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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어떤 양형 이유 본문
우리는 서로의 배경이면서 전경이다
<법정의 얼굴들>의 저자인 박주영 판사의 두 번째 책이다. 변호사생활 7년 후에 판사로 살기 시작했다.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다. 저자는 동네 변호사를 꿈꾸었다고 한다. 동네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소소한 일들을 풀어주고 월말에 계산해서 적당한 수임료를 받는 변호사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향판(시골 판사)이고, 승포판(승진을 포기한 판사)이며 정의를 생각하고 눈물이 많은 판사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법정의 얼굴들> 두 번째 이야기로 보이는 이 책의 제목이 <어떤 양형 이유>인데 '양형 이유'는 판사가 판결문에 공소사실에 대한 법적 설시( 說示, 알기 쉽게 보여줌)를 모두 마친 후 판결문 마지막에 이런 형을 정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밝힌다. 죄질, 전과, 피해변제(합의) 여부, 재범의 위험성들을 주로 기술한다. 판사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서문 6P)
에필로그에서 밝힌 것처럼 '좋은 판사는 아니어도 훌륭한 판사들과 함께 일했다'는 말을 하고 싶다는 저자의 태도는 공직자로서, 말 한마디와 글 한 줄로 타인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역할을 하는 판사로서, 냉정한 법과 힘 있는 정의가 살피지 못하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마지노선에 선 사람으로서의 자기 본위를 지키려 애쓰는 데에 방점을 찍고 있다.
저자가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을 종교적 수행 정도로 여기는 것은 자신이 그만큼 넘어지고, 다치기 쉬운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는 깨달음에서 출발한다. <선방일기>(2000, 지허스님)를 옮겨 적은 것도 흔들리고 무너지고 슬퍼하는 자신을 붙들기 위한 수오(守吾)의 방책으로 보여진다. '철저한 자기 본위의 생활은 대인관계에 있어서 비정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 비정한 자기 본위의 생활에 틈이 생기거나 흠결이 생기면, 수도는 끝장이 나고 선객은 태타(怠惰, 몹시 게으름)에 사로잡힌 무위도식 배가 되고 만다. 자기 자신에게 철저하게 비정해야만 견성의 길이 열리는 것이다. (중략) 비정 속에 비정을 씹으면서도 끝내 비정을 낳지 않으려는 몸부림, 생명을 걸고 생명을 찾으려는 비정한 영혼의 편력이 바로 선객들의 상태다. 진실로 이타적이기 위해서는 진실로 이기적이어야 할 뿐이다.'(p.231) 자기본위(自己本位)는 자기의 감정이나 이해관계를 기준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일이다. 청말 이후 대혼란기를 살았던 중국의 소설가 루쉰이 선택한 삶과 글쓰기의 방책이기도 하다. 환경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이 가진 철학을 유지하기 위해 매 순간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선택인 셈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생각만을 강조하지 않으려는 자기 견지의 모습까지 추구한다. '흔들리지 않는 삶은 주위 여건이나 환경이 흔들릴 때 여지없이 넘어진다. 레미콘 차량 속 콘크리트는 끊임없이 돌려야 응고되지 않는다. 멈추면 굳기에 흔들려야 한다. 강 건너 풍경은 같은 편에서가 아니라 강 건너 편에서 더 잘 보인다.(p.208)'
이 책에서는 저자가 판사로서 마주하는 삶은 고행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약한 사람들이 범죄의 굴레에 내몰리는 사정과 눈 감을 수 없는 사람들의 아픔을 보면서 자신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말하고 있다. '몸이 글을 지탱하고, 삶이 글을 지지해야 함에도 내 삶과 글이 유리되어' 고민한다. 그리고 김수영시인의 말을 빌려 자신의 글쓰기와 삶의 방법을 다시 한번 되새긴다.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하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다. (1968)'
마이클 샌델이 유명한 책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말한 내용보다 더 정확하게 정의에 대한 정의를 짚어낸다. 마이클 샌델이 5명을 살릴 것인가? 1명을 살릴 것인가를 고민하게 하고 책 한 권을 어렵게 철학자처럼 기술한 것에서 답을 찾지 못한다. 법은 현실과 힘에 가깝고, 정의는 나약하고 소심해서 빛이 나지 않는 것을 늘 법대(法臺, 법원 재판정에서 판사가 올라앉는 높은 단상)위에서 보아 왔기때문이다. '힘없는 정의는 무력하고, 정의 없는 힘은 폭력이다. 정의와 힘은 동시에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정의가 강해지거나 강한 것이 정의가 되어야 한다. 정의는 시비의 대상이 되기 쉬우나 힘은 시비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 정의는 강해지기 힘들다. 결국 강한 것이 정의가 되었다.(파스칼)(p.267) 판사가 지켜야 하는 것은 법과 정의다. 그러나 법과 정의의 상대가 사람이고, 변론주의를 선택하고 있는 한국에서 민사소송의 당사자는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데 대책 없이 법정에 서는 사람들을 보면 판사로서 도울 수는 없지만 한 시민으로서는 힘없는 시민을 돕고 싶기에 갈등하고, 저들의 슬픈 사연에 눈물을 흘린다고 말한다.
저자의 책을 두 번째 읽다 보니 판사로서, 공공의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의 고민이 읽힌다. 공자가 40의 나이를 불혹(不惑)이라 한 것은 유혹이 많으니 조심해야 하는 나이임을 말한 것이고, 50을 지천명(知天命)이라 한 것도 하늘이 준 운명같은 일을 생각해야 할 나이라는 해석을 해 본다. 40과 50의 나이를 지나고 있는 저자가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고 사람들과 살아가는 길을 말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하나의 쓸모, 또는 소비의 대상 정도로만 여기던 사람들이 얼마나 고행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지를 볼 수 있는 법정의 이야기는 사회가 지우고 싶어 하는 이면이고 아픈 속살 같은 이야기다. 저자가 말한다. '나는 당신의 배경이고, 당신의 나의 배경이다. 우리는 서로의 배경이면서 전경이다.(p.233)' 그러니 진실로 이기적인 자기본위의 삶으로 시작하여 이타적인 삶으로 이어가는 삶을 꿈꾸는 판사의 이야기에는 희망이 있고, 꿈이 있어 따뜻하다. 요즘 법이 정치를 하는 세상으로 보이는데 우리가 보는 것은 일부일 뿐임을 박주영판사의 글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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