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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 달 너머로 달리는 말> 서평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1. 1. 8. 20:20

 순간에서 영원으로 이어지는 말과 사람의 이야기

 

  작가 김훈은  <칼의 노래(2001)>, <강산무진(2006)>, <남한산성(2007)> 등 장편소설과 단편소설, 에세이집을 발표하였다.  컴퓨터가 아닌 원고지에 손으로 소설을 쓰는 것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그의 짧고 명쾌한 글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작가로서의 새로운 글의 지평을 연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제목에서 알 수 있다시피 이 소설의 주인공은 말이다.  첫 문장도 "저녁에 말들은 소리를 내지 않았다. "로 시작한다.  그의 소설에서 인간은 유한한 생물이다. 그 한계가 너무나 자명하여 대로 허무주의에 가 닿기도 한다. 인간은 자연 속에서 벗어날 수 없음이 그의 글의 중심이다. 작가의 글 속에서는 늙음, 질병, 형벌, 죽음이 소재가 되고 각종 생리현상인 똥, 오줌이 자주 등장한다.  이번에는 말(馬)이다.  그는 수년 전에 미국의 인디언 마을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때 떼를 지어 달리는 말이 마치 한 마리가 달리는 것처럼 보였으며, 그때 말을 소재로 글을 쓰리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말은 야백(夜白)과 토하(吐霞)다.  야백은 달릴 때 핏줄이 터져 피보라를 일으키는 비혈마(飛血馬)의 혈통을 가진 말이다. 토하는 초승달을 향해 밤새도록 달려가는 신월마(新越馬)다. 두 말은 초와 단의 장수를 태우고 전쟁터를 누빈다. 이들은 전쟁의 참혹한 현장을 목격한다. 야백은 장수를 잃고, 인간이 채운 재갈을 스스로 끊고 자유로운 몸이 되어 홀로 배회하다 월이라는 지역에 머물다가 죽음을 앞두고 토하를 만난다. 이들은 단 한번 새벽에 만난 몸의 기억으로 서로를 기억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은 초나라 왕 목(木), 초나라 왕자 표, 연(然), 단나라 변방에서 최초로 말타기를 터득한 추, 추의 딸 요(姚, 단나라 왕 칭(秤) 등 모두 한 글자의 이름을 갖는다. 그러나 말은 총총, 야백, 토하, 청적, 유생 등 두 글자의 이름을 갖는다.  글자 수의 차이는 작가의 의도된 표현이라 생각된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작가는 초나라의 <시원기>와 단나라의 <단사>를 기반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멍석을 펼친다. 그의 이야기는 지도에 자세히 설명된다.  '나는 초원과 산맥에 흩어진 이야기의 조각들을 짜 맞추었다.'-p.43

<달 너머로 달리는 말>의 이야기의 마당-나하(강)을 사이에 두고 단나라와 초나라의 싸움과 사람과 말의 이야기

 나하강을 가운데에 두고 초원에 자리를 잡은 초나라는  마을을 중심으로 사방 수백 리에 아무런 건조물이 없이 초원이 펼쳐지고 그 너머로 해와 달이 뜨고 졌다. 초나라 사람들은 눈에 걸리적거리는 것이 없는 풍광을 아름답게 여겼다. 초원은 아득하고, 먼 것들이 희미해서 초나라 아이들은 눈매가 사나웠다. -p.15  단은 북쪽 얼음 벌판을 건너오는 바람을 산맥이 걸러내서 강남은 비바람이 순했다. 여름은 서늘했고, 겨울은 따스했으며 들풀이 부드러워서 마소들은 먹이를 사람들에게 기대지 않았다. -p.30

 

  초나라의 돈몰(旽沒)의 풍습의 묘사는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마치 <영화 미드소마>에서 72세가 되는 노인들이 죽음을 선택하고 절벽 위에서 뛰어내리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미드소마의 주인공들은 인생을 윤회의 한 장면이라고 생각하여 태어나고 죽음을 순리로 받아들인다. 그 죽음의 모습이 돈몰의 풍습에 오버랩된다. 늙은이가 젊은이를 낳았으나 늙은이는 누구의 부모도 아니었다. 늙은이들은 목소리를 낮추어서 수군거리다가 그믐달 뜨는 새벽에 나하 강가에 모여 쪽배를 타고 하류로 내려갔다. 젊은이들은 늙은이들의 수군거림을 눈치챗지만 아는 척하지 않았다. 젊은이들은 나루터에 목선 한 척을 매놓고 말린 양고기와 끓인 말 피를 몇 덩이 실어놓았다. 배에 오를 때 늙은이들은 아무런 짐도 지니지 않았다. 늙은이들의 움직임에서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초나라 늙은이들이 탄 배가 명도(溟島)라고 <시원기>는 전한다.  새별에 늙은이들이 강물을 따라 사라지는 풍속을 돈몰(旽沒)이라고 적었다. 늙은이들이 탄 배가 명도에 닿았을 때 늙은이들은 모두 배 안에서 죽고, 썩은 살점은 새들이 뜯어먹었다..... 하류로 흘러간 늙은이들은 돌아오지 않았고, 젊은이들은 돈몰한 늙은이들의 뒷일을 말하지 않았다. -p.14.

 

 말에 대한 묘사들은 김훈 작가 특유의 짧고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이 적확하다. 

산맥위로 초승달이 오르면 말 무리는 달 쪽으로 달려갔다. 밤은 파랬고, 신생하는 달의 풋내가 초원에 가득 찼다.-p.48

비혈마의 무리는 먹지 않고 하루에 삼백리를 달렸다.  달리기는 숨쉬기와 같아서 비혈마는 헐떡이지 않았고 멈추지 않았다. 달리는 힘이 전신으로 솓구 쳐 오를 때 비혈마의 피는 거칠게 흘렀다. 목에서 머리로 올라가는 핏줄이 밖으로 터져서 핏방울이 바람에 흩어졌다. 피를 날리면서 비혈마는 밤새도록 달렸다. -72

토하는 혓바닥으로 빈자리를 더듬었다. 이빨은 없고 잇몸만 느껴졌다. 여기가 사람과 말이 만나는 자리로구나...이 작은 빈 자리가 ... 토하는 말로 태어난 운명을 혓바닥으로 느꼈다. -82

 

 <달 너머로 달리는 말>을 펴낸 작가와의 인터뷰를 보았다. 그는 국경을 맞댄 나라들의 싸움의 역사와 근원을 알 수없는 싸움 그 너머를 생각하면서 이 글을 썼다고 말한다. 그의 말을 옮겨 본다. "코로나19가 1년여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을 보면서 바이러스를 인간이 박멸할 수도, 추적할 수도 없음을 알게 된다. 연대하여 이겨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각 나라는 배타적 국가주의에 빠져 있다. 위기에 인간의 밑바탕이 드러나는 것처럼 나라의 논질도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약육강식이다. 우리나라 헌법정신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원리를 근간으로 한다. 그러나 이 두 원리는 평화적 공존이 어렵다. 약육강식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가난하게, 불편하게, 덜 재미있게, 고통스러운 시대를 살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러나 그 고통은 한쪽으로 기울면 안 된다. 정치인들은 그 고통의 양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이다. 헌법에 '고위 공직자는 집을 여러 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지 않다. 그런데 고위공직자들이 '시장경제에 어긋나고 헌법정신에 위배된다.'라고 말하면서 다주택 규제를 거부하고 있다. 그러면 고위공직에서 내려와라. 자유인으로 살아라. 다주택자들은 남을 지도하지 말라.' 산업재해, 배달노동자 등 약자를 위한 운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데 어느 정도 기여하고 있다."

 글을 마친 후에 쓴 그의 글이 그 마음을 말해 준다. 

세상을 지워버리고 싶은 충동이 내 마음 깊은 곳에 서식하고 있었던 모양인데 이 책은 그 답답함의 소산이다. 세상을 지우면 빈 자리가 드러날 테지만, 지우개로 뭉갤 수는 없어서 나는 갈팡질팡하였다. -뒤에

 

 신화에 가까운 이 글은 작가의 순수한 창작에 기대어 탄생한 소설로 새해 벽두에 읽기에 적당하다. 김훈 작가의 글은 허무주의에 닿아 있어서 큰 바람 구멍을 가슴에 만들어 놓기도 한다. 그러나 '책은 도끼다'라는 말처럼 크게 울림을 주고 그 울림이 오래도록 가슴과 머리를 오가면서 남아있다. 이 글은 정치인들의 편 가르기와 삶의 질척거림에 지친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끝이 없는 초원을 달리는 한 떼의 말들이 한 마리처럼 보이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