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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소설> 내겐 너무 고마운 본문

2020년 글쓰기-물.흙.불.바람

<손바닥소설> 내겐 너무 고마운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0. 12. 21. 13:17

손바닥소설 -고양이의 시선-

 

‘어라? 이번에는 다른 사람이네.’

요며칠 사람들이 우리집 근처를 어슬렁거린다. 그그저께부터다. 그날 대머리 아저씨가 다녀갔다. 땅딸막하고 배가 불룩 튀어나오고 혈색이 좋은 아저씨는 내 집 주변을 계속 서성거리다가 옆집인 편의점에도 들러서 사장님에게 “저 집을 누가 지었나요?” “언제부터 저기 있었죠?”하며 꼬치꼬치 캐물었다. 내 집에 관심을 보인 사람들 중에 남자는 처음이다. 11월이라 별로 춥지도 않은데 ‘스읍~ 습’하는 버릇이 있나보다. 자꾸만 입으로 스읍~ 습 스읍~ 습  한다. 두어번을 더 반복하면서 내 집앞을 왔다갔다 하더니 휙 돌아서 가버렸다. 다행히 내가 울타리 옆에 있어서 나와 눈이 마주치지는 않았다. 나는 나를 싫어하는 사람을 금방 알아본다. 학교 울타리 안에서 자주 본 아저씨다. 나도 지켜보고 있어. 대머리 아저씨! 다음에 내가 죽은 쥐로 보답할게요. 당신 차 어디다 세우는지 내가 알아요. 흐흐.

 

   아저씨가 가고 나서 두 번째 온 아주머니는 두꺼운 안경을 쓰고 호기심이 많은지 눈을 위아래로 크게 뜨고는 집을 이리 저리 두리번거린다. 허리를 굽히고 안경 너머로 깜빡거리는 눈썹에 점이 하나 붙었다. 점이 크게 붙었고, 그 점에 내 수염마냥 삐죽하게 수염이 났다. “세상에나 여기다 집 다 지었네. 옷가지며, 음식까지 이렇게 많은 걸 보니 자주 오는 모양이네. 이를 어째......" 계속 중얼거리면서 내 집을 들여다본다. 왜 자꾸 들여다 보냐고! 사생활침해 몰라요? 이런 들켰다. 미처 집에 있던 아이들을 숨기지 못했다. 너무 어려서 이불속에서 꼬물꼬물 모여있는 아이들을 들켜 버렸다. 아줌마, 내 애들 본 거 비밀로 해주면 안되요?

 

   그제 우리 가족을 보살펴 주시는 천사 아줌마가 다녀갔다. 옷가지며, 음식이며, 잔뜩 가지고 와서 이리 저리 살펴 주시는 고마운 분이다. 내가 아기를 낳은 걸 아신 후로는 이틀에 한 번은 온다. 아이를 낳고도 겨울이 자꾸 다가와서 걱정이었다. 먹여 살리고, 애를 뉘일 집이 없으니...... 너무나 고맙다. 그런 내 맘을 어찌 알았을까? 천사처럼 생기지는 않았지만 내가 천사라고 부르기로 했다. 뭐라도 보답을 해야 할 텐데. 가진 게 없네.

 

   아주머니가 가고 나서 바로 젊은 아저씨가 왔다. 지난번 대머리 아저씨에 이어 두 번째 남자다. 내 경험에 의하면 남자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 남자 중에서 내게 관심을 두었다면 나를 해칠 생각이거나 아니면 괴롭힐 생각인 게 분명하다. 그것도 아니면 여성호르몬이 많거나. 어라. 손에 뭘 들고 왔다. 아! 종이네. 젊은 남자는 종이를 우리 집 앞에 있는 담에 붙이고 ”아휴, 이런 거 까지 내가 해야 돼? 정말 짜증나. 하다 하다 고양이 관리까지 하라고? 바빠 죽겠는데. 한 번 받아버려?’ 하고 투덜투덜하다가 분이 안풀리는지 냅다 우리집 담을 발로 휙 걷어찬다. 다행히 제대로 맞지는 않아서 집은 흔들리기만 할 뿐 그대로다. 누구한테 화를 내는 건지 몰라도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다. 괜히 나한테 화풀이를 하고 간다. 역시 남자는 공감 능력 제로야. 이리 멋지고, 품격있고, 새초롬하게 쭉 빠진 존재를 몰라보다니. 애들은 얼마나 이쁜데? 쯧쯧.

 

   내가 이렇게 여러 사람의 관심을 받은 건 처음 있는 일이다. 왜 갑자기 나한테 오는 사람이 많아졌을까? 내 애들이 탐나서 그런 걸까? 대머리 아저씨 이후로 여러 사람이 온 걸 보면 대머리 아저씨가 시킨 게 분명하다. 뭐라 했을까? 내가 없는 새 아이들을 데려갈 속셈인가? 가만.... 뭐가 문제였을까? 나랑 마주친 적이 있었나? 아! 지난 번에 학교 울타리 옆에 있는 모래에 일을 보고 나오다가 검은 옷을 입은 남자와 마주쳤구나. 엉겁결에 도망치느라 대머리인지는 못 봤구나.

 

  아침 일찍 천사 아줌마가 왔다. 종이를 떼어서 들여다 보더니‘학.교.로.연.락.바.랍.니.다.’“너한테 오는 걸 학교에서 알았나 보다. 어쩌냐? 너네 집에 낮에는 못 오겠다. 안되겠다. 밤에 아니면 주말에 올게. 그 사람들 말야. 낮에만 있고, 주말에도, 밤에도 학교를 비워 놓는데 내가 여기 오는 걸 어찌 알겠니. 안그래?”아줌마는 이내 종이를 착착 접어서 주머니에 넣는다. “흥! 백날 붙여봐라. 내가 전화를 하나. 이런 종이짝 붙여 놓으면 어쩔 건데? 건들기만 해봐. 내가 인터넷에 확 올릴 거니까. 걱정마라, 야옹아. 이따 밤에 올게. 잘 있어라. ” “야 옹!” 내겐 너무 고마운 아줌마. 이따가 학교 창고에서 봐 둔 쥐를 잡아다가 산 채로 아줌마에게 선물을 해야겠다. 쥐는 갖고 놀기 그만인데,  천사 아줌마도 기뻐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