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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글쓰기-물.흙.불.바람

선한 영향력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0. 12. 16. 23:14

  사무실 책상을 바꿨다.  이전의 책상은 구입한 지 20년은 넘었을 책상이다. 아직 멀쩡해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열쇠가 맞지를 않는다거나 나무 서랍 아래가 옷에 닿을 때마다 긁혀서 옷을 상하게 하니 거기에 부직포를 붙여 놓았다.  이 책상은 열쇠를 꽂아 잠그는 형태이다. 오른쪽, 왼쪽의 책상을 잠근 다음에 중앙의 서랍을 잠가야 잠긴다.  그런데 왼쪽 서랍은 잠기지를 않는다. 열쇠가 헛돈다. 나무 서랍 속은 얼룩이 여기저기 묻어 있다. 이 책상의 주인이 된 지 2년이 되어서야 책상을 바꿀 수 있게 되었다.

  첵상 서랍 속에 있는 펜, 서류들, 책을 필사한 노트, 지인에게 선물 받은 머그잔 뚜껑, 조각보 만드는 이가 선물한 주머니, 명함 한 뭉치, 그 속에서  초록색 핸드크림을 발견했다.  둥근 통의 그것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다녀온 지인이 선물한 핸드크림으로 나의 한포진이 생긴 손을 안타깝게 여겨 전해준 거라 아끼며 쓰고 있는 것이다.  그리 효과가 좋은지 기억나지 않지만 초록색 뚜껑을 열면 기분이 좋아진다.  선물은 이렇게 자주 쓰는 물건이어야 준 사람을 오래 기억할 수 있나 보다.

  새 책상은 일찌감치 설치하고 갔으나 컴퓨터를 연결하고, 전화기, 스피커, 프린터까지 연결하려니 엄두가 나질 않는다. 유지보수팀이 올 때까지 컴퓨터 없이 일을 하기로 했다.  영하 10도를 밑도는 날씨지만 낮에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따뜻하다. 햇살을 받으며 운동장 쪽을 향해 일을 한다.  그동안 쌓아둔 서류 중에서 파쇄할 것들을 찾아서 100쪽은 족히 넘을 서류들을 차례대로 파쇄기에 넣는다. 파쇄기는 강력하다. 모두 빨아들이며 글자를 지우고, 종이 안에 쓰인 흔적을 지우고, 나의 시간들도 지운다.

  퇴근을 30분 앞두고 컴퓨터를 켜니 들여다 볼 서류가 20건 올라와 있다.  다들 열심히 일을 하는구나.  급한 건을 골라 먼저 처리하고, 자세히 읽어야 하는 건은 천천히 읽어 본다.  책상을 바꾸느라 하루 종일이 걸린 셈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누군가 나의 후임이 오더라도 기존의 낡은 책상보다 새로운 책상을 마련해 준 선임을 고마워하겠지 하는 마음에 바꾸기로 한 책상이다.  나의 시간이 아깝지 않게 책상이 깔끔해졌다.

 

  저녁에 빵집에 들렀다. 올리브 치아바타를 사고 싶었다. 다 팔렸다. 돌아 나왔다. 치즈치아바타라도 살걸 그랬나? 다시 가게로 들어간다. 한 번도 안 먹어 본 치즈 치아바타를 산다. -올리브 치아바타는 다 팔렸군요.- 올리브 남았는데 드릴까요? 근데 어제꺼라서 괜찮으세요? 네, 고마워요! -세상에나! 치즈 치아바타를 사고 올리브 치아바타는 선물로 받았다. 어제 구운 빵이라는 이유로. ~~ 운이 좋다.  내가 다음에 올 후임을 위해 책상을 설치하고 하루를 보내면서 즐거웠듯이 빵가게 주인도 내게 잠시 기쁨을 선물한 셈이다. 찬바람에 머리카락은 헝클러졌어도 머릿속이 시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