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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본문
지난 주에 다녀온 <아르카북스>에서 본 <여름은 오래 그 곳에 남아>를 주말에 읽었다.
"건축은 예술이 아니다. 현실 그 자체다."라고 말하는 무라이슌스케 건축설계사무소에 입사한 1982년 여름 설계사무소 직원 13명이 가루이자와지역의 아오쿠리마을에 있는 여름별장에서 지낸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주인공 사카니시는 '현시욕과는 인연이 없는, 실질적이고 시대에 좌우되지 않는 아름다움, 디테일에는 모두 이유가 있었고, 모든 것이 최대한 합리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고 묘사한 무라이슌스케의 건축에 매료되어 더이상 신입사원을 채용하지 않는 사무소에 편지를 보내고, 임시사원으로 채용된다. 사카니시는 사무소가 참여하는 국립현대도서관의 설계에 참여하여 모형을 만들고, 가구팀에서 건축에 어울리는 가구를 연구한다.
이 책은 겉표지와 실제 책의 표지가 다르다. 실제 표지는 나무의 결을 그대로 옮긴 모양이다. 책을 싸고 있는 표지는 여름의 시원한 나무들을 배치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별장에서의 일을 실감나게 느끼도록 하고 있다.
건축 설계 사무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 건축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무라이슌스케와 호흡을 같이 하는 유럽의 건축가 아스플룬드의 건축에 대해 다루는 내용이 나온다. 아스플룬드는 자연을 스승으로 삼아서 건축을 했다고 한다. 그가 건축한 스톡홀름의 시청사, 화장지로서 세계 최초로 건립된 '숲의 묘지'에서 건축가 자신도 화장되어 묻혔다고 한다. '숲의 묘지'에는 아들을 잃고 쓴 '오늘은 당신, 내일은 나'라는 문구를 쓰려고 했으나, 결국 자신도 '숲의 묘지'에 묻힌 이후 완성된 문구는 '오늘은 나, 내일은 당신'이었다고 한다.
무라이슌스케의 애인으로 묘사되는 후자사와 기누코씨는 원예가이다. 후자사와가 들려주는 비올라 트리컬러에 대한 이야기는 비올라를 다시 보게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봄에 거리 화단에 옮겨심는 꽃 중의 하나다.
'팬지는 19세기 몇 개인가의 꽃을 교배해서 만든 꽃이다. 비올라트리컬러는 그 베이스가 되었던 야생 제비꽃으로 유럽에서는 농지나 황무지에 자생하고 있다. 영어명은 허츠이즈 heartsease 천식, 피부병에 듣는 약초다. 19세기 후반 다양한 색의 팬지가 유럽 전역에 퍼졌고, 온실이 보급된 것도 그때쯤이다. 세익스피어의 <한여름밤의 꿈>은 자는 동안에 허츠이즈 꽃즙을 눈두덩이에 떨어뜨리면 잠에서 깼을 떄 처음 본 사람을 무조건 좋아하게 되는 미약 媚藥으로 사용해서 한눈에 반한 사랑이 일으키는 희곡을 그린 것이다. '-319p-
소설의 배경이 되는 아오쿠리 마을은 가루이자와, 고모로온천, 쓰브라노, 사쿠이다라시 등의 지역과 함께 등장하는데 이 지역은 아사마산의 아래쪽에 있는 마을들이다. 아오쿠리마을도 해발 1000미터 이상으로 여름에 시원하여 별장으로 이용되는 지역이다. 이 마을은 소설가, 화가 등이 별장으로 이용하는 지역으로 반딧불이연못이 조성되어 있다. 특히 후지사와가 사는 쓰브라노는 일본인의 조상이라 일컬어지는 조몬인이 살던 기원전 13000년-기원전300년시대의 유물들이 밭에서 간간히 나온다고 소설속에 밝히고 있다. 조몬인은 삿포로 등지의 아이누족들이 이주하였으며, 처음으로 동굴에서 떠나 흙을 파서 움집을 짓고 불을 사용하여 난방을 한 것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외에도 새에 대한 소개가 여러군데 등장한다.
그 중 어치새에 대한 부분을 보자.
' 옅은 팥죽색 동체에, 날개에는 선명한 코발트블루색 무늬가 있어서 날갯짓할 때 다 눈에 들어온다. 주위를 배회하듯이 날면서 도토리를 쪼고 있다. 어치새는 까마귀만큼 머리가 좋다. 일반 공복을 채운 뒤에는 겨울을 대비해서 도토리를 모은다. 때까치는 벌레나 개구리 등의 노획물을 가지에 꽂아둔 채 내버려두는 일이 있지만, 어치새는 나무 구멍이나 뿌리 아래 틈새 등, 일정한 장소를 저장고로 삼아 겨울 동안 제대로 활용한다. "-331p-
그리고 나무 중에 계수나무가 등장한다. 계수나무는 여름별장 건물 남쪽에 위치하고 있어 모든 시선의 중심이 된다. 우리나라의 계수나무는 1900년경 일본에서 들여온 나무로 잎이 둥글고 가을에는 설탕을 달고나로 만들 때 나는 향기가 난다.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의 계수나무다. 우리 아파트에도 있는데 그늘에 심어서 위로만 자라고 단단한 맛이 없다. 나중에 집을 지으면 집앞의 화단에 심어서 봄, 가을로 변하는 계수나무를 바라봐도 좋을 듯하다.
독서와 도서관에 대한 내용도 발견한다. 왜 아이들에게 도서관이 필요한지에 대해 궁금해한다면 이 말을 해 주고 싶다. 주인공과 무리이선생이 나누는 이야기다.
'초등학교 도서관은 주위에 신경쓰지 않고 혼자 있을 수 있는 장소다. 옆에 친구가 앉아있어도 책을 읽고 있을 떄는 혼자 있는 것이나 같다. .... 혼자서 있을 수 있는 자유는 정말 중요하지. 아이들에게도 꼭같아. 책을 읽고 있는 동안은 평소에 속한 사회나 가족과 떨어져서 책의 세계에 들어가지. 그러니까 책을 읽는 것은 고독하면서 고독하지 않은거야. 아이가 그것을 스스로 발견한다면 살아가는 데 하나의 의지처가 되겠지. 독서라는 것은. 아니 도서관이라는 것은 교회와 비슷한 곳이 아닐까? 혼자 가서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장소라고 생각한다면 말이야.'-180~181p-
소설 속의 여름 프로젝트는 결국 후나야마 건축 사무소가 국립현대도서관 설계 경합에서 이긴다. 무라이선생의 뇌경색으로 인해 설계 경합 본선에 참가는 하지 못한다. '건축은 준공되고 나서 비로소 숨결이 부여된다', '건축은 예술이 아니야, 현실 그 자체지.'라는 선생의 건축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사람들과의 짧은 만남은 함께 했던 이들과의 인연으로 이어지고 30여년 후 여름별장을 구입하게 된 시점으로 이어져서 소설이 끝을 맺는다.
알고보니 건축에 대한 이야기로만 여겨서 지난 번에는 빌렸다가 못 읽고 반납했던 책이었다. 다시 빌린 책이다. 이어령선생이 영혼으로 돌아간 후 겨울에서 봄으로 기류가 바뀌는 바람이 3월 4일 금요일에 불어닥쳤다. 산불로 이어져서 울진, 삼척, 강릉까지 전국 15군데 산불이 났다. 오늘은 그 바람이 조금은 잦아들었다. 봄의 기운으로 바뀌는 중이다. 그 기류를 읽을만큼 내가 깨었는 것은 아닐터인데 토요일에는 극심하게 시달리고 일요일에는 잦아들었다. 기류가 바뀌는 게 이렇게 몸으로 느껴지기는 처음이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여름의 이야기를 읽었다. 잔잔한 삶의 이야기가 나무 향기처럼 남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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