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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밥상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3. 1. 14. 20:27

남해안에서 머문 지 나흘째다. 거제에서 바다와 동백을 마음에 담고 여수로 왔다. 집밥이 그리운 저녁에 맞춤한 식당을 찾았다. 노부부가 차려내는 밥상인데 백반 한 상에 6,000원, 카드는 7,000원이다. 요즘 인플레이션으로 칼국수 한 그릇도 8,000원 이상인데 어느 시대를 사는지 모를 가격이다.
노란 중절모를 쓴 노신사가 "새해 복 많이 받아요"하고 인사를 건넨다. 낡은 TV를 보면서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한다. 제철이라는 서대회와 백반을 주문한다. 백반은 열두 가지 반찬과 김치찌개를 얹은 양은쟁반에 담아 내주는데 시금치. 김치, 간장게장, 양념게장, 흰작두콩조림, 갓김치, 말린 생선무침(조림 아님),  콩나물무침. 상추대( 궁채) 장아찌, 삶은 꼬막, 어묵조림, 노랗게 조린 연근조림이다. 거기에 미역국을 더한다. 늙은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 차린 밥상같이 심심하고, 설탕이 덜한 게 특징이다. 요즘 넘치는 게 설탕의 단맛인데 건강을 생각하여 만든 정직한 맛이다. 서대회는 당근, 무, 배, 서대회, 양배추를 넣어 무쳤는데 맵지 않고 달지 않아 시원하다.
밥을 다 먹고 나니 어머니의 밥을 먹은 듯 배가 부르다. 보통 식당밥은 먹어도 허기가 지는데 이 집의 밥은 배가 부르다. 여수에서 만난 특별한 대접이었다. 친절한 노부부의 밥상에 초대받은 기분이다. 나올 때는 카드대신 현금을 내고 나왔다. 오래된 밥상, 잊힌 밥상을 발견한 특별한 저녁이었다.

이 밥상은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이다. 나는 차마 음식에 사진기를 댈 수 없었다.  식당이름이 덕충식당이다.  여수서시장 주변  골목에 있다.  그 앞 교회는 주차장을 공유해 준다.  키 작고 솜씨 좋은 할머니에게 변고가 생기면 머지않아 닫을 식당이다.  머지않아 다시 찾고 싶은 식당이다.

#여수 덕충식당#서대회#백반#어머니의 밥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