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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9. 14. 본문
스위스 루체른에 가면 '빈사의 사자상'이 있다고 한다.
빈사(瀕死)는 거의 죽게 된 상태를 일컫는 말이다. 창을 맞고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사자의 모습이 바위벽에 조각되어 있다. 이 사자는 루이 16세를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바친 스위스 용병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난 때에 왕궁으로 혁명군과 시민이 돌진해 오자 친위대는 달아나고 900여 명의 스위스 용병만 남아서 프랑스 왕 루이 16세를 지켰다. 700여명은 죽고, 300여명은 살아남아서 옥에 갇히고, 나중에 나폴레옹 군대에 합류한 사람도 있다고 한다. 유럽의 각국에서 후원금을 받아서 조각상이 만들어졌다.
그 중 살아남은 스위스 용병에게 이유를 묻자 그 대답은 이랬다.
"우리가 왕과 맺은 약속을 저버리고 도망친다면 우리의 후손들은 앞으로 아무도 용병으로 일하지 못할 것이다. " 스위스는 척박한 지형 조건을 가진 나라다. 지금이야 시계, 정밀 기계로 유명한 나라지만 산업 사회 이전만 해도 가난한 백성들은 대부분 남자들이 외국에 용병으로 나가서 일한 대가로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자신의 목숨이 소중한 것보다 먼저 후손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을 걱정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그래서 신의를 지키기 위해 남아서 외국의 왕을 지키기 위해 죽어가야 했던 스위스 용병을 사자에 비유한 작품은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는 명소라고 한다.
1952년 즉위하여 70년간 영국을 다스렸던 엘리자베스2세가 2022. 9. 8. 세상을 떠났다. 넷플릭스에 '더 크라운'이 3부작으로 올라와 있어서 두 번째 보는 중이다.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영국에서 왕권을 인정하고 여왕의 재가를 받아 총리가 나라를 다스리는 정치는 어떤 면에서는 매우 합리적이게 보인다. 왕정주의와 민주주의의 모순을 지혜롭게 해결해 나가는 방법을 영국은 지난 70년간 보여준 셈이다. 의회에서 다수당의 당수가 총리가 되고, 총리는 왕과 매주 화요일에 미팅을 가지면서 정치의 방향을 모색해 나간다. 왕은 정치에 개입하지는 않지만 총리가 마음대로 정치를 하지 못하도록 견제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 면에서 왕실과 총리는 상부상조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여왕 서거 이후에 왕실 존폐론에 대해 이야기가 거론되고 있다. 국민의 세금으로 왕실이 호화롭게 호위호식 하는 것을 반대한다는 논리지만 한편으로 민주주의를 견제하는 왕실이 있었기에 영국이 오늘날 지금과 같은 민주주의를 유지할 수 있는 건 아닐까? 무엇이든 없애고 혁신하자는 시도는 모든 면에서 옳지는 않다. 공존이 가능하다면 윈-윈의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스위스 용병을 기념하는 조각상은 프랑스가 세워준 것이 아니다. 스위스 용병 스스로가 자신의 역할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책임을 다했기에 조국에 있던 사람들이 그들을 기리기 위해 만든 것이다. 스위스 용병과 영국 여왕의 서거는 맥락이 같다. 한 사람의 여왕으로서가 아니라 나라를 대표하는 여왕으로서 일생을 보낸 엘리자베스2세는 사람이 아니라 상징이다. 정치인들은 국민을 진보와 보수로 분리시키고, 왕실은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역할을 한다. 자신의 목숨보다 후세의 삶을 걱정한 스위스 용병의 죽음은 스위스 국민을 하나로 뭉치게 했다. 그래서 프랑스에서 죽어간 스위스 용병과 엘리자베스2세의 서거가 같은 울림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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