 희생을 치러야 대가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두 사람이 자두맛 캔디를 좋아하는 이유는 좀 유별났다. 그 사탕은 ‘단맛과 피 맛을 동시에 느낄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이다. 오묘하게 반짝이는 흰 바탕에 빨간 줄이 쓰윽 그어진 자두맛 캔디. 그걸 입 안에서 굴리는 건 둘의 소중한 즐거움 중 하나였다. 그 발간 줄은 유독 빨리 녹아서 먹다 보면 혀를 베기 일쑤였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게 말이야. 짭조름한 피 맛이 단맛이랑 어우러지는 게 그럴듯하거든.

 

  "구할 수 없는 인간이란 없다. 구하려는 노력을 그만두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사형수 출신 p.j. 놀란이 한 말이다. 그는 자신의 의붓딸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수감생활 동안 자전적 에세이를 썼다. 훗날 책은 베스트셀러가 됐지만 p.j. 놀란은 그 사실을 영영 알 수 없었다. 사형은 예정대로 집행되었다. 죽고 난 뒤 십칠 년이 지난 후에 진범이 자백을 하면서 결백이 드러났다. 폭력, 절도, 살인미수 등의 무거운 전과가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시한폭탄이라고 불렀다. 무죄 선고를 받았더라도 언젠간 끔찍한 일을 터뜨렸을 거라고 말이다. (...)책 대부분은 불우했던 어린 시절과 분노로 가득 찬 젊은 시절을 적나라하게 그려 내고 있다. 사람에게 칼을 찔러 넣거나 강간을 할 때 어떤 느낌이었는지, 어떤 방식이었는지가 너무 상세하게 적혀 있었는데 마치 음식을 분류해 냉장고에 넣거나 서류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봉투에 넣는 방법을 설명하듯 그런 과정을 담담히 그려 냈다. p.127-128

 

   소설은 편도체가 작아서 감정표현 불능증인 아이가 윤이수, 실종되어 어른의 도움을 받지 못하다가 고아원을 전전하면서 언어표현이 서툴고 거친 아이인 곤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난 인간을 만나는 과정으로 이끌어 나간다. 아버지인 윤교수도 편도체가 정상인 인간이기에 곤이에게 화를 내고, 태어나지 말았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지경에 이르지만 주인공은 감정표현 불능증이기에 곤이에게 화를 내지 않는다. 그에 맞닿는 말이 ‘구할 수 없는 인간은 없다’이다. 우리가 정상이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비정상적인가를 묻는 작가의 냉철한 물음이기도 하다. 사고를 치면 나타나 사실관계를 묻지도 않고 돈으로 갚아버리는 아버지에 대응하여 ‘비뚤어질테다!’라고 아예 선언한 곤이를 대신하여 칼을 맞음으로써 주인공은 감정을 되찾는다.

 

   작가의 시선이 따뜻하고, 인간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된 이 소설은 현실에 비해 난데없이 착한 사람 일색이라서 아쉽다. 그러나 엄마의 부재를 대신하여 경제적인 부담까지도 감당해 주는 심박사,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열일곱 소년 앞에서 울 줄 아는 곤이 아빠 윤교수가 우리 주변에도 있었으면 좋겠다.

 

   이 책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엄마, 아버지들이 자녀교육을 위해 꼭 한 번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이 세상이 차갑고 냉혹하기만 하지 않다는 것을 느껴보고 싶을 때 읽어보면 큰 위로를 줄 만한 책이다. 빠르게 읽힌다. 전혀 지루할 틈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