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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로맹가리: 자기 앞의 생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2. 3. 20. 22:34

 

사람이 무얼 하기에 너무 어린 경우는 없다. 

 

 프랑스어 원제목 La vie devant soi는 ‘여생’,  즉 ‘앞으로 남은 생’을 의미한다.  작가는 열네살 모모(모하메드)가 지나온 삶이 아니라 앞으로의 이야기를 말하고 싶었던가 보다. 

 

 작가 로맹가리는 또다른 이름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했는데 이 소설은 에밀 아자르가 출간한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으로 공쿠르상을 수상했다.  이전에 로맹가리가 <하늘의 뿌리>로 공쿠르상을 받은 이후 한 사람이 같은 상을 두 번 받은 셈이다.  로맹가리는 유태인으로 러시아에서 태어나 프랑스에 자리잡고 살기까지 어머니의 헌신적인 돌봄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군으로 전쟁에 참여하는 동안 죽음을 맞이한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많은 편지를 써두었고 친구들이 편지를 부쳐주어 아들이 자신의 죽음을 모르게 하였다고 한다. 집으로 돌아와서야 어머니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기 앞의 생>은 로맹가리가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출간한 소설이다.  장소는 프랑스 파리의 뒷골목 엘리베이터도 없는 7층 아파트다. 구십오 킬로그램에 달하는 몸에 7층에 살고 있는 로자아줌마가 몸으로 먹고사는 여자들의 아이를 맡아서 기른다. 그녀 또한 몸으로 먹고 사는 일을 십오년이나 했다. 독일군에 체포되어 아우슈비츠수용소에 수용된 적이 있다. 그 공포를 안고사는 그녀는 이제 늙어서 아이를 맡아 기르는 일을 한다. 아이를 맡아서 기르면 엄마는 일을 해서 매달 얼마씩 로자 아줌마에게 돈을 보내준다.  프랑스는 법적으로 몸으로 먹고사는 여자들이 아이를 기를 수 없다. 그래서 아줌마는 경찰이 들이닥칠 것을 늘 염려한다.  그래서 모모는 경찰이 되는게 소원이다.  경찰이 가장 힘에 서 보이기 때문이다.

 

 소설의 주인공 모모는 아랍인 아이로 세살때부터 로자아줌마에게 맡겨졌다.  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학교에서는 모모를 받아주지 않는다.  모모는 젊은 시절 양탄자 장사를 했지만 이제 늙어서 카페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는 하밀할아버지에게 글도 배우고, 세상을 배운다. 하밀할아버지는 언제나 빅토르위고의 소설과 코란을 즐겨 읽는다. 빅토르위고의 소설을 손에서 떼지 않는다. 

 

 모모는 모하메드의 애칭이다. 모모의 주변에는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세네갈, 이디오피아, 알제리 등지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은 법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사회보장제도에서 나오는 연금도 받지 못한다. 

 

 모모도 예외는 아니다. 모모는 세살때 엄마가 맡기고 갔다. 알고보니 그의 엄마도 몸으로 먹고 사는 직업이었다.  아버지도 있었으나 아버지는 엄마에게 일을 시키는 포주였으며 사랑한다는 이유로 정신병을 핑계삼아 엄마를 죽인 인물이다. 모모는 "저도 제 나이를 모르는 걸요. 제 생일을 기록해놓은 사람이 없어요. 로자 아줌마는 제가 다른 아이들과 달라서 제게 맞는 나이가 없대요. 저는 계속해서 딴 애들과는 다를 수 밖에 없대요."(202p)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세월이 흘러 모모는 열네살이 되었지만 로자아줌마는 모모가 자신을 떠날까봐 두려워 나이를 속이고 계속 열살이라고 말한다. 또래보다 크지만  모모는 열살로 살아왔다. 

 

  작가는 모모가 세상의 어두운 곳을 경험하고 있음에도 주변에 선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나 보다.  이 책에는 선한 사람들이 많이 등장한다. 누구도 모모가 어리다거나 살인자의 아들이라거나 정신병자의 아들이라거나 창녀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소외시키지 않는다.  한 사람으로서 동등하게 대접한다. 그리고 모모의 말을 들어준다. 작가의 이런 시선이 작품 곳곳에 담겨있다. 

 

'로자 아줌마가 상태가 악화된 이후 우리에게 호의를 베푸는 이웃들이 적지 않았다. 자움씨네 맏형이 우리에게 밀가루 일킬로, 기름, 완자튀김용 고기를 가져온 다음날이었다.'-219p-

'하밀할아버지가 하루종일 카페에 앉아 있다가 가게문을 닫을 때가 되면 건너편 건물에 살고 있는 할라우이 부인이 와서 할아버지를 데려다가 잠자리에 누이곤 했다. 그녀도 혼자 살고 있었다. -203p-

'하밀할아버지가 필요할 때 '오줌'이라고 말하면, 일이 벌어지기 전에 카페주인 드리스 씨가 그의 팔꿈치를 붙잡고 부축해서 화장실로 데려갔다,-205p-

'헤비금 챔피언이었으나 이제는 여장남자로 살아가는 롤라아줌마는 자기가 엉덩이로 번 돈을 수시로 나눠주었다.'

'자움씨네 형제 네사람은 로자 아줌마를 피아노처럼 번쩍 들고 층계를 내려가 자기네 차에 태우고 마른 강가로 가서 맑은 공기를 마시게 해주었다. -198p-

 

그러나 작가는 프랑스와 사회에 대해서는 반감을 많이 가지고 있다. 신에 대해서도 자신의 불만을 자연스럽게 표출한다. 

유태인, 아랍인, 아프리카인등 사회의 약자들로만 이루어진 거리에서 살고있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눈길을 가진 사람이라면 사회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안쓰러움과 더불어 사회에 대한 반감도 자연스럽게 가지게 될 것이다. 

 

 ' 조물주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잘 만든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조물주는 아무에게나 무슨 일이든 일어나게 하는가 하면, 자기가 하는 일은 무엇인지조차 모르기도 한다.  꽃이며 새를 만들기도 하지만 이젠 칠층에서 내려가지도 못하는 유태인 노파를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193p-

  '병원에 갔다 하면 아무리 아파서 죽을 지경이라 해도 안락사를 시켜주지 않고 주삿바늘 찌를 살덩이가 남아 있으면 언제까지고 억지로 살아 있게 한다는 것을 이 동네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었다. 최후의 결정은 의학이 하는 것이고, 의학은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끝까지 막으려 한다는 것을.'-262p-

 

 모모는 병원에 가기를 극도로 거부하는 로자아줌마가 자신이 마련한 지하의 동굴에서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돕고, 자신도 함께 거기 머문다.  시체가 썩는 것을 어쩌지 못하지만 죽은 얼굴에 계속 분칠을 하고, 향수를 사다가 냄새를 막아보려고 애쓴다. 이제 모모에게는 로자아줌마는 없고, 부서진 우산으로 만든 아르튀르만 남았다. 혼자 남게 된 모모는 당분간 라딘 아줌마와 라몽의사네서 아이들과 지내게 되었다.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 것인가는 독자의 상상력에 맡겨둔다. 

 

"할아버지, 사람이 사랑없이 살 수 있어요?" 모모가 하밀할아버지에게 물었다. 이제 할아버지는 노망이 나서 더이상 말하지 못한다. 모모는 스스로 답을 찾았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없이는 살 수 없다. "

 

 이 책은 거리 뒷골목의 누구도 알고 싶지 않은 이야기, 누구나 알 수 없는 이야기다. 주인공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고 있다. 이데올로기로 덮여진 세상이 아니라 ㅂ러거벗겨진 모습의 세상이다.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모습도 있다. 그러나 차갑지 않다. 사람이 희망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사람이 희망인 세상이지만 물질 만능의 세상인지라 소설 속의 따뜻한 인정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미국 다음으로 신자유주의가 넘치는 한국에 살고 있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프랑스 파리에는 아직도 이런 인정이 남아있는 모양이다. 

 

 이 작품을 흐르는 중요한 내용이 '사람이 사랑없이는  살 수 없다.'라면 나는 이 작품을 읽는 내내 어린 아이가 겪어야 하는 세상의 내밀한 부분에 눈길을 빼앗긴다. 하밀 할아버지의 말이 그것이다. 

'사람이 무얼 하기에 너무 어린 경우는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