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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글쓰기-물.흙.불.바람

가지 않은 길, 보지 못한 꽃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0. 11. 19. 14:54

11월초 서리를 맞고도 용케 살아남아 꽃을 피우는 붉은 인동꽃

 

 아침에 주차를 하고, 교문을 들어서면 세 갈래 길을 만난다.

먼저 왼쪽으로 들어서서 운동장 가장자리로 놓인 보도블록을 따라가는 길이다.  이 길을 따라 가면 놀이터를 만난다. 놀이터에는 구름사다리, 정글짐, 늑목, 철봉이 나란히 있고, 그 옆으로 그네 두 쌍이 있다. 놀이터를 지나면 운동장에 서로 마주 보고 서 있는 축구골대 세 개를 만난다. 축구골대가 세 쌍이 된 이유는 축구골대가 하나만 있으면 아이들이 서로 다투기 때문에 핸드볼 골대를 양쪽으로 두 쌍을 놓아서 원하는 아이들이 모두 축구를 할 수 있도록 놓다 보니 세 쌍이 되었다.  그 왼편으로는 레몬-노랑-주황 순으로 내려오면서 칠해진 스탠드를 만난다. 이 스탠드는 올해 환경을 정비하면서 교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색상을 정했다. 아침마다 바라볼 적마다 환하다. 색상을 잘 선택했다.  스탠드를 지나 화단으로 가면 이 학교 부지를 기부한 분을 기리는 동상이 나온다. 70년 전에 서당을 만들어 아이들을 가르치던 터를 선뜻 학교부지로 기부한 분은 참으로 훌륭하다. 이렇게 기리어 마땅하다.  동상을 지나 현관에 이른다.  전광판이 있다. 시각,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를 알린다.  

 두번째 길은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길이다. 정문을 지나 반듯하게 오면 안 된다. 정문에서 11시 55분 정도의 위치를 향해 걷는다. 그래야 현관으로 곧장 다다른다. 운동장을 가로지르면 가장자리는 낮고, 운동장 가운데가 지형이 다소 높음을 감지할 수 있다. 그래서 물이 잘 흘러서 배수구로 빠질 수 있다. 운동장 가운데에 서면 내가 키가 커진 기분이 든다.  마사토를 깔아놓은 바닥은 아침에 걸으면 상쾌함을 더해준다. 맨발 걷기를 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은 길이다.

  세번째 길은 정문을 들어서서 오른쪽으로 난 길이다. 보도블록을 따라간다. 먼저 큰 플라타너스 나무를 두 그루 만난다. 학교의 오랜 역사를 알고 있는 나무다. 이제는 무성하던 잎을 떨구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다.  나무를 지나면 어른들이 운동을 할 수 있도록 마련한 허리 돌리기 운동기구가 두 개 선 운동공간을 만난다. 운동기구를 지나면 파고라가 나온다. 파고라 안에는 네 개의 벤치가 있다. 가끔 동네 할머니가 오셔서 앉아계시기도 한다. 아이들이 가끔 앉아서 놀기도 한다. 파로가를 지마녀 칠엽수(마로니에) 나무, 화살나무, 송악이 심어진 숲길이 이어진다. 숲길을 지나면 등나무쉼터가 나온다. 등나무 쉼터에는 네 그루의 등나무가 그늘을 만들고 있다. 이 쪽 길을 걷다 보면 새들의 노랫소리를 덤으로 얻는다.

등나무쉼터를 지나 본관과 후관 사잇길을 지나면 현관으로 이어진다. 가장 먼 길이다.

  이 세 길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길은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길이다. 붉은 인동꽃을 발견한 것은 점심시간 산책길에서다. 아침에 내가 운동장을 가로질러 다니는 동안 파고라 앞 장미덩굴 울타리 옆에서 애쓰면서 인동꽃이 혼자 피고 있었다. 산책길에 발견하고 반가웠다.

 

 가지 않은 길에는 내가 겪지 못한 일들이 있다.

내가 모르는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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