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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우리는 왜 어른이 되지 못하는가>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0. 12. 7. 13:16

    수평적 권위를 제안한다! 벨기에 학자에게서 발견한 우리 사회의 모습과 새로운 방향

  파울 페르하에허는 벨기에 헨트 대학교 교수, 임상심리학자, 정신분석학자이다. <고독한 시대의 사랑>는 학술서임에도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고, <정상성과 장애들에 관하여>의 영어판은 괴테상을 수상하였다. 주로 사회변화가 심리적, 정신의학적 문제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을 두고 연구와 저술활동을 해 오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 가는가>도 여러 나라에 번역되어 읽히고 있다.

  비행기와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지구는 하나의 네트워크로 형성되었다. 그 결과 신자유주의의 물결 아래 모이게 되었다. 즉, 신자유주의가 통일을 이룬 것이다. 사전적 의미로 신자유주의는 '국가권력의 시장개입을 비판하고 시장의 기능과 민간의 자유로운 활동을 중시하는 이론'이다.  자유시장과 규제완화, 재산권을 중시하는 신자유주의는 개인의 삶의 모습들을 바꾸어 놓았다.

   1950년 한국전쟁 이후 70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는 세계 여러 나라와의 무역을 통해 급격한 성공을 거둔 나라로 인정받고 있다. 그 성장의 그림자 이면에는 특정 연령이 아닌 다양한 연령대의 자살률 세계 1위라는 오명을 갖고 있기도 하다. 특히 201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학교폭력이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고, 가족 간의 다툼이 인터넷 뉴스에 거의 매일 오르다시피 하고 있다. 

   왜 우리 주변에 어른다운 어른이 없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100세 시대를 맞이하여 젊게 사는 사람이 칭송받고, '어려 보여요, 젊어 보인다'는 말을 좋아하는 사람은 있어도 '어른스럽다, 존경스럽다.'는 사람은 드문 세상이 되었고,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충고를 하거나 조언을 하면 '꼰대'로 인식되기 때문에 아무도 바른말을 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학교에서도 학생의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이 없다. 체벌은 법으로 금지되었고, 교사는 학생을 말로 가르쳐야 하니 학생이 교사의 교육을 받는 것을 거부하여도 억지로 강요하지 못한다. 그러니 학생들은 방치당한다.  가정에서도 칭찬 육아로 대체되면서 아이들은 교육에서 방치당하고 있다.

 

  1925년 프로이트는 미래를 예견하는 위트있는 글을 남겼다. 이 세상에는 불가능한 직업이 있는데 바로 교육하는 일, 치료하는 일, 통치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일을 하는 사람인 아버지, 의사, 정치인은 프로이트가 살던 시대에는 모두 남성을 가리켰다. -p86 요즘 강사들은 학생보다 크게 말하기 위해 마이크 볼륨을 높여야 하고, 환자는 이 의사 저의사 찾아다니는 닥터쇼핑을 하고, 정치인이 하는 말을 그대로 믿는 사람은 없다. -p86,100

  남성 위주의 가부장제가 가졌던 권위가 더이상 버틸 힘을 잃은 것이다. 가부장제 하에서의 아버지는 권력이고, 그 권력은 법이고 질서였다. 산업화 이후 일자리가 증가하면서 여성은 가정에서 일터로 이동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가정에서의 가부장적인 권력과 같은 막강한 권위는 상실되었다. 여성의 참정권, 고학력, 직장에서의 승진 , 사회참여는 이러한 가부장적인 기존의 방식이 아닌 여성의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저자가 제시하는 해법은 권위의 회복이다. 권위는 차이와 거리에 의해 만들어진다.

   이 책에서는 어떻게 권위의 원천이 변화하였는가? 무너진 가부장적 권위의 자리에 새로운 권위가 필요하는 점과 그 권위의 구성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를 제시하고 있다. 저자가 설명하는 사회의 변화에 공감하며 새로운 권위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크게 공감한다. 교육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양육과 교육하는 과정에서 발생되는 권위의 부재로 인한 문제점과 그를 해결하기 위해 제시하는 대안은 사회에 적합하다고 본다.

   학생을 적극적으로 지도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절망에 빠진 학교와 교사는 아동심리학자에게서 해답을 찾는다. 아동심리학자는 반박할 수 없는 해법을 제시한다. 학교는 사이버 상담실의 역할을 하게 된다. 더 나아가 교실은 심리진단센터가 된다. 매년 치과검진을 받듯이 매년 정신검진을 받기를 홍보하는 전단지가 발행된다. 학교와 부모는 과학자들에게 순순히 그들의 자리를 내주고 있다. 그들은 새로운 권위자가 된다. -p208 우리나라도 매년 정신과 치료를 받는 학생들이 증가하고 있다. 약물치료를 받는 학생도 있다. 공부에 내몰리는 아이들이 학교, 학원 이외에 가야 할 곳이 하나 더 늘은 셈이다. 바로 심리상담센터이다. -p312 성인도 마찬가지다. 전쟁터와 같은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상담을 받고 다시 전쟁터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부모가 자녀를 ‘친구’, ‘남자 대 남자’로 이야기하는 건 부모와의 관계가 평등하다는 착각을 준다. 사춘기 아이들은 이 상황에서 재빠르게 주도권을 잡으려 할 것이고, 그 결과 갈등이 반복될 것이다. 부모가 자녀를 두려워하게 되고, 교사도 정신, 물리적 학대를 두려워하게 된다. 순수 권력이 실패하는 이유는 무조건적인 복종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권위는 미래에 일어날 자발적 복종에 초점을 두며 특정 인물에게만 달려있지도 않다. 권위는 설득을 통해 작용하지 않는다. 개인의 권위는 행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집단의 권위가 필요하다. 이 때의 집단은 폐쇄된 집단이 아니라 문제 해결을 위해 의식적으로 선별된 사람들(부모, 교사, 스포츠팀 코치, 친구들, 같은 반 아이들 등)이 들어오거나 나갈 수 있는 집단이란 뜻이다. 어떤 사람들(대부분 부모)는 매우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집단으로서 행동하려는 적극성은 대부분 이들로부터 나온다. -p217

   저자가 교육을 위해 제시하는 방법으로 먼저 통제 대신에 ‘예의 주시해 보살피기’를 제시한다. 새로운 권위는 네트워크에 근거한다. 우리는 문제 해결을 위해 우리보다 위에 있는 사람(교장)이 아니라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호소한다.-p222 또, 집단과 공유하기:투명성에 대해 말한다. 부모가 다른 어른들과 의기투합할 목적으로 가능한 빨리 문제를 터놓는 것이다. 몰래 처리하던 문제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은, 라캉이 지배자의 감정이라고 말한 수치심을 유발한다. 아무리 민망하다 한들 수치심이 죄책감 보다 낫다. -p224 집단의 권위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꼭 넘어야 하는 문턱이 있다. 바로 피할 수 없는 대립의 순간이다. 양육과 교육에서 대립을 피하고 있다. 전통적 권위가 사라지면서 대립은 힘겨루기로 축소되었다. 힘겨루기는 승자와 패자가 생긴다. 패자가 복수를 다짐하면 언젠가 대립이 다시 생기는 건 시간문제다. 대립의 해소는 아이의 동의(복종)에 달린 것이 아니라, 어른이 보이는 일관성과 함께 집단이 아이를 충분히 지지하고 있음을 아이 스스로 깨달을 때 비로소 일어난다.-p225

 

   저자가 <우리는 왜 어른이 되지 못하는가> 이 책에서 제시하는 대안은 두 가지다.

첫째, 수평적 경영이다. 브라질 출신 CEO 리카르도 세믈러는 핵심 개념으로 신뢰, 투명성, 자기조직화, 세포형 생산조직, 분할과 성장, 협의를 꼽는다.

둘째, 공유와 공유경제다. 공동의 이익이라는 맥락에서 자신들의 안녕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공동의 이익을 위해 지속 가능한 해법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제목에서의 끌림으로 책을 읽다 보니 사회과학과 교육, 철학, 역사, 심리학 등을 넘나드는 저자의 통찰이 지적인 즐거움을 함께 준다. (-추천사, 하지현, 정신의학과 전문의) 이제 교육은 하나의 영역이 아니라 사회를 반영하고, 세계 경제 사조를 반영하고, 역사를 반영한다. 그러니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은 철학, 역사, 심리학, 사회과학 등 그 학문의 범주를 넓혀나가야 한다.  같은 일을 하는데 왜 일이 점점 힘든지 궁금할 때, 육아가 고스란히 개인의 몫이고, 여자의 몫이라고 느껴질 때, 왜 아이들을 가르치기가 점점 힘든가를 느끼는 선생님들이 읽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