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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야기 하지 않고, 기록만 남긴다 본문
요즘 병원에 가보면 의사 선생님이 환자보다 컴퓨터 화면을 더 오래 보는 일이 많다. 괜히 말을 잘못했다가 오해라도 살까 봐, 대화보다는 검사를 먼저 권하는 게 더 안전하게 느껴지는 분위기다. 진짜 필요한 건 말 한마디, 마음을 주고받는 시간이지만 말이다.
학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선생님들은 학생과 나눈 대화가 녹음돼서 민원이 될까 봐 말을 아끼게 되고, 학부모는 아이가 무슨 말을 들었는지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려고 한다. 서로 믿지 못하니까 더 조심하게 되고, 조심하다 보니 대화 자체가 줄어든다.
편리함 속에 가려진 거리감
디지털 기기 덕분에 우리는 편리함을 누리고 있다. 문자, 메신저, 공지 앱… 손가락 몇 번이면 필요한 말은 다 전할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간단해질수록, 정작 마음을 나누는 일은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배달앱이 생겼을 때 전화를 해서 "여보세요. 여기 108동 202호 인데요. 불고기 피자하고, 제로콜라, 피클은 두개로 갖다 주세요."라고 말하기가 어려우니 문자로 하고 싶은 마음에서 다들 반겼다. 거기다 1만원씩 쿠폰을 몇 번씩이나 주었기 때문에 우리는 배달앱에 익숙해졌다. 그 대신 배달비용이 추가되기 시작했고, 비오는 날은 배달비 1만원이 비싸다 아니다로 논쟁을 했다. 이제 배달비 부담으로 앱을 탈퇴하는 가게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정상적인 절차가 아닌가 한다.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다. 앱이 없었어도 음식 배달은 되었는데 앱이 끼어들기 시작하면서 심지어는 홀비(hall費, 음식점에서 먹는 비용)라는 말도 생겨나게 되었다.
병원에서는 모니터가 의사와 환자의 사이에 자리해 있다. 의사는 환자를 보지 않고 모니터를 보고 말한다. 감기가 걸려서 병원에 가도 청진기를 대지 않고, 간호사가 체온계로 체온을 재고 "37도 5부요,"라고 말한다. 그러면 의사는 해열제를 처방전에 추가한다. MRI, MRA, CT, 내시경 등의 검사 결과가 환자 이야기를 대신하니 의사와 환자의 면담은 채 1분은 넘기지 않는다. 학교에서는 알림장 앱이 아이의 하루를 설명해버린다. 학부모와 교사와의 전화는 단절되었다. 전화번호를 공개하기 꺼리는 교사는 전화기를 두 개 가지고 있거나 앱을 통하지 않고는 본인의 전화기로 학부모에게 전화를 하지 않는다. 학부모의 민원이 두렵기 때문이다. 앱이 가운데서 자리 잡으면서 그렇게 사람과 사람이 마주 앉아 나누는 ‘이야기’는 점점 뒷전으로 밀려난다.
진심이 빠진 소통은 관계를 지키기 어렵다
물론 기술을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문제는, 그 기술에만 기대다 보면 결국 중요한 걸 놓치게 된다는 거다. 말은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마음을 나누는 방식인데, 그게 빠진 대화는 자꾸 오해를 만들고, 마음을 멀어지게 만든다. 그래서 중요한 이야기는 직접 만나서, 아니면 최소한 목소리로라도 나누는 게 좋다. 눈빛이 닿고, 표정이 보이고, 숨결이 전해지는 그런 대화가 우리에게는 여전히 필요하다.
나는 전화로 불편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에게 당장 만나서 이야기 하라고 권한다. 그리고 오늘을 넘기지 말라고 덧붙인다. 오늘을 넘기면 내일 또 그 불편한 감정을 계속 가지고 지내야 한다. 사람의 일이란 말로 해서 풀어지지 않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러니 관계를 이어가려면 만나야 한다. 만약 관계를 이어가지 않으려면 만나지 않으면 된다.
대화가 다시 자연스러워지는 날을
요즘 우리는 무언가를 ‘남기기’ 위해 말한다. 기록에 남겨두고, 증거를 만들어놓고, 나중에 보여줄 수 있도록. 하지만 그런 말은 관계를 쌓아주지 않는다. 오히려 벽을 만든다. 이야기 하는 그 사람의 눈빛을 바라봐 주고 공감해 주고 고개를 끄덕여주고 "그러게, 정말? 잘했다......."라고 말해주는 사람을 보면 쌓였던 벽도 허물어진다. 미운 사람도 48시간 같이 지내고, 대화를 나누고 밥을 같이 먹다보면 그 마음이 풀리고 공감의 형태로 돌아선다고 한다. 그러니 만나야 한다.
기록보다 더 중요한 건 이야기다. 웃음이 섞이고, 망설임도 있고, 감정이 담긴 대화. 그렇게 마음을 전하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다시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이 글도 한 편의 작은 이야기로 남겨두려 한다. 누군가에게는 ‘기록’이 아니라, 가볍게 떠오르는 ‘생각의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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