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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는 수요일(시 큐레이터)

[시 읽는 수요일]2025년 8주-짧은 생각(최영미)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5. 2. 19. 22:26

                 짧은 생각

                                       최영미

 

양심과 도덕에 구애받지 않는 자들이

이 세계를 만들고 파괴하지

 

 

단순한 흑백보다 복잡한 회색이 인류에게 덜 해롭다

 

---------시집<다시 오지 않는 것들> 중에서--------------

   2024년 12월 3일 일어난 비상계엄 발표와 12월 4일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결의안에 따른 계엄 해제 발표 이후 세상이 달라졌다.  벌써 76일이 지났지만 아직 정당한 비상계엄이었는지, 아닌 지를 심판하기 위해 헌법재판소에서 재판 중에 있다.  대통령이 구속되어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어 있고,  헌법재판소에 재판이 있는 날이면 안양에서 서울로 대통령을 실어나르는 법무부 호송차량의 모습이 실시간으로 뉴스에 보도된다.  재판에 방청객으로 참여하려는 사람들의 경쟁률이 치열하다.  유투브를 통해 얼마든지 재판 내용을 볼 수 도 있다.  재판에 증인으로 또는 참고인 신분으로 참석한 공무원들의 말을 듣고 온 국민이 큰 충격을 받았다.  대통령의 탄핵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찬성하는 사람들이 서로 편을 나누어 집회를 한다.  앞으로 한 달은 지나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나는 공무원의 기본 철학은 '공공성'과 '평등성'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공공성은 사적인 이익보다는 공적인 이익을 추구하고, 국가 기관을 대신하여 맡은 역할을 한다는 의미다.  그러니 그 시작은 '모든 국민은 평등하다'는 인식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공무원이 공공성과 평등성을 갖추게 되면 그는 사람으로서 표현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저 회색 인간 중 한 사람일 뿐이 된다.  그런데 분명한 흑백 논리를 가진 사람이라면 그렇지 않다.  생각이 생각을 잡아먹는 알고리즘처럼 단 한 번의 행동과 표현이 거대한 블랙홀로 이끌려 들어갈 수도 있으니 말이다. 

 

  시인은 통찰을 통해 흑백이 분명한 사상가와 철학을 가진 사람들이 인류에게 얼마나 해로웠는지 알아낸 모양이다.  도덕, 양심, 양보, 존중, 배려와 같은 말들이 무색한 재판 과정을 보면서 아이들에게 어떤 교육을 해야 하는 지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나도 그렇다.  우리의 세상도, 우리의 교육도 '서울대학교' 현판을 떼어내지 않는 한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누구나 해답을 알고 있지만 누구도 해답을 풀려고 하지 않는다고 생각된다.  아직은 때가 아닌 모양이다.  나의 생각도 짧은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