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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은 호박죽 본문

2020년 글쓰기-물.흙.불.바람

아침은 호박죽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0. 12. 15. 16:32

  언제나 비상식량으로 단호박을 사서 부엌 창고에 둔다. 오며 가며 호박을 지켜본다. 오렌지빛 속살을 숨기고 짙은 초록, 누르스름한, 결코 잘생겼다고는 볼 수 없는, 혹이 나기도 한 호박을 바라본다.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 지를 알기에  어떤 색이 어떤 모양의 씨앗이 얼마만큼 들어 있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기에 안심이 된다.  꼭지 부분이 불룩 튀어 오른 호박은 산 지 보름은 지났다.  세탁실로 들어가면서 언뜻 보니 지난 주에는 보이지 않던 검은 점이 보인다. 역시나 눌러보니 썩고 있다. 한군데가 아니었다. 꼭지 옆에도 손으로 눌러보니 꾹 눌러진다. 아랫부분으로 돌려보니 두 군데나 물이 스민 흔적이 있다. 그대로 두면 그냥 썩겠다. 

 감자 깎는 칼로 껍질을 벗기고, 씨를 파낸다. 씨가 여물지 않아서 물렁하다. 이번에는 씨를 모으기는 틀렸다. 지난번에 받아놓은 씨는 농사짓는 지인에게 주려고 모아두었다. 속을 득득 긁어냈지만 야멸차게 긁어내지는 않았다. 속이 있어야 죽이 부드럽다. 이번 호박은 색이 진홍빛에 가깝게 붉고 연하다. 통가 산이라고 써 있었는데 지역마다 연하고 단단함이 다른가 보다.

  호박을 뚝뚝 잘라서 압력솥에 넣고, 호박을 준비할 동안 찹쌀을 한웅큼 씻어 불려놓은 걸 함께 넣었다.  굵은 소금을 조금 넣고 가스불에 올린다.  이제 끓어 오르는 동안 잠시 기다린다. 새벽의 조용함 속으로 치익치익 압력솥이 신호를 보낸다. 조금 더 기다려라. 달락 달락 달락 십여분이 지나도록 약한 불로 두었다가 가스불을 끈다.

  5분쯤 지났나? 압력솥의 김을 빼고 들여다 보니 얌전하게 잘 삶아졌다. 호박도 찹쌀도 순하게 잘 퍼져있다.  딸취업 기념으로 선물한 도깨비방망이를 드르륵 드르륵 돌려서 호박과 찹쌀을 섞는다. 묽게 잘 섞였다. 설탕을 조금 넣어서 휘젓는다. 이제 아침 식사로 곁들일 단호박죽이 완성이다. 

  아침에 먹는 호박죽은 기분을 좋게 한다.

호박죽에 맞춰 노란 니트 옷을 맞춰입고 출근을 한다.   나만 아는 비밀이다. 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