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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불. 흙.바람 +나
2022. 11. 10. 본문
나무는 망설이지 않는다.
지난주 금요일 오후에 울타리 안에 있는 은행나무들이 하나 둘 샛노랗게 물든 걸 보았다. 어떤 성급한 나무는 이미 반쯤 나뭇잎을 붙든 손을 놓아 버렸다. 우수수 떨어진 잎들이 나무줄기 주변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다. 아이들이 모여서 나뭇잎을 모아 머리 위로 흩뿌리는 놀이를 하며 논다.
그러나 꼿꼿하게 서서 "난 아직 아니야!"하는 자세로 덜 물든 은행나무를 보았다.
'그래, 넌 아직 준비가 덜 됐구나. 그럼 다음주까지 볼 수 있겠네. 다음 주에 보자.' 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월요일에 출근해서 보니 이게 웬걸. 모두 다 쏟아져 내려서 몇 안 되는 나뭇잎만 매달고 있었다. 나는 준비가 안됐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토요일, 일요일 사이 준비가 되었고, 어느 날 밤에 한꺼번에 나뭇잎들을 뿌리 쪽으로 불러들였다. 나무는 망설임이 없었다. 나만 그 나무 아래서 마음 졸이고 서서 '너는 언제 저 옆에 있는 나무처럼 물들 거냐?'라고 물었을 뿐.
때가 되면 망설이지 않고 자연은 변해 간다. 사람만 망설이고, 또 망설이며 그 자리를 맴돌고 있다. 나무는 망설이지 않는다. 성큼성큼 겨울로 향해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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