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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 본문
이 책은 여성학 연구자, 융합 글쓰기, 인문학 강사 이기도 한 정희진 박사의 <정희진의 글쓰기> 시리즈 중의 하나다. 내가 정희진이라는 이름을 알게 된 것은 융합 글쓰기의 칼럼을 읽고 나서다. '한국에 이렇게 자신의 말을 조리 있게 풀어내는 사람이 있다니', '왜 이렇게 글을 어렵게 썼을까?', '마치 성난 붓으로 휘갈겨 써 내려가도 흐트러지지 않고 범주 안에 머무르는 고난도의 글쓰기 실력을 가진 분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격적으로 글쓰기에 관심을 갖고 칼럼을 읽다보니 어떤 칼럼은 극우에 빠져 있고, 어떤 칼럼은 너무 정치적이고, 또 어떤 칼럼은 너무 시대의 변화에 뒤떨어져 보였다. 내가 더 관심을 가진 것은 여성학자로서 '온몸으로 글을 쓴다'는 게 오롯이 글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정제된 설탕처럼 본연의 모습은 살짝 드러나면서도 강하게 특성을 살리는 글은 '어렵게' 쓰는 것에 대해 의미를 부여함에서 비롯되었음도 알게 되었다. 글은 쉽다고 해서 다 좋은 건 아니다. 의미를 담는 글들은 때로 어렵다. 나는 그런 글을 선호한다.
저자는 책 머리에서 글쓰기에 대해 밝힌다. 저자의 말은 선명하다. 명쾌하게 드러난다.
"내가 먹는 것이 나다.' '내가 행하는 것이 나다'라는 진리처럼 나는 '글은 곧 글쓴이다'라고 생각한다. 아니 글만큼 그 사람 자체인 것도 없다"
"글쓰기는 삶과 분리될 수 없다." 작가에게 글쓰기는 '말하기'이고, 말하기는 곧 '사는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평생에 걸쳐 자신을 알아 가는 일이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자신의 위치를 알고, 자기 내부에서 다른 세계로 이동하면서 변화하고 성장하는 것이다. -책머리에서 발췌-
머리말의 제목이 '글이 나다'이다. 작가는 소설가 정찬의 글과 메리 울스턴르패프트의 말을 을 인용하여 자신의 글쓰기에 대해 말한다.
'강을 건너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지요. 배를 타는 것과 스스로 강이 되는 것, 대부분의 작가들은 배를 타더군요. 작고 가볍고 날렵한 상상의 배를'-정찬, <슬픔의 노래> 글 쓰는 이들이 주체와 대상의 분리에서부터 몸으로 글쓰기, 타인을 억압하지 않는 자기 해방, '강'과 '배' 그리고 건너는 방식(삶) 등을 행위하고 있음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말한다. (16쪽)
'시간이 좀 더 있었더라면 더 나은 책을 쓸 수 있었겠지만 상업적인 용도로 글을 쓰는 작가로서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메리 울스턴크래프트(<프랑켄스타인>의 저자 메리 셸리의 어머니) 정희진 작가는 여성학자이지만 강사다. 박사학위를 갖고 있지만 교수가 되지 못하고 강사로 전전한다. 그러니 생계를 위해 글쓰기도 해야 한다. 그런 작가의 심정이 200년 전의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말에 가 닿았다. 생계로 하는 글쓰기에 대한 부끄러움에 '메리 울스턴크래프트'가 '역사성'을 부여했다. 나만 겪는 일이 아니다.(17쪽)
이 책은 세 개의 장으로 나뉜다. 1장은 '몸에서 글이 나온다. -'나'에게 돌아오는 글쓰기'를 부제로 하며 20권의 책을 읽고 쓴 글이다. 우울, 늙음, 쓸씀함, 고독, 고통, 타인, 지긋지긋함, 시시한 인생, 은둔 등의 단어가 쓰인 제목에서 읽을 수 있듯이 작가는 다양한 감정을 몸으로 겪은 이야기를 쓰고 있다.
2장은 '우리는 타인을 위해 산다-'너를 만나는 글쓰기'를 부제로 21권의 책을 읽고 쓴 글이다. 인간은 변하지 않아, 혼자인 것과 함께 혼자여야 한다. '먼지가 되어,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될 수 없는 자. 안전한 관계, 사랑은 조건적' 등의 제목으로 쓴 글이다.
3장은 '내게 '여성'은 고통이자 자원이다.-창의적 글쓰기의 가능성'을 부제로 22권의 책을 읽고 쓴 글이다. '모든 혐오의 출발은 자신이다. 그 남자의 여자들, 제2의성, 임신 중 구타가 육아 사망의 주원인, 성폭력 가해자의 실명, 죽이는 것은 너무 자비로운 일이다. 지배하는 치유자, 남성성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요?, 여자를 먹었다는 남성은 식인종인가?' 등의 제목으로 쓴 글이다.
이 책에 실린 글은 63권의 책을 읽고 작가가 쓴 서평을 묶은 글이다. 대략 2,000자 내외로 2~3쪽 분량의 글이라서 잘 읽힌다. 읽다보면 작가가 해박한 지식을 가진 내용에 대해서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영화, 책이 등장한다. 마치 유0브에서 알고리즘이 적용되어 계속 이어지듯이 정희진 작가의 글은 단지 한 꼭지의 글을 읽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글쓰기 버릇에 대해 발견한 게 있다. 저자는 말줄임표를 즐겨쓴다. 어떤 부분에서는 말줄임표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 작가만 유독 말줄임표를 많이 쓰는 이유가 뭘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글쓰기를 배우는 나로서는 정희진 작가의 글을 필사의 교과서로 정했다. 나도 같은 시대를 사는 여성으로서 저아와 같은 생각을 한 경험도 있고, 저자의 생각을 이해하는 면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성학은 '선량한 먼지 차별'처럼 너무나 많은 곳에서 우리의 삶과 연결되어 있고, 글쓰기의 소재가 될 수 있다. 평생을 글쓰기 하면서 살기로 한다면 나의 삶은 여성학의 발전과 나의 삶의 변화로 연결시킬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글에는 촌철살인의 말들이 많다. 짧고, 강하다. 많은 사고의 끝에서 나온 말이기에 설득력이 있다.
"누구에게 사랑받을 것인가. 권력이 아니라 나에게 사랑받으면 된다. 권력은 비겁해서 넘어뜨릴 수 있는 사람만 건드리는 법이다."(201쪽)-미움받을 용기편
"강남역은 '마이너리티'의 거리다. 그곳에 '된장녀'는 없다....... 차별은 일상이고 살인은 극단인가? 그렇지 않다. 여성 살해는 일산의 연결이자 수순이다. 성소수자나 '흑인'의 경우와 같다. 가해자는 피해자의 포기를 해결책으로 삼는다. 하지만 나를 비롯해 피해 여성들이 지칠 것이라는 착각은 접는 것이 좋을 것이다. 포스트잇의 가장 많은 내용은 "잊지 않겠다"였다. -강남역 10번 출구, 1004개의 포스트잇(네가 나야 편)
"변신보다 발전이 쉽다. 남들도 알아준다. 하지만 침묵은 자기와 나누는 대화다. 자신과 만남은 존재를 뒤흔들 수 도 있다. 이 책은 남을 속이는 것과 자신을 속이는 것의 차이를 알게 해 준다. 더불어 내가 왜 계속 떠드는지도 깨달았다. "-지나간 것과 새로운 것 사이에 침묵을 놓을 때(침묵의 세계 편)
작가는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이메일로 소통한다. 요즘 같은 세상에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는다니 얼마나 불편할까?라는 생각보다 참 자유롭겠다는 생각이 앞선다. 어딜 가나 휴대전화를 들고 다녀야 하는 요즘이다. 지난 주보다 이번 주에 얼마나 더 휴대전화를 사용했는지도 일요일마다 나에게 알려주는 휴대전화다. 알고 싶지 않은 것까지 '너무나 친절한' 휴대전화로 알고리즘으로 따라다니는 그림에 의해 아이쇼핑, 필요할 것 같아서, 예뻐서, 좋아 보여서 쇼핑하는 시간, 어떤 때는 쓰레기 같은 기사를 읽느라 들인 시간이 아깝기도 한 글들을 읽지 않아도 되니 좋지 않을까? 나는 밥벌이로 직장에 매여 있으니 그건 좀 어렵겠다.
이 책은 글쓰기를 공부하는 사람, 여성, 여성과 같이 사는 남성에게 권한다. 한국의 남성이 보면 편 가르기 아니냐고 할지 모르나 여성과 함께 사는 남성으로서 3장은 읽어주시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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