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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는 수요일]2025년 5주 -쉼보르스카 <베트남> 본문

시 읽는 수요일(시 큐레이터)

[시 읽는 수요일]2025년 5주 -쉼보르스카 <베트남>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5. 1. 30. 00:19

                                                      베트남

 

                                                 비스와바 쉼보르스카(1923-2012, 폴란드)

  

 

여인이여, 그대 이름은 무엇이냐? - 몰라요.

어디서 태어났으며, 어디 출신인가? - 몰라요.

왜 땅굴을 팠지? - 몰라요.

언제부터 여기서 숨어 있었나? - 몰라요.

왜 내 약지를 물어뜯었느냐?  - 몰라요.

우리가 당신에게 절대로 해로운 직을 하지 않으리라는 걸 아는가?  - 몰라요.

당신은 누구 편이지?  - 몰라요.

지금은 전쟁 중이므로 어느 편이든 선택해야만 한다.  - 몰라요.

당신의 마을은 아직 존재하는가?  - 몰라요.

이 아이들은 당신 아이들인가? - 네, 맞아요.

 

  2025년 1월 29일 수요일, 음력 설날이다.  육십 간지에 의하면 42번 째인 을사년(乙巳年)이다.  푸른 뱀의 해이다.  설 명절을 앞두고 혼자 사시는 어머니께 연락을 드리니 언니가 전화를 받는다.  이건 필시 무슨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다. 아니나 다를까? 노인정에 가려고 인도에서 내려서다가 넘어져서 다쳤고, 응급실에서 얼굴을 두 바늘이나 꿰맸다고 한다.  넘어질 때는 몰랐지만 나중에 보니 피가 많이 나서 전화로 119를 누르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았고 지나가던 승용차가 멈추어 어머니를 차로 모시고 보건소로 갔었고, 다시 집까지 모셔다 주었다고 한다. 

  넘어진 충격에 놀란 어머니는 고열까지 났고 다른 병원에 가보니 독감에 걸렸다고 한다.  앞뒤가 바뀐 것 같다. 아무래도 독감으로 전날부터 기침을 했지만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고 여느 날과 똑같이 노인정을 가려고 집을 나섰지만 컨디션이 심하게 안 좋은 상태라서 도로의 작은 턱에서도 헛디뎌서 넘어지는 사태에 이른 모양이다. 후에 알고 보니 선행을 베푼 그분이 군청에 다니는 분이라 하여 군청 홈페이지 '칭찬합시다'코너에 감사 인사를 적었다.  

 

  명절 전에 임시공휴일까지 생겼으니(1.27. 을 정부에서 임시공휴일로 정했다.) 주말을 이용해 어머니를 방문했다. 많이 안 다쳤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과는 달리 얼굴은 크게 부어 있었고, 입술 부분을 다쳤으니 말도 어눌하였다. 넘어지면서 놀라기도 하였으니 안정이 필요해 보였다.  약이 한 움큼이고 항생제가 있어서 독하기도 한 모양인 데다 입맛을 쓰게 하는 모양인지 음식도 많이 드시지 못하였다. 게다가 독감을 판정받았으니 옮지 않으려면 딸들과는 음식을 따로 먹어야 했다. 어머니는 식탁에서 우리는 밥상을 펴고 먹는 방법을 택했다.  

 

  나보다 꼭 삼십 살이 많은 어머니를 보면 나의 미래를 보는 듯하다.  자식 다섯을 키우느라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밭일을 하여 두 무릎의 연골이 다닳았다. 인공관절수술을 받았으나 오른쪽 무릎은 잘 구부러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여전히 밭일을 하고, 화단에 꽃을 키운다.  명절이면 참깨를 볶아서 생수병에 담아놓고,  들기름을 짜서 깨끗이 씻어서 말린 소주병에 담아놓는다. 

 

  '전생에 죄를 많이 지으면 그 죄값을 치르기 위해 부모자식 관계가 된다. 죄를 갚기 위해 부모로 태어나서 자식에게 한평생 베풀면서 갚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부모는 그런 존재다.  본능적으로, 생물학적으로, 자신의 DNA를 남겨주기 위해서라는 말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한없이 베풀어서 허물만 남는 게 부모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한편, 나이 구십을 바라보는 어머니가 아이처럼 자식에게 의지하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니 '100세 장수시대'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를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