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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0. 12. 27. 22:56

-풍요의 시대 라는데, 우리는 왜  살기가 힘든가?-

 

  저자 파울하에허(Paul Verhaeghe)는 벨기에 헨트 대학의 교수, 임상심리학자, 정신분석학자이다. 임상 활동을 통해 평소 생각했던 말들을 책으로 펴냈다.  그의 물음은 왕따에서 시작한다. 근로자의 10-15퍼센트가 왕따를 당한다고 한다. 보수진영에서는 규범과 가치의 실종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정신의학분야에서는 범죄를 장애라고 말한다. 인간의 본성에서 이유를 찾는 사람들은 사회심리학자다. 이들의 말에 의하면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다. 이 말은 나치 친위대 고위 장교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ann)의 재판을 지켜보고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로 인간의 본성 속에 악이 숨어 있다는 관념을 밝힌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기독교의 원죄성과도 연결되며 현대적 해석에 따르면 "이기적 유전자"다. 저자 파울하에허는 여기서 한걸음 나아가 타고난 정체성은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의 변화는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한다. 신자유주의 조직이 자신의 몸은 물론, 파트너, 동료, 자식 등 우리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모든 이들과 관계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p8, 서문

 

 -불이익에는 민감하고, 불의에는 외면한다.-

 

요즘 현대인들을 정확하게 정의하는 말을 발견했다. 특히, 한국 사회는  한국전쟁이후 급격한 성장을 이루어내면서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 냈지만. 지속적인 경쟁 속에서 사람들은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경제 격차는 점점 심해져지고, 너나없이 부동산을 부의 축적 수단으로 삼으면서도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부를 쌓으려고만 혈안이 되어 있다. 교육은 부를 쌓으려는 수단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또, 부모의 권력과 부를 이용하여 자식의 대학과 취업을 대물림하는 사람들까지도 생겨나고 있지만 이들은 자신의 불의에는 둔하고, 타인의 불의에는 민감하다. 왜 이런 사회적 현상이 우리나라에 나타나고 있는지 궁금했다.  시스템의 문제인지? 정치가 문제인지? 돈이 문제인지?  우리나라만 그런 것인지? 나와 같은 질문은 가진 학자가 있다는 게 반갑다.  다만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내 잘못도 아니다. 환경이 나를 이기적 인간으로 만든 것이라고 말한다.  즉, 나의 뇌는 나의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 책은 우리 사회의 변화에 궁금증을 느끼는 분, 이 흐름이 이제 변곡점을 그리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전환점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는 분들이 읽으시기를 권한다.

 

  요즘 사람들은 유전자와 뇌가 거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우리 자신의 특성까지 결정한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우리 뇌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소위 신경 가소성(plasticity)이다. 즉, 우리에겐 특정 요인의 영향을 받으면 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 과정에서 주변환경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는 뇌(조금 더 넓게 보아 유전자, 신경, 호르몬의 기초)와 우리 환경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이 낳은 결과이다. '우리는 신체와 주변 환경의 상호작용이 낳은 결과'인 것이다. -p27

 

   1부 정체성 형성 과정이 달라졌다-에서는 정체성이 왜 외부에서 온다고 보는지, 그것이 얼마나 인간관계 혹은(넓은 의미에서) 문화의 영향을 받는지를 설명했다. 구범과 가치는 항상 정체성 및 사회관계와 연관돼 있다. 2장에서는 윤리와 그것의 역사를 조명했다. 기독교의 영향으로 윤리는 인간 바깥에 있는 존재가 설정한 심급으로 변했다. 이 절대자는 우리가 근본적으로 나쁜 존재이고 선은 내세에서나 얻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발송한다. 물론 내세에서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더구나 인간은 늘 심판대에 올라 있다. 신은 어디에나 있고, 인간은 결코 자신이 충분히 잘하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 3장의 주제는 학문(과학)이었다. 계몽주의는 아주 중요한 새로운 견해를 발전시켰다. 변화가 가능하며, 사회는 만들 수 있지만, 이 모든 과정을 밟아가는 인간은 매우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견해 말이다. -p110

  2부 우리의 가장 나쁜 측면을 장려하는 사회-에서는 신자유주의의 특성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한다.  과거에는 경제가 종교, 윤리, 사회의 조직들로 이루어진 전체 조직에 끼어 들어가 있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에선 윤리와 사회가 '시장'에 복종한다. 이런 의미에서 신자유주의는 단순한 경제 이론으로 그치지 않는 훨씬 더 포괄적인 이데올로기이다. -p155 사회진화론은 신자유주의의 능력주의와 함께 적자 생존을 목표로 한다. 최고에게 상을 주고, 나머지는 추려낸다. 적자는 '자연적 우월성'에 기초를 둔다. 여성에 대한 남성의 우월성, 세상에 대한 백인의 우월성이 등장했다. 이전 사회에서는 정치, 종교, 문화, 경제가 다소 동등하게 공존했으나 지금 전 인류에게 강요된 단 하나의 현실은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이다. 이것이 이상적 인간의 성품까지도 결정한다. 이상적 인간이란 최고의 생산성을 갖춘 남자 혹은 여자이다.  -p163 지식공장이 된 대학, 건강 기업이 된 병원 , 공동체의 윤리가 사라진 곳에 계약서가 들어서다, 개인과 조직 간의 부정적 사이클, 무기력한 자유로움, 장애를 대량 생산하는 사회 등은 저자가 현실사회를 명징하게 묘사하고 있다.

 

  저자는 좋은 삶-을 이렇게 제시한다.

 

  정체성의 발달은 두 가지 기본 방향, 즉, 타인과 하나가 되고 싶은 욕망과 자율을 지향하는 욕망에 의해 결정된다. -p278 공동체 의식이 실종되고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부상한 주요 원인은 사람들을 체계적으로 서로 반목하게 하고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오늘날의 경제모델이다. 따라서 동일성과 차이, 공동체 의식과 자율성의 균형을 되찾고 싶다면 오늘날의 노동환경을 바꾸고 경제를 다르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p279   사회는 동일성과 차이, 공동체와 개인의 균형이 유지될 때 제 기능을 다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요인이 권위와 함께 권위가 행사되는 방식이다. 그런데 신자유주의, 디지털화, 숫자에 대한 불합리한 맹신이 어우러지면서 이중효과가 발생한다. 우리는 규제가 심한 사회에 살고 있지만 아무리 찾아도 권위는 없다. 강제와 규제는 자고 나면 생기는 온갖 새로운 규정과 사방에 깔린 CCTV에서 나온다. 권위의 부재는 권력을 행사할 준비가 돼 있고 용기가 있는 우리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직무담당자를 찾기 힘들다는 사실에서 실감한다. 바람직한 지도자는 시대마다 다르다. 고대에는 자기 인식과 자제력을 갖춘 인물이었다면, 중세에는 신의 계명을 실천하기 위해 신의 부름을 받은 자였다. 고대와 기독교 시대에는 시선이 내세를 향했다. 현대에는 국민의 대변인을 바람직한 지도자라 할 수 있다 권위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의심이 생기고 권위의 의미가 변하기 시작하였다. 권위적 체제는 독재와 동의어로 인식된다 사제, 교사, 정치인, 지도자 등 정통적인 권위의 의미는 거친 폭력이라는 뜻으로 변하고 말았다. 그러나 권위에 대해 양가성을 지닌다. 권력을 의심하고 있으나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 줄 강한 지도자는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P282

효율성과 행복을 모두 고려한 노동환경을 제시하면서 저자는 탈진증후군 연구결과를 통해 직장생활에서의 우울증은 힘든 노동이나 과도한 노동 부담보다는 노동환경 특히 인간관계와 관계가 깊다는 것을 언급한다.  상호존중과 인정의 결핍이 탈진 증후군의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꼽는다. 또 보너스, 외적 동기 부여보다는 자율성과 장인의 기술의 연관성을 언급하면서 내적 동기 부여를 방법으로 제시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방안은 "우리가 변하는 수 밖에 없다."이다. 대중에 영합한 자들은 타락한 지도층에게 죄를 묻고, 지식인들은 시스템에, 정치가와 경제학자들은 '시장'에 책임을 돌린다. 모두 내 탓은 아니다. 나는 피해자일 뿐이다 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제언한다. 

 첫째, 냉소주의를 버려야 한다. TINA(There Is No Alternative) 대안이 없다는 동화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기주의 경쟁의식, 공격성은 당연히 인간의 타고난 본성이다. 악의 평범성은 현실이다.  하지만 이타주의, 협력의지, 연대감, 선의 평범함도 인간의 본성이며, 이중 어떤 특징이 주도권을 잡느냐는 환경이 결정한다. -p298

둘째, 소비자에 머물지 않고 시민이 되어야 한다. 정치가에게 공익을 실천할 의무가 있다면 우리 역시 공익을 개인의 이익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러자면 물질을 포기하고, 다시금 새로운 윤리를 키워나가야 한다. 이 윤리는 항상 자율과 연대, 개인과 집단의 균형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p299 

 

  이 책은 심리학, 경제학, 역사, 정신분석학을 꿰뚫어 하나의 주제로 엮어낸 저자의 오랜 역작이다. 저자만이 아니라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의 고민이 모여 새로운 사회로의 시작점이 되기를 바란다.

  "도대체 요즘엔 왜 이렇게 싸이코가 많을까?"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라는데 , 우리는 왜 이렇게 살기가 힘든가?"를 묻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한 저자가 반갑고, 그의 설득과 해석이 명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