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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2. 3. 15. 22:42

1999년 4월 20일 발생한 미국의 콜럼바인 고등학교 학생 두 명이 학생과 교사를 향해 900여 발의 총알을 난사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은 학교 안에서 벌어진 사건 중 가장 큰 사건으로 기록되며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가해자 두 명 중 한 명인 딜런 클리볼드의 엄마인 수 클리볼드가 사건에 대한 기록을 정리하여 책으로 출판하였다.

 

  이 사건이 충격적인 이유는 범인이 고등학생으로 미국의 백인 중산층 가정에서 자상한 부모, 형과 함께 자란 아이들이라는 점이다. 에릭과 딜런이 자신들이 다니던 학교 급식실에 두 개의 폭탄을 설치했다. 기폭제가 작동을 하지 않아서 터지지 않았지만 급식실에는 500여명의 학생들이 있었다고 하니 설치한 폭탄이 터졌다면 끔찍한 사건으로 번졌을 것이라고 한다. 폭탄이 터지지 않자 학교 안으로 들어가 도서관 등지에서  총으로 친구, 후배, 선배를 향해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그 결과 13명이 사망하고, 24명이 다쳤다.  이들은 먼저  인종 문제로 인한 억압이나 빈부 격차의 문제가 아닌 타고난 기질인가, 부모의 양육방법이 문제인가에 대한 다양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이 책은 피해자의 보호자가 아닌 가해자의 보호자로서의 입장에서 기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어느날 갑자기 아들이 가해자가 되어 13명의 학생과 교사가 죽었고, 24명의 학생들이 심하거나 경증의 부상을 입고 장애를 겪으면서 살아가게 되었다. 아들 또한 사건 현장에서 자살을 했다. 대학 입학을 앞둔 아들이 학교에서 사건을 일으키고, 자살을 했다면 그 부모의 마음은 어떨 것인가?

 

가해자들에게 학교는 어떤 곳이었을까?

 

  ‘학교에서는 운동부 학생들 편을 들어 이들에게는 관대하게 대하는 한편 다른 학생들은 사소한 잘못에도 가혹하게 처벌한다고 불평했다. 딜런이 생각하기에 학교는 ’공평하지 않은‘ 곳이었다.’-295p

 

 ‘2011년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 연구에 따르면 전국 고등학생의 20퍼센트가 조사 전 30일 이내에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한 일이 있다고 답변했다. 소셜미디어에서 괴롭힘을 당한 학생의 비율은 더 높았다..... 괴롭힘 피해자가 자살을 생각할 확률이 다른 아이들보다 2~9배까지 높아진다..... 괴롭힘을 가하기도 하고 당하기도 하는 아이들을’괴롭힘 희생자‘라고 부르는데, 이 아이들이 처해 있는 심리적 위험이 가장 크다. 괴롭힘에 엮인 일이 없는 아이들과 비교했을 때 확연한 수치 차이가 드러난다. 공황장애 위험 14배, 우울장애 위험 5배, 자살 생각과 시도 10배로 나타났다. ’-308p

 

책에 의하면 학교는 공평하지 않은 곳으로 인식되고, 괴롭힘 희생자들이 다수 있는 곳으로 묘사된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요인이 총격사건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였을까?

 

보이고 싶은 모습만 모여주는 아이도 있다. 

 

  <학교 총격범: 위협 평가 관점>이라는 FBI 보고서에서 오툴 박사는 “아이의 말을 믿으면 위험하다며 부모들에게 행동을 관찰하라고 조언한다.  무언가 앞뒤가 맞지 않거나 설명이 안 된다고 느껴지면 괜찮다는 아이의 말에 넘어가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이 문제를 보이라고 한다.  아이에 대한 맹목적 사랑 때문에 부모는 걱정스러운 행동을 보지 못하거나 나름대로 납득하고 넘어가려고 하기 쉽다.  문제의 아이가 ‘착한 아이’이고 부모와 사이가 좋다면 더욱 그렇다.”

 

11세~15세의 형식적 조작기에 속하는 아이들은 자신이 보이기를 원하는 모습만 보여준다. 아니, 그보다 훨씬 어린아이들도 자신이 원하는 모습만 보여줄 수 있다는 실험이 있다. 

 

<폭력의 해부: 어떤 사람은 범죄자로 태어난다>의 에이드리언 레인 박사가 인용한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 있다. 아이를 방에 혼자 두고 장난감을 들여다보지 말라고 한 다음 실험자가 방에서 나간다. 아이가 들여다보는지 안 보는지가 녹화되고, 실험자가 돌아와서 보았는지 물었을 때의 반응(거짓말 또는 참말)도 기록된다. "봤니?"라고 물었을 때 아이의 반응을 본 대학생은 51%, 세관 직원은 49%, 경찰관은 41%가 정답을 맞췄다. 어른들이 아이의 반응을 보고 참인지 거짓인지 알지 못한다는 의미다. 여기에는 모든 부모도 포함된다는 말이다.  레인 박사는 "부모는 자기 아이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자기가 낳아 기른 아이라도 전혀 모르기 십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다.  안됐지만 누가 사이코패스 거짓말쟁이인지 부모도 나만큼이나 오리무중이다." -350p-

 

  수 클리볼드가 왜, 어떻게, 무엇이 내 아이가 그런 일을 저지르게 했을까를 이해하려고 했던 것의 한계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이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어른이 그걸 알아차리지 못하는 게 문제다. 심지어는 전문가(세관직원, 경찰관)도 속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엄마가 말한다. "우리만 속은 게 아니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에릭은 살해 성향의 반사회적 인격장애, 딜런은 자살성향 우울증 환자였다고 분석한다.  에릭이 우울한 딜런을 부추기는 불쏘시개 역할을 했고, 딜런은 자살의 방안으로 살인을 택했다는 것이다. 

 

 ‘이따금 나는 이러저러했더라면 이 일이 다르게 끝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몽상에 빠져들곤 한다. 그 몽상은 늘 다른 학교에서 시작한다. 그렇긴 하지만 내가 가장 크게 후회하는 점은 딜런의 내면이 정말 어떤지를 알기 위해 해야 할 무언가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309p-

 

 딜런의 엄마 수 클리볼드는 대학에서 장애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으며, 석사학위를 받을 때는 아동발달과 아동심리를 학습했다. 전문가로서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돌보았다고 자부할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사람들이 묻는다. 

"어떻게 엄마가 모를 수 있죠?" 

"아이를 안아주지 않아서 그런 거 아닌가요?"

 

가해자의 엄마는 말한다. 

"누구든 이 자리에 올 수 있다. 위중함을 과소평가했다. "

"답을 찾으려고 애쓰지 말라. 그 답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지금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가해자의 엄마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수 클리볼드는 사건이 일어난 아침 "안녕"이라고 말하고 집을 나선 아들이 많은 사람들을 죽고, 다치게 했다는 소식에 아들도  그 자리에서 죽음을 택하기를 바라야 했다고 말한다. 그녀는 아들의 사건이 있고 나서야 2년 전부터 아들이 우울증에 걸려서 상담도 받고 약을 복용해 온 사실을 알게 된다.

 

정작 아들을 잃은 슬픔보다 아들로 인해 숨지고 다친 아이들과 부모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에 죄인의 심정으로 숨어 지내야 한다는 마음을 밀어내고 힘든 마음으로 아이를 잃은 부모, 장애를 얻은 부모를 향해 편지를 쓰고, 그들을 만났다. 그리고 기나긴 재판에 시달린다. 많은 사람들이 에릭과 딜런의 부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남편 톰과 그녀는 결국 이혼했다. 유방암과 우울증, 공황장애 등으로도 시달린 그녀는 이제 우울증 조기 발견 및 자살예방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등의 일도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결과에 대한 비난과 질시만 있지 않았다. 

 

  1999년 4월 20일 총격사건이 벌어지고 딜런이 범인임이 방송에 보도되었음에도 이웃 사람들은 경찰관들이 집안을 수색하는 바람에 집 밖에서 몇 시간째 대기 중인 가족들을 위해 따뜻한 음식을 대접하고, 잠자리를 제공했으며, 수 클리볼드가 다니던 대학에서는 그녀가 계속 근무할 수 있게 배려해 주었다.  총장이 직원들에게 외부 언론과의 인터뷰를 차단하는 데 동참하도록 권고하고, 정신적으로 혼란에 빠진 수의 일을 덜어주어 그녀가 겪은 일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런 이웃과 동료들이 있었기에 그녀가 이런 책을 집필하고 출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가해자의 엄마가 보낸 편지를 받은 피해자의 아버지는 가해자를 용서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또 어떤 사람은 피해학생 13명을 위한 십자가와 가해학생 2명의 십자가를 함께 만들어 기부했다. 그들도 똑같은 '괴롭힘 피해자'로 여겼던 것이다. 

 

 

 이 책은 착잡한 심경으로 읽었다. 엄마의 마음을 헤아릴 수는 있을까? 수 클리볼드가 사건 이후 16년이 지난 시점에 이 책을 출판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부모는 어디까지 자식을 책임져야 하는가?

부모가 사랑한다고 해서 자식의 모든 것을 알고 이해할 수 있을까?

부모가 사랑한다고 매일 말했다면 아들이 그런 사건을 저지르지 않았을까?

 

자식을 키우고 가르치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공자도 자기 자식을 가르치지 않았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다고 다그치거나 의심해서도 안될 일이고 하니

그래도 속는 셈 치고 믿어줄 수밖에 없다. 

그게 부모다. 

다만

아이의 행동 너머를 들여다 보는 "따뜻한 마음"이 필요하다. 

 

"오직 한 사람일 지라도 지지자가 있었다면 달라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