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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2. 11. 6. 22:11

  아침식사로 달걀을 먹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된 일이다. 처음에는 냉장고에서 꺼낸 달걀을 찬물에 넣고 삶았다.  삶은 달걀을 찬물에 담가서 열기를 빼낸 다음에 까서 한 두 개를 먹는다. 그런데 잘 까지지 않고 속껍질을 분리하는 게 어려웠다. 그러다 어느 날은 따뜻한 물에 담가 두었다가 달걀을 삶기로 했다. '어라? 달걀 껍데기가 잘 까지네?' 바쁜 아침이지만 신통하기도 하여 물에 담가 둔 달걀을 들여다보았다.  달걀마다 물방울이 방울방울 올라오는 게 보였다. 말로만 들었던 달걀의 숨구멍을 눈으로 확인하게 된 것이다. 잊고 있었다. 달걀에도 숨구멍이 있었다는 걸. 

 사람도 숨을 쉰다.  하지만 평소에는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는다. 법구경에 이런 말이 있다. '녹은 쇠에서 생긴 것인데 점점 그 쇠를 먹는다.' 사람의 일이란 사람의 몸을 기반으로 행해지는 것이다. 몸 속에서 이루어지는 기계적인 일이 자연스럽게 지속되면 당연한 일로 여기고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다 어느 한 부분이 고장이 나면 기계적인 일이 멈추거나 지속되지 못하는 현상이 생기고 몸의 주인은 그제야 몸이 하는 일에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그러면 그동안 몸의 주인의 주의는 어디에 있었던가?

 

 '인생은 유한하다'는 말은 아동기, 청년기에는 너무나 먼 이야기 혹은 나의 이야기가 아닌 것으로 인식한다. 심지어는 얼마나 지루하고 지루했던가를 생각해 보라. 어린 시절에 지루한 오후처럼 말이다. 그리고 청년기를 넘어서면 성장, 발전, 과시 등으로 자신을 가득 채운다. 그러는 사이 당연하게 몸은 그 자리에서 기계적으로 유지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성장, 발전, 과시욕은 점차 자신의 한계치를 넘어선다. 그러면 몸은 한계치를 반영하려고 이상반응을 만들어낸다. 그것이 병이다. 

 숨을 쉬는 행위는 외부의 공기를 내부에 전달하고, 내부의 공기를 외부로 전달하는 동작에 불구하다. 그러나 거기에 집중하는 사이 '나'라는 몸과 정신이 쫓는 일들이 객관화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몸과 정신이 추구하는 일에서의 메타인지를 발견한다. '나는 누구인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는 어디에 있는가?'를 묻는 질문이 답을 찾도록 유도한다. 답은 질문에 있다.

 

 달걀은 냉장고에서 긴장하고 있다가 따뜻한 물에 담갔을 때 어떤 반응을 했을까? 긴장을 풀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까? 명상은 숨쉬고 있음을 깨닫는 행위에서 시작된다. 죽은 사람은 명상이 불가하다. 숨 쉬고 있는 자만이 명상할 수 있다. 쇠에서 녹이 생겨 쇠를 먹듯이 사람의 욕심과 행위는 몸과 정신마저 먹어버린다. 그걸 발견하는 일이 명상이다. 명상은 숨 쉬는 행위를 관찰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명상의 힘은 위대하다. 자신과 연결된 세계의 흐름을 발견하고 자신의 방향을 정할 수 있다. 관찰은 과학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명상하라, 지금 이 순간 깨어있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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